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문학사상 영원히 빛날 명작이다. 한국 고대 소설문학의 발전 과정에 있어 김시습, 허균, 김만중의 공헌은 지대하다. 숙종시대의 거봉 서포 김만중의 현전하는 그의 소설작품 "구운몽"은 "사씨 남정기"와 더불어 한글소설을 대성시킨 대포작이라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숙종 때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보다 앞서 그가 남해 귀향지에서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하여 지은 소설 "사씨남정기"도 국문학사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소설'이며, 숙종이 인형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은 역사적 사실을 원형으로 삼은 작품이다. 당신의 일화를 보면, 어느날 숙종이 궁녀로 하여금 얘기책을 읽어달라고 하자 궁녀가 이 소설을 읽어 주었는데, 주인공 유한림이 무죄한 아내 사씨를 내쫓고 간교한 첩 교씨를 아내 맞아들이는 대복에서는 숙종이 유한림을 천하에 고약한 놈이라고 흥분하기까지 했다 한다. 어머니의 평소 행적을 글로 써서 남기었다. 그것이 정경부인 "윤씨 행방"이란 작품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사씨남정기> 고전이란 "영원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즉, 우리 조상들이 생활하면서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들이 깃들어 있는 '우리의 정신적 고향'이며, '참된 인간교양의 근원이요, 샘'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기계화되고, 생각과 지각의 샘은 점점 고갈되는 고달픈 현대의 삶,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정신적 고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영원한 가치의 고전'을 찾아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고전문학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을 찾아 줄 새로운 출발점으로 안내할 것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지혜의 옹달샘'의 원천으로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다시 정신적 고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진정한 우리의 가치와 우리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 고전문학선 1 사씨남정기>는 오늘날 우리들이 꼭 읽어 보아야 할 주옥같은 작품들 중에 하나 있다. 특히 중 고교생들의 문화적 소양과 교양 및 수능과 논설을 위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편집하였다. 또한 저자와 작품의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여 독자들이 이를 통해 더 깊은 고전의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분망한 현대생활 속에서도 고전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고향'의 따스함을 느낀다면 그 보다 더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서포만필 상 (한국고전문학전집 001)> 회의·탐구·관용의 정신으로 엮은 조선 산문의 결정체 '서포'라는 호로 유명한 김만중이 역사, 문학, 유가, 불교, 음양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색하고 사회 현실의 문제를 연관시켜 논술한 에세이집이 바로 『서포만필』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과 개방적인 시선으로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을 바라보았다는 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대주의적인 견해를 힘 있는 문체로 논술했다는 점 때문에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기획 기간만 5년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한국고전문학 전집 시리즈 중 하나로, 고전의 이본들을 철저히 교감해 연구자를 위한 텍스트로 만들었을뿐 아니라 현대 독자들을 위해 살아 있는 요즘의 언어로 최대한 쉽게 풀어쓴 책이다. 독자를 위한 대중성과 연구자를 위한 전문성을 모두 획득하기 위해 현대어역과 원본을 모두 실어 비교하며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문학전집18: 사씨남정기> 이 작품은 <구운몽>의 작자인 김만중의 작품으로, 소설사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에 창작되었다. 그리고 가정에서 벌어지는 처첩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 소설이며,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은 역사적 사실을 원형으로 삼은 작품이다. 당시의 일화를 보면, 어느 날, 숙종이 궁녀로 하여금 얘기책을 읽어 달라고 하자 궁녀가 이 소설을 읽어 주었는데, 주인공 유한림이 무죄한 아내 사씨를 내쫓고 간교한 첩 교씨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대목에서는 숙종이 유한림을 천하에 고약한 놈이라고 흥분하기까지 했다 한다. 다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가정의 문제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조성기가 지었다는 <창선감의록>이 있는데, 이 작품과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장화홍련전> 등의 가정 소설이 이 <사씨남정기>의 맥을 잇고 있다고 할 것이다.
