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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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간병인

뭐 이런 간병인이 다 있어?자기 환자도 몰라보고, 목욕시킨다고 남자 옷을 벗기질 않나, 말은 죽어라 안 듣고.간호사가 아니라 시장 아줌마 아냐?그런데 왜 그녀만 가까이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뭐 이런 환자가 다 있어!거만하게 반말짓거리에, 걸핏하면 고함이나 지르고, 고집은 더럽게 세고.사장이 아니라 조폭 두목 아냐?그런데 왜 이 남자 억지부리는 모습도 귀여...

사랑은 두리안과 같다

사랑, 지독함 가운데 찾아오는 치명적 중독철모르던 시절,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시작한 민하와 다은. 그러나 현실이라는 벽과 마주한 풋사랑은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4년 후 업무상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모두 잊었다 생각한 그 자리엔 아직 서로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데….작가의 말〈사랑은 두리안과 같다...

나를 버린 남자

소문이 좋지 않은 남자였다. 홍주에게는 기피대상 일호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단연코 사양이었으니까. “최홍주 씨는 내가 많이 싫은가 봐요?”“제가요? 제가 왜요?”“그건 저도 모르죠.”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홍주가 자길 싫어한다는 걸 금방 눈치 챘다. 그렇게 끝이 난 이야긴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만 얽혀드는 이 느낌은 뭐지?나 이 남자에게 찍힌 건가?가만 보니 이 남자 일부러 이러는 것 같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에버 에프터

“대체 인사팀 얘들은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아무리 계약직이라도 그렇지 어디서 이런 걸 뽑아놔서 사람을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 거야?” 이상한 일이었다. 제게 하는 말도 아닌데도 저 ‘계약직’이라는 말만 들으면 사무실 안에 있는 모든 계약직 사원들이 동시에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계약직들끼리는 연대책임이라도 있다는 듯이. 정규직 사원들이 야단을 맞을 땐 다 각자 야단을 맞는 것 같은데 왜 계약직 사원들 중의 한 사람이 야단을 맞으면 다 같이 야단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일을 잘못 했으면 그 이야기만 하면 될 것이지 왜 꼭 계약직 이야기는 갖다 붙이는 거야? 사람 기분 나쁘게.”“일부러 들으라고 그러는 거지. 고 대리 그 인간 정규직 아니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간이잖아.” 사람들은 세영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애초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 정도 일이라면 누구라도 잘 해낼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들을 경멸할 뿐, 누구도 그 정도 일을 잘해낸다고 해서 칭찬하는 법은 없었다. *** 요즘 여직원들이 입을 열 때마다 튀어나오는 존재는 얼마 전에 부임한 본부장이었다. 아마도 그건 영업5팀의 여직원들뿐만 아니라 이 회사 모든 여직원들의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부임한 본부장은 명일무역이 소속되어 있는 명일그룹 회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계를 위해 계약직이라도 감지덕지하며 이 회사에 입사한 뒤 세영은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눈높이에 안착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규직 사원들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체념하는 법을 배운 이후로 그녀는 그럭저럭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물며 정규직 사원들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그들 위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을 하겠는가. 그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 세영에게는 사치였다. 철저한 무관심, 그것이 그 빛나는 세계에 속한 존재에 대한 그녀의 대응법이었다. *** 아침부터 비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던 날이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겨왔지만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걸어오는 동안 세영은 우산 아래로 들이치는 빗물을 옴팡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들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정도면 화장실에 가서 젖은 옷과 머리를 대충 말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어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세영은 그때까지만 해도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타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세영은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장신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이런 몰골로 본부장과 마주치다니.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들렸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가 내려야 할 층이었다. 그는 남아 있는 세영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 짧은 순간 세영은 본능적으로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빠르게 눈으로 훑어 내렸다. 그의 옷과 소지품 어디에도 젖은 구석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 한 방울 묻지 않은 깨끗한 의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집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는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조건들, 자신은 절대로 가닿을 수 없는 그 모든 조건들 보다 오늘 아침 두 사람이 처해 있는 다른 현실이 세영에게는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더 절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들로 다가왔다. 비만 오면 출근을 하기 위해 옷이 다 젖어야 하는 사람과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도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