욕망은 염치없는 괴물과도 같았다.이미 술은 그의 이성을 흐릿하게 만들었고, 지금 그의 눈앞에는 사랑하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몇 달이나 이 여자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지금 그녀가 무방비한 상태로 그의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괴물이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불현듯 그가 저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지고 키스했을 때 그녀가 흘리던 신음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를 원할 때면 욕망으로 짙어진 검은 눈동자가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안이 얼마나 황홀했었는지 한꺼번에 떠올랐다.기억만으로도 죄악이 되는 그 감각들이 삽시간에 치솟자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젠장!”그는 주먹을 말아 쥐며 욕설을 내뱉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안고 싶었다.그 밤, 우재는 갈등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이기심이 이겼다. “죽어서 지옥에 가라면 가서 벌 받을 거야. 어차피 너 없이 사는 내 인생은 그대로가 지옥이니까.”응급의학과 레지던트 2년 차 윤세연.쌍둥이 동생의 행복을 가로챈 죗값은 너무나 달콤하고 잔인했다.악마가 주는 기회일지라도 기어이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싶다.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스물아홉 번째 책 출간!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스물아홉 번째 소설선, 김희선의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가 출간되었다. 기이한 상상력, 무수한 허구와 실재가 뒤섞여 만들어낸 다층적인 세계, 현실을 압도하는 픽션으로 2011년 등단 이후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확실하게 이어가고 있는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19년 『현대문학』 1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팔곡마을의 노인들과 이들을 찾아 나선 주변 인물들, 그리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뉴 제너레이션’이란 집단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인 혐오를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가슴 서늘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고령화사회, 노인 혐오, 그리고 자살 유도 프로젝트!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100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사회문제의 본질과 이면을 첨예하게 꿰뚫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집 『라면의 황제』와 『골든 에이지』. 세 개의 시공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 사람이 각각의 세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장편소설 『무한의 책』. 소위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던 시절,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확고히 드러내며 문학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그 자장 안에서 대체 불가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희선은 단 세 권의 책으로 더 이상 낯선 작가 아닌, 이즈음 문단이 가장 주목하는 대세 작가가 되었다. 마니아 독자층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더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이번 신작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에서는 어쩌면 닥쳐올지도 모를 미래를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는 명제를 뛰어넘어 김희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팔곡마을의 노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를 알아챈 우체부가 파출소에 사건을 신고한다. 파출소장 박 경위는 우체부와 함께 늦은 저녁, 배를 타고 팔곡으로 들어가나 텅 빈 팔곡의 깊은 어둠과 마주할 뿐이다. 노인들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박 경위는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노인들로 가득한 마루, 진동하는 음식 냄새, 웃고 떠들며 즐기는 사람들, 장수 노인 축하연……. 노인들을 찾아 언덕 너머 폐가까지 간 박 경위는 빔프로젝터가 쏘아내던 영상과 ‘고령화사회와 웰다잉’이라는 제목, 깊고 음산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그윽한 눈초리 등 또 다른 기억들을 떠올리며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팔곡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시청한 비디오 영상의 기시감의 실체를 깨달은 박 경위와 우체부는 그러나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고 쓰러진다. 정신을 차린 박 경위 앞에 선 선장은 뉴 제너레이션New Generation, 웰다잉협회 등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며 이 모두가 새로운 세대와 미래를 위해 자신들이 벌인 일이라고 말하고, 자신들 뒤엔 국가가 있다고 큰소리친다. 우체부의 활약으로 박 경위는 죽을 위기에서 구출되고 선장은 체포되지만, 며칠 뒤 무사히 돌아온 팔곡의 노인 중 한 노인의 시체가 호수 위로 떠오른다. 고령화사회를 지나 이미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노인 혐오와 배제의 경제학을 섬뜩하도록 서늘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노인의 자살이 만연한 재난적 현실에 음모론의 형식을 덧씌움으로써 진실을 더욱 선명히 보이게 하고, 그 선명한 진실에 대한 피로 때문에 망각해온 죽음과 비참한 생의 조건을 바라보게 한다. 한 개인의 선택이라 단정했던 그 죽음들을 혐오와 모멸의 감정 속에서 재생산되는 구조적 재난으로 다시 바라볼 때, 그 죽음을 자연화함으로써 재난 없는 세계로 꾸며졌던 현실의 이면이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 보인다. -김요섭(문학평론가)