<구운몽 사씨남정기>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서포 김만중!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조선 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沙溪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김익겸의 아들이며, 숙종 대왕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 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윤방의 증손녀이며, 이조참판 윤지의 따님이다. 이렇듯 김만중은 실로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서포 자신도 열여섯 살에 진사시에 급제한 후 도승지, 대제학, 대사헌을 거쳐 예조판서를 역임하였으니 그의 학식과 명예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소설을 창작할 수 있었을까?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사대부가 소설을 창작하는 일이 대단히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으며, 소설 자체가 천대받던 시기였다. 그 모든 비판을 감수하고 소설을 창작한 데에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에 대한 서포의 지극한 효심과 파란만장했던 자기 삶의 굴곡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서포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누구보다 각별하였고, 비록 대단한 가문과 화려한 경력을 지녔지만 조정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여러 차례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구운몽》을 집필할 당시에도 서포는 평북 선천의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서포는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달래기 위해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작품을 집필한 것이다. 선천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난 서포는 다시 두어 달도 되지 않은 1689년에 다시 남해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이때 숙종이 희빈 장 씨에게 미혹되어 인현왕후를 내쫓은 사실을 모티브로 한 《사씨남정기》를 집필하였다. 《구운몽》 《구운몽九雲夢》의 구九는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키고, 운雲은 인간의 삶을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즉 《구운몽》은 아홉 구름의 꿈, 아홉 사람이 꾼 꿈이라는 의미이며, 우리나라 고전 소설 가운데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이는 주제나 사상의 다양함은 물론이고 조선 시대에 쓰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이며, 뛰어난 상상력으로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자신이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김만중은 양소유라는 인물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절세미인들을 부인으로 두고 싶은 양반들의 욕망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구운몽》은 조선 시대 전형적인 양반 사회의 이상을 반영한 양반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또한 소설적인 재미도 뛰어나다. 팔선녀가 환생한 여덟 여인들은 각각의 뚜렷한 개성과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양소유가 이들과 만났다 이별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남녀 간의 사랑을 품위 있는 문체로 묘사한 것도 여느 작품과는 다른 점이다. 팔선녀를 만난 성진이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결국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열심히 불도를 닦아 극락세계로 간다는 내용을 통해,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야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서포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다. 《구운몽》은 다채로운 구조와 사실적인 경향으로 조선 후기 소설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씨남정기》 《사씨남정기》는 ‘사 씨가 남쪽으로 쫓겨나게 된 사연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표면적인 내용은 처첩 간의 갈등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임금인 숙종이 희빈 장 씨에게 미혹되어 인현왕후를 내쫓고 희빈 장 씨를 왕비로 맞아들인 것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작품이다. 