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별
김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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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도리의 칼

전란이 끊이지 않던 7세기의 고구려. 전쟁 고아로 태어난 흰도리는 검모잠, 양만춘, 걸걸중상과 함께 을지문덕의 제자로서 자라난다. 기울어가는 나라에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였다. 을지문덕은 나라의 운명을 예감하고 네 명의 제자에게 제각각의 임무를 맡긴다. 흰도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고구려를 멸망시킬 운명을 타고 난 신라의 유신랑을 없애는 것이었다.  너무도 착하고 순수한 한 소년은 적으로 만나야 할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우정을,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비극적인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그 바퀴에 치인 한 소년의 애달픈 이야기. ▶ 작가 소개 김찬별 coldstart@paran.com 소설가, 자유기고가, 번역가.  ▣ 출간작 흰도리의 칼 (2011, 가하) 휘넘의 세상 (2011, 유페이퍼) 미루마치 (2003, 영언문화사)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요리 (2011, 대우증권 : 집필 및 책임편집)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2008~2009, 월간 외식경영)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2008, 로크미디어) 찬별의 특별한 여행기 (2007, 보물섬 여행사) ▣ 수상 경력 휘넘의 세상(2011) -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우수상 보리피리(2002) - 한국 인터넷 작가상 우수상  팔벼개(2001) - 장르문학 웹진 가작 부활(2001) - 하이텔 문학상 비순수부문 대상

휘넘의 세상(제5회 디지털 작가상 수상작)

<외계인이 지배하는 세계> 서기 2015년, 스스로를 <휘넘>이라고 부르는 말horse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여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휘넘의 승리로 끝나고, 지구는 휘넘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오백년 후, 지구상에 사람은 휘넘이 사육하는 식용 사람, 휘넘의 도시 뒷골목에 숨어서 쓰레기를 먹고 사는 도둑 사람, 그리고 산과 들판에서 살아가는 야생 사람으로서만 남게 된다. <휘넘의 인간 말살 정책>  휘넘 중 명예욕에 불타는 천재 수의사 `히쁘끼`는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은밀한 계략을 세운다. 그는 사람에게만 전염되는 강력한 전염병을 개발하고 이를 사람에게 퍼뜨린다. 강력한 전염성 때문에 처음에는 수십 명이, 이어서 수백 명이, 나중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병에 걸려 죽어간다. 원래 그는 처방을 함께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상황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휘넘 정부는 농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감염지역 농장에 있는 사람을 모두 살처분하고 농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마지막 지구인의 전설>  사람 몰살에는 예외가 없었다. 야생사람의 우두머리인 <마르크스>도, 탈출한 식용사람인 <이멜다>도 모두 살처분의 대상이 된다. 이 와중에 초능력을 각성한 애완사람인 <야신>과 도둑사람의 우두머리인 <히틀러>는, 휘넘이 지구를 지배하기 이전의 <원시시대>에는 휘넘이 아닌 <원시인>이 지구를 지배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우연치 않게 500년간의 동면 실험에서 깨어난 21세기의 지구인 조영동과 안영희를 만나, 휘넘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절망적으로 발버둥친다. <과연 SF인가? > 소설 속에서 휘넘들은 사람고기를 즐겨 먹는데 가장 비싼 부위는 <숫처녀 꽃등심>이다. 사람 사이에 전염병이 돌자 휘넘 농가를 걱정한 당국은 모든 농장의 사람을 집단 폐사시키기로 결정한다. 이 소설은 그만큼 엽기적이다. 그러나 한 번 돌이켜 생각하면 상상력이 기발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인간 중심의 문명을 짐승의 눈으로 한 번 생각해본 관점의 전환일 뿐이다. 짐승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은 이 소설보다 훨씬 더 엽기적일 것이다.

서재필의 고백

<서재필의 고백> ※ 이 이야기는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생애 중 가장 다이나믹했던 15년을 재구성한 팩션입니다. “나는 조선인 서재필이 아니라 미국인 필립 제이손입니다.” 풍운이 감도는 조선말. 개화당이 꿈꿨던 미래가 삼일천하로 막을 내리자, 서재필은 반역자의 오명을 안고 조선을 떠났다. 그는 한때 조선의 귀족이었지만 미국에서는 거리의 막일꾼으로 다시 시작한다.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미국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서재필의 앞에,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 나타나 조선행을 제안한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개화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조선으로 향한다. 조선인 서재필이 아닌 미국 시민 필립 제이손으로서.

