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야
해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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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wolf

어렸을 적부터 기이할 정도로 동물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예겸. 집 주변의 나무들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집을 짓고, 손을 뻗으면 동네에서 제일 성질 더럽다는 개도 발딱 배를 까뒤집으며 꼬리를 풍차처럼 흔들어댄다.학교는 별의별 야생동물들이 다 모여드는 자연 생태공원이 되고, 수업 중에 창문으로 비둘기나 까치 따위가 돌진하는 건 예삿일이요, 수학여행으로 간 서울대공원에서는 전례에 없는 늑대 탈출사건으로 9시 뉴스에 얼굴을 디밀게 한다.주인 버리고 막무가내로 따라오는 개들 덕분에 개도둑으로 경찰서를 드나들기를 몇 번.당연한 듯이 수의학과를 추천하는 학교에 흐르는 뗏목처럼 떠밀려 무난하게 합격하고, 마침내 OT를 가던 날이었다.그저 밥을 먹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을 뿐이었다.현관문 바깥으로, 거대한 숲이 나타났다.유난히 솟은 나무뿌리 위에 맨발로 선 남자는 선명하고 사나운 눈매를 하고 노려본다.거친 회색 머리카락, 그 사이로 솟은 식육목 갯과 포유류의 귀. 맹수의 황금색 눈동자. 남자가 물었다.“너, 뭐냐?”

그믐밤에 달이 뜬다

*<그믐밤에 달이 뜬다> 외전 3~4화의 연재분 이용연령가는 19세로, <그믐밤에 달이 뜬다 외전 2> 시리즈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도서 구매에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도하.” 나른한 오후였다. 초가을의 바람은 신선했고, 햇살은 따뜻했으며, 적당히 배가 불렀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려니 졸음이 몰려와 꾸벅 꾸벅 고개를 떨구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이도하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해 턱을 괴고, 신명나게 졸고 있는 중이었다. 옆구리를 쿡 찌르는 손길에 이도하가 눈을 떴다. “……”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이도하는 입술을 물었다. 나 이 분위기 아는데. 강단에 선 교수가 묘한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었으며, 시선이란 시선은 모조리 그에게 못 박혀 있었다. 몇은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리고, 발밑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알지 이거. 이도하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가 앉은 의자 바로 밑, 강의실 바닥에, 새파란 소환진이 펼쳐져 있었다. 서른두 번째 소환이었다. *** “안녕.” 그렇지 않아도 입을 틀어막은 채였으나, 어쨌든 이도하는 말문을 잃었다. 구역질 나는 피비린내와 정신이 아찔한 피의 향연이 아니었더라도 놀라 어차피 입을 틀어막았을 만큼 남자는 기가 막히게 잘생겼지만, 그 잘생김조차 좀 빛이 바랄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찬란한 백금발과 얼굴이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온몸의 피란 피는 죄다 바닥에 쏟아내고 있었으니. 과다 출혈로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서는 태연하게 그렇게 인사하니 머리끝이 주뼛 섰다. “…미친.” “드디어 얼굴을 보는군. 잘생겼는걸.” “…미친놈인가?” “그 미친놈이 이제 곧 죽을 것 같은데 살려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