<무한의 책> 한국문학에 전례 없던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탄생! 지구 종말의 묵시록일까? 음모 서사일까? 시간여행 SF일까? 편집증 서사일까? 아님 해석망상? 2011년 등단한 이래, 기이한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독특한 단편들을 발표하며 ‘대체 불가한 이야기꾼’으로 주목받은 소설가 김희선의 첫 장편소설 『무한의 책』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연재된 이 작품은 연재 기간 내내 독특한 세계관과 순문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재로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나 원고지 2200매라는 긴 호흡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부분 느슨함 없는 촘촘한 구성과 디테일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용인 에버랜드의 거대한 플라스틱 나무 밑에서 갑자기 솟아난 미아 소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이 작품은 과거에서 온 정체불명의 소년과 세상을 종말로부터 구할 임무를 받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고군분투하는 청년 스티브, 두 사람 사이의 미스터리한 관계를 평행우주 이론과 시간여행 대서사를 동원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낸다. 이 작품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끝에 결국은 현실로 이동해서 세상을 구원해내는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작가 김희선만의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을 탄생시켰다. 문단에 나타난 “무서운 신인”이라는 수식어에 값하는, 이미 전작인 소설집 『라면의 황제』에서 과거와 미래, 지역과 세계, 외계인과 소시민 등의 혼종적인 소재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이색적이고 개성 넘치는 소설 속 세계관을 각인시킨 바 있는 김희선은 그만이 가진 독특한, 확장된 세계관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이 한 권의 장편소설에 아낌없이 다 쏟아내고 있다.
<라면의 황제> 먹는 입, 혹은 말하는 입 지금, 라면이 왜 중요한가? 확신할 수 없는 일들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픽션들. 이 소설집이 내재한 힘은 그러한 예언의 불가능성과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인 픽션의 힘에서 비롯된다. 소설이 가진 힘을 믿는 자에게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구원이 있으리. 만약 우리에게 ‘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유의미하다면, 이러한 단언은 다름 아닌 ‘현실-없는-현실’이라는 텅 빈 공간들, 즉 작품 속의 ‘W시’로 상징되는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의미 해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표제작인 「라면의 황제」는 ‘불량식품’으로 낙인찍힌 라면이 사라진 시대, 27년간 라면만 먹은 라면의 달인 김기수 씨의 책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촌극이다. ‘흔남/흔녀’의 일상적 사건을 고고학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컨대 작품은 “그는 왜 라면만을 먹기 시작했는가?”와 같은 평범한 물음으로 다가서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가 왜 라면만을 먹지 않을 수 없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이면에 간직하고 있다. 더불어 「지상 최대의 쇼」와 「경이로운 도시」에서 외계인은 지구를 ‘방문’한다. 지구인은 이 외계 생명체의 방문에 꽤 관대한 편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거리와 먹을거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결국 이 사회체계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인정투쟁의 장이 오히려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라면을 마저 먹었다. 외계인들이 지금 당장 떼 지어 내려온다 해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9급 소방공무원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지상 최대의 쇼」) 처음에, 도시 외곽의 버려진 폐교를 깨끗이 수리한 뒤 페인트칠까지 새로 하여 그들을 거주하게 해준 대가로 W시가 외계 난민들에게 요구한 건, 아주 약간의 노동력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생이 게으른 데다 평소 불평불만이 몸에 배어있던 그 가난뱅이 외계인들은, 일이 힘들다는 핑계로 툭하면 근무지를 빠져나가 산속으로 도망치길 거듭했다는 것이다.(「경이로운 도시」) 우리가 알던 외계인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여기에는 온전히 ‘삶-투쟁’으로서의 전 지구적 현실만이 반영되어 있다. 실상 미스터리한 건, 외계인의 정체성이나 그들과의 문명적 대화보가 아니라 철저한 ‘먹고사니즘(먹고사는 문제가 ’지상 최대의 쇼’가 되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가? 즉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입이 먹는 입을 이길 수 있는가? 작가가 던지는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 다시 말해 외계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내재한 문제틀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코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혹자가 이 소설집을 두고, “지금, 왜 라면이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지금, 라면이 중요하지 않을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되받아쳐야 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