김옥균의 이발사

<김옥균의 이발사> 개화의 시대. 갑신년의 풍운아 김옥균은 중세에 머무른 조선을 개화시키기 위해 유혈정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일본에서 절치부심한다. 권력도 없고 권력을 잡을 가능성도 없는 가운데, 그를 따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 가장 중세적인 인간인 나쯔시마 뿐이다. 그는 조선인이고, 김옥균의 종이다. 먹이사슬의 바닥에 있고, 신분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주인을 모시는 것만이 자신의 길이라 여긴다. 이발 기술 한 가지로 김옥균의 타국에서의 귀양살이에 필요한 돈을 대면서, 아무런 장래도 없고 불만도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모시던 김옥균이 어느 날 구척 거한 홍종우의 총에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다시 나쯔시마는, 단발령이 내려진 조선, 고종의 머리칼을 깎게 되었다.

솔직한 사회

<솔직한 사회> 21세기 초반부터 나노기술, 빅데이터 기술의 급속하게 발전하더니, 21세기 중반이 되자 '국민합의 시스템'이라는 실시간 투표 플랫폼이 완성되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뇌파를 BT기술로 인식하고 초고속인 7G 네트워크로 수집해서,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실시간 분석을 하는 시스템 덕택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날마다 정책에 직접 반영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오랜 꿈인 직접 민주주의의 세계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왕자와 거지와 경찰과 도둑이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은밀한 음모를 꾸미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직접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일당독재를 꿈꾸는 거대 지하조직, 반금련 그들에 맞서 직접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투사가 되고 싶은 응유엔기정과 그 친구들. 이 두 세력의 충돌을 이끌어가는, 또는 그 충돌에 휩쓸려가는 세 사람. 여론 조작 전문가 마영훈 : 직접 민주주의 세상에서 국민들의 생각을 선동하는 능력이 있다면 과거의 정치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마영훈은 넷 상에 컨텐츠를 올려 여론을 아주 세밀하게 조작하는 전문가였고, 기업인, 조직폭력배, 기타 어떤 이익집단의 의뢰라도 돈만 되면 모두 수락했다. 그런 그에게 이상한 의뢰가 들어왔다. 월드컵 16강 선발 한일전에서 자책골을 넣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극형에 처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누가? 왜? 무엇을 얻기 위해? 빅데이터 엔지니어 김명우 : 지난 삼십 년 동안 시스템 엔지니어이자 프로그래머로서 국민합의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그는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그럭저럭 좋은 월급을 받으면서, 때때로 솟구치는 반사회적인 욕망을 윤리로 다스리면서 지루하지만 대체로 평온하게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십년 전의 불륜녀가 찾아왔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아내인 그녀는 남편을 보호해달라고, 다시 몸을 바치겠으니 해킹을 해서라도 여론을 조작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왔다. 만약 이를 거절했다면 그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지 않고 좀 더 오랫동안 평화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즐겁게 살자, 게이코 : 한국이름 박안희, 직접 민주주의의 화신의 외동딸, 클래식 음악, 꽃뱀, 포주, 이십대의 복장에 팔십대의 얼굴, 이 모든 단어가 인간 게이코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지만, 그 무엇도 그녀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김명우의 삶이 반듯한 모범생의 직선, 마영훈의 삶이 삐뚤어진 사선이라면, 게이코의 삶은 묘사가 불가능한 낙서같은 삶이다. 하루하루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아껴왔던 후배가 일당독재주의를 꿈꾸는 반체제 폭력집단에게 억류된 상황을 알고 분연히 들고 일어선다. 본문 속으로 세상의 변화가 그래왔듯,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주체 또한 정치가나 인문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였다. 앞장서서 피를 흘린 정치가와 인문학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피가 역사 흐름의 본질적인 힘은 아니었다. 대체로 그들이 후대에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후대에서 종종 오해하게 될 뿐이다. 봉건사회를 종식시킨 본질적인 힘이 석탄과 증기기관이라면, 간접 민주주의 시대를 종식시킨 것은 나노 컴퓨팅과 바이오테크놀로지, 네트워크 기술이었다. 