김만중은 이를 반대하다 유배를 가게 되었고 유배지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가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뒤, 마침내 희빈 장 씨는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고 인현왕후는 다시 중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김만중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간교한 희빈 장 씨에게 눈이 멀어서 어진 인현왕후를 내쫓은 숙종의 잘못에 대한 비판이다. 더불어 축첩 제도가 빚은 한 가정의 비극을 통해 사회 제도의 모순과 양반 사대부의 부도덕함도 고발하고 있다. 국가나 사회에서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축첩 제도는 삼국 시대부터 시작되어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이어져 온 나쁜 풍습이었다. 조선 시대에 왕은 여러 명의 후궁을 거느렸고 양반이나 돈 많은 지주들은 가난한 집안의 딸이나 집안에서 거느리던 노비, 또는 기생을 첩으로 들였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여러 명의 첩을 거느려도 항의할 수 없었으며, 남편을 잃어도 재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더욱 큰 문제가 된 것은 축첩 제도에 의해 태어난 서얼을 차별하던 제도였다. 《사씨남정기》는 이러한 축첩 제도의 불합리함과 양반 사대부의 부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현실을 비판하는 역할까지도 했다. 서포 김만중은 우리글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당시 양반들이 천대하던 한글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지었다. 우리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 서포는 ‘자기 나라 말을 버려두고 남의 말로 시문을 짓는다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며,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말의 다양한 표현미를 살려 인물의 심리와 장면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서포 김만중은 오로지 한문만을 떠받들던 당시 양반 사대부들과는 달리 한글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사대부들은 소설을 써서도, 읽어서도 안 되는 가치 없는 글이라며 멀리했고, 퇴계 이황마저도 ‘음란하여 족히 이야기할 것이 못 된다.’고 하였지만 서포는 소설을 천시하던 조선 시대에 소설의 가치를 높이 사서, 오늘날까지 빛나는 문학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이로써 양반 계층이 향유하던 문학이 평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지면서 한글 소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양반 문학에서 평민 문학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해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국어에 기초하여 문학을 발전시켜야만 순정한 문학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 김만중의 선견지명은 우리 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되돌아보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운몽 : 고전소설 · 산문 - 한국문학산책 34> 한국문학산책 34-고전소설.산문 구운몽 인생무상, 일장춘몽을 보여 주는 몽자류 소설의 효시! 《구운몽》은 인생의 덧없음을 성진의 하룻밤 꿈을 통해 보여 주는 몽자류 소설이다. 성진이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고 깨어나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이 작품은 현실(신선계)에서 시작하여 꿈속 이야기(인간계)로, 꿈속 이야기에서 다시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와 끝나는 환몽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구조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환몽 구조를 가진 수많은 작품의 원형이 되고 있으며, 그 주제 또한 변함없는 감동과 교훈을 주는 고전 소설의 백미로 손꼽힌다. ■ 줄거리 중국 당나라 때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교를 전파하였다. 육관대사는 법회에 참석한 용왕에게 제자인 성진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용왕이 베푼 잔치에서 돌아오던 성진은 팔 선녀와 돌다리에서 마주치자 잠시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희롱한다. 돌아온 성진은 팔 선녀의 미모를 떠올리며 수행 생활에 적적함과 실망을 느끼고 유교적 입신양명을 꿈꾸다 육관대사에 의해 인간 세상으로 추방된다. 성진은 회남 수주현에 사는 양 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태어난다. 양소유는 15세가 되어 과거를 보러 떠나게 되는데 화음현에서 진 어사의 딸 진채봉을 만나 자기들끼리 혼약을 한다. 그때 구사량이 난을 일으켜 양소유는 남전산으로 피난하게 되고, 진채봉은 아버지가 죽은 뒤 관원에게 잡혀 서울로 끌려간다. 다음해 다시 과거를 보러 가던 양소유는 낙양 천진교의 시 짓는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기생 계섬월과 인연을 맺는다. 서울에 당도한 후, 자신의 배필감으로 정 사도의 딸 정경패의 얘기가 오가자 미리 선보기 위해 여자로 변장하여 만난다. 