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 포털사이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뉴스들이 사라진다. 만약 부패 정치인의 기사를 클릭한다면 게이페스티벌의 대머리 게이가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 것이다. 주가조작범의 기사를 클릭하면 누군가 핫도그를 입에다 쑤셔 넣고 있을 거고 난장판이 된 국회 기사를 클릭하면 스모선수들에 격렬한 몸싸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벽4시. 당신이 잠든 사이 매일같이 누군가 기사를 바꿔치기한다. 포털 웹사이트에 뉴스 아르바이트. 업데이트의 노예. 새벽타임의 빅브라더. 그에게 21세기는 막연한 유토피아적 존재였지만 매일 사이트에 올리는 뉴스들은 그런 상상들과 거리가 먼 전부 쓰레기 같은 것들뿐이다. 이런 그의 작은 기쁨은 새벽 4시마다 사이트에 올려 진 기사를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 21세기에 완벽하게 배신당했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의지하고 의존하는 인터넷의 거대 정보와 지식들에 테러를 가한다. 21세기의 보물. 초고속 인터넷 회선을 타고 수년간 쌓고 쌓은 자료와 지식들. 에베레스트 산처럼 높고 태평양처럼 방대한 것들. 이 모든 걸 무너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다. ... 20세기 소년 우리가 그린 상상화에서나 나오던 화상통화 휴대폰이나 전기자동차가 나오는 세상이 됐지만요. 이 다음의 세상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이런 게 있지만 아무도 웃으면서 기뻐하지 않잖아요. 듣고 있나요? 21세기 어른. ... 우리가 공들인 계획들이 TV를 탈 때 마다 그들은 흥분으로 넘쳐났다. 그리고 이제 이곳은 20세기소년의 아지트처럼 변해가고 있다. 매일 밤 이곳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비슷한 티셔츠를 입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날 리더라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리더, 지도자, 대통령 같은 단어는 완전히 카리스마를 잃었다. 빅브라더? 그가 세상을 통제할 거라고? 정보를 날조하고 역사를 날조할거라고? 하지만 그런 방송국은 우리에게도 있어. 빅브라더의 목소리가 매일 같이 흘러나오던 거대한 스크린? 21세기에서는 그걸 블로그라고 부르지. 그리고 정보를 날조하고 역사를 날조하는 건 여기모인 작고 힘없는 사람들이야. ... 우린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겐 전쟁을 일으킬 부지런함도 없고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은 모조리 포르노에 갖다 바쳤다. 앞으로 우리가 저지른 모든 건 들통 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 쌓아 놓은 것은 누군가에 의해 무너지게 되 있으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이쯤에서 모든 걸 무너트려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거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최악의 세대. 그렇게 남겨지기 싫다면 오늘 새벽 4시에 헤드라인 뉴스를 클릭하고 마지막 밀레니엄버그의 계획에 동참하라. 기회는 단 3분뿐이다.
<스페이스 보이> 모든 것을 지우려 우주까지 왔는데 내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어. 외계인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말했지. “10월 28일에 폭우나 한번 내리게 해줘요.” 2주간의 기막힌 우주 체험 후 하루아침에 우주 대스타가 된 남자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으로 탄생한 아찔한 우주+지구 오디세이 김별아의 『미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백영옥의 『스타일』, 정재민의 『보헤미안 랩소디』, 이동원의 『살고 싶다』, 도선우의 『저스티스맨』 등 한국문학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장편소설을 배출해온 세계문학상이 2018년 열네 번째 대상 수상작으로 박형근의 『스페이스 보이』를 선정했다.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 남자의 기묘한 우주 체험과 귀환 후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그린 이 소설은 “어깨에 힘을 빼고 어떤 ‘폼’도 잡지 않으면서 주제를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간다”, “날렵하고 감각적인 문장이 돋보인다”는 찬사를 받으며 222편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박형근은 2011년 『20세기 소년』으로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소설미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한 그가 그로부터 7년 후 두 번째 장편소설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발산하며 독자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스페이스 보이』는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 있는 문장으로 이제껏 우리가 상상해왔던 우주에 대한 이미지를 시침 뚝 떼고 무너뜨리며, 기억과 사랑, 인간다움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주인공이 우주에 떨어진 날부터 약 5개월 동안 벌어진 일들을 시간순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어디에도 없는 아찔한 우주+지구 오디세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