과거에 급제한 양소유는 정 사도의 사위가 되기로 하는데, 정경패는 양소유에게 속은 것에 대한 복수로 시종인 가춘운으로 하여금 양소유를 유혹하게 한다. 이때 하북의 세 왕이 역모를 꾀하여 양소유가 절도사로 나가 이들을 다스린다. 양소유는 돌아오는 길에 계섬월을 다시 만나 밤을 함께 지내는데, 이튿날 다시 보니 그 여자는 하북의 유명한 기생인 적경홍이었다. 한편 양소유는 어느 날 밤 난양 공주의 퉁소 소리에 답한 것이 인연이 되어 난양 공주의 신랑감으로 간택이 된다. 하지만 양소유는 정경패와의 약혼을 이유로 난양 공주와의 혼인을 거부한다. 마침 토번왕이 침범해 와 양소유는 대원수가 되어 출전하고, 그곳에서 여자 검객 심요연과 인연을 맺는다. 토번왕을 물리치고 돌아오던 양소유는 동정호 용왕의 딸인 백능파가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구해 주고 인연을 맺는다. 그동안 난양 공주는 양소유가 자신과의 혼인을 거부한 것 때문에 슬픔에 빠져 있다가 정경패를 만나는데, 그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어머니인 황태후에게 정경패를 딸로 삼을 것을 부탁하여 정경패는 제1공주인 영양 공주가 된다. 양소유는 돌아와서 위국공의 자리에 오르고 영양 공주, 난양 공주와 혼인을 한다. 그러는 가운데 궁에서 마주친 진 궁녀가 진채봉임을 알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낙양에서 계섬월과 적경홍을 데리고 온다. 이후 심요연과 백능파도 찾아온다. 양소유는 2처 6첩을 거느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오랜 세월이 지나 생일을 맞은 양소유는 여덟 아내와 춤과 노래를 즐기다가 문득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슬픔을 느끼고는 불법의 도를 닦아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그때 노승(육관대사가 변신한 모습)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로소 꿈임을 깨닫는다. 성진은 자신이 헛된 욕심을 부렸던 이전의 죄를 뉘우치고, 팔 선녀와 함께 육관대사의 후계자가 된다. 아홉 사람은 열심히 불도를 닦아 극락세계로 돌아간다.
<사씨남정기 : 고전소설 · 산문 - 한국문학산책 35> 한국문학산책 35-고전소설.산문 사씨남정기 처첩 간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왕의 잘못을 고발하다! 《사씨남정기》는 사대부 가문의 본처 사 씨와 첩 교 씨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권선징악의 구조로 그린 작품이다. 당시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삼은 역사적 사실과 닮아 있어, 숙종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양반 가정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사건을 통해 당파 싸움에 휘말리던 조선의 모습을 비판했다. ■ 줄거리 명나라의 금릉 순천부에 사는 유현은 자식이 없다가 늦어서야 아들 연수를 얻는다. 연수는 십오 세에 한림학사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십 년을 더 공부하고 나서 벼슬에 나가겠다고 한다. 황제는 특별히 오년의 시간을 주었고, 연수는 그 시기에 어질고 지혜로운 사 씨와 결혼을 한다. 유 한림과 사 씨 부부는 금슬이 좋았으나 유 한림의 나이가 삼십에 이르도록 자식을 낳지 못한다. 유 한림은 사 씨의 권유로 마지못해 첩인 교 씨를 맞아들이는데, 교 씨는 간악하고 질투심과 시기심이 많은 여자로, 겉으로는 처인 사 씨를 존경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증오한다. 교 씨는 아들을 낳자 정실부인 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에 계략을 꾸민다. 교 씨는 노래와 악기 연주로 유 한림을 유혹하는 한편, 동청이라는 자와 흉계를 꾸며 그와 함께 남몰래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그러면서 유 한림에게는 사 씨에 대한 온갖 나쁜 말을 전한다. 유 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교 씨가 마침내 자신의 아들인 장주까지 죽이고 그 죄를 사 씨한테 덮어씌우자 사 씨를 내쫓고 교 씨를 정실로 맞아들인다. 사 씨는 시부모의 묘가 있는 산에서 초가집을 얻어 살면서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려 한다. 그러나 교 씨는 동청과 다시 흉계를 꾸며, 냉진을 보내어 사 씨의 절개를 꺾으려 한다. 이 음모는 다행히 사 씨가 먼저 떠나는 바람에 실패한다. 교 씨는 유 한림이 자신의 죄를 알게 될 것이 두려워 간신 엄 승상을 통해 유 한림을 귀양 보낸다. 교 씨는 유 한림의 전 재산을 훔쳐서 동청의 부임지로 함께 가서 살고자 하는데, 도중에 황제의 은사령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유 한림과 마주친다. 동청은 유 한림이 돌아가면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관졸 수십 명을 뽑아 유 한림의 목을 베어 오면 천금의 상을 주겠노라 약속한다. 쫓기던 유 한림은 쪽배 한 척을 발견하여 가까스로 도망치는데, 그 배는 사 씨 부인이 꿈에서 시부의 말을 듣고 준비한 것이었다. 그 무렵 조정에서는 많은 비리를 저지른 엄 승상이 처형되고 동청과 냉진도 처단된다. 교 씨는 낙양으로 도망쳐 창루의 창기로 전락한다. 유 한림은 교 씨 때문에 잃어버린, 사 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인아를 찾고 예부상서로 복위되어 옛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간악한 교 씨를 잡아들여 처형한다. 그리고 사 씨 부인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었던 어진 임 씨를 첩으로 새로 들여 세 아들을 낳고, 정실인 사 씨와 더불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산다. 임 씨와 그의 아들 역시 사 씨와 유 한림을 모시며 평안한 세월을 보낸다.
<사씨남정기 - 한국문학읽다> “조선 사회의 모순과 실상, 권선징악” 조선 후기 숙종 15년에서 18년사이 쓰여진 고전소설로, 중국을 배경으로 일부다처제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소설화한 것으로,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에 대하여 숙종이 미혹됨을 깨닫고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사씨남정기는 정실부인 사씨를 고매한 부덕한 소유자로, 첩 교씨를 간교한 여인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대립적 인물 설정은 여주인공 사씨의 인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인현 왕후를 옹호하다 귀양을 가게 된 김만중이 인현왕후 폐위의 부당성을 풍자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아울러, 권선징악의 교훈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구운몽 - 한국문학읽다> “인생의 부귀공명은 일장춘몽이다” 조선조 숙종 때 폐비를 반대하다 남해로 유배되어 가서 한양에 있는 노모를 위로하기 위해 썼다는 김만중의 작품이다. 작품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지만, 구성이나 문체에 있어서는 흠잡을 데 없는 고대 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구운몽”은 몽자류 소설의 효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유교적인 현실적 공리주의와 불교적 정관인 공의 사상, 그리고 도교의 향락주의가 융합되어 당시의 정신 생활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유학자인 김만중이 불교적인 주제와 시각에서 인간의 문제를 형상화한 점과 조리 있는 구성과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욕망을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대담하게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원서발췌 서포만필> ≪서포만필(西浦漫筆)≫은 1687년(숙종 13년) 선천(宣川) 유배 이후인 말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포만필≫에는 주자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주자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보여주는 글들이 담겨 있다. 또한 김만중의 사상적 편력과 박학한 지식을 알려주는 여러 가지 기사들이 엿보이며, 불가(佛家)·유가(儒家)·도가(道家)·산수(算數)·율려(律呂)·천문(天文)·지리(地理) 등 구류(九流)의 학에 대한 견해도 살펴볼 수 있다. 주자주의적 문화관에 대한 비판 당시의 문화관은 주자주의적 문화관, 즉 , 중국 중심주의에 입각한 문화관으로서 ‘화이론(華夷論)’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만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하나는 주자의 오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또 하나는 국어문학의 독자성과 가치를 인정함으로써다. 김만중은 주자의 문화관이 변방 나라의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폭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화이론’에 타격을 주었다. 그 예로, 인도의 불경이 중국의 고전인 ≪열자≫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본 것이라든가, 중국인의 시에만 각운이 등장한다고 오해한 것을 지적한다. 또 같은 맥락에서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과 <전후사미인곡(前後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이 중국의 <이소>와 맞먹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중국의 문학만이 가치 있다는 통념을 거부하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주자주의적 문학관에 대한 비판 당대의 문학관 역시 주자주의적 문학관이었다. 당대에는 문학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재도론(載道論)’이라 하여, 문학은 철학이나 사상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김만중은 문학 자체의 독립적인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백사 이항복의 시조가 광해군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일화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또 역사책인 ≪삼국지≫를 읽을 때와는 달리,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면, 주인공인 유비가 패배할 때는 함께 슬퍼하고, 그 적대자인 조조가 패배할 때는 쾌재를 부른다면서, 문학인 소설이 독자적인 감동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이와 같이 문학을 역사나 철학의 수단으로 여기던 통념이 지배하던 그 시대에, 김만중은 문학의 자율성, 독자성을 적극 주장함으로써 문학관의 진보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