직접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구상은 약 사십년 전에 어느 나노기술 관련 기업이 자사의 웹페이지에 '솔직한 사회'라는 미래 청사진을 게시하면서 처음 구체화되었다. 청사진에 따르면, 솔직한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은 주민등록증과 나노칩 한 개를 부여받는다. 나노칩은 소유주의 뇌파를 분석하고, 그 결과는 주민등록증에 내장된 네트워크 칩을 통해 중앙 데이터센터로 송신된다. 중앙 데이터센터는 수신받은 뇌파를 데이터베이스로 변환시켜 패턴 분석을 수행한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국민합의 데이터시스템과 똑같은 골격이다. 내용이야 어쨌든 간에, 기껏해야 중소기업의 인터넷을 통한 기업 홍보물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그 회사 취업 희망자들이나 읽어볼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홍보물이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되었느냐? 그 시작은 자치단체별 선거였다. 온 나라는 떠들썩했으나 막상 유권자들은 엄청난 숫자의 후보를 놓고 투표하는 이 선거의 효용성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다. 선거기간 내내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연일 선거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기는 마흔다섯 명의 후보 중에 여섯 명을 찍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선거냐 로또 복권이지, 하고 농담 같은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자 로또는 그나마 가끔 당첨도 되지만 선거는 아무리 잘 찍어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둥, 선거 한 번 해볼려고 공보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했는데 다 읽고보니 선거가 벌써 사흘 전에 끝나있더라는 둥. 여러 파란만장한 농담이 뒤를 이었다. 솔직한 사회 웹사이트는 바로 이런 여러 농담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대의 기술수준으로는 그저 황당할 뿐인 이 청사진은, 농담의 대상으로 꽤나 괜찮은 소재였다. 누군가가 이 웹사이트의 스크린샷을 유포시키자, 삽시간에 패러디 열풍이 불었다. 팸플릿을 패러디한 사진은 인터넷 블로그를 타고 급속히 유포되었다. 하지만 한국 최대 재벌인 스타 그룹이 솔직한 사회를 회사의 광고 모토로 삼으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스타그룹은 나노기술과 무선 네트워크 기술로 솔직한 사회를 이루겠다는 기업 이미지 광고를 내보냈다.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다. '솔직한 사회에서 모든 국민은 의식적인 생각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생각까지도 가장 솔직하게 정부에게 제시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평등한 의견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쌓여 정부 시책의 기준이 되고 방향성이 된다. 그것은 인류의 오랜 꿈인 직접 민주주의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에 스타 그룹이 앞장서겠다.'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그러자 다른 대기업들도 엇비슷한 개념의 광고를 경쟁적으로 방영했다. 국민은 솔직한 사회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던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솔직한 사회 프로젝트를 환영했다. 더 이상 솔직한 사회는 농담의 소재가 아니었다. 진지한 현실이며 불붙는 여론이며 단결되고 당당한 정치세력이 되어갔다. 그러자 정치권은 당황했다. 여당과 야당은 한국 역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를 완벽히 존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성된다면, 더 이상 국민의 대변인 같은 것이 필요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의회를 통한 간접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따라서 정당도 필요없게 된다. 이로부터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있었다. 기존의 지역, 학력, 재산, 정치관 등으로 복잡하게 분화되어있던 사회 갈등은 정치인과 비정치인의 대결구도로 재편되었다. 돈이 있든 없든, 공산당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전라도든 경상도 든 간에 그들은 더 이상 갈등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단결했다. 그리하여 양 진영의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정치권의 솔직한 사회에 대한 탄압 공세는 파상적이었다. 스타그룹을 비롯한 주요 재벌 그룹이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총수가 구속되고 주식이 폭락했다. 솔직한 사회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는 전경에게 강제 해산되었다. 북한의 핵미사일설, 미국의 북한 공격설이 불거져 올랐고, 물가는 고점과 저점을 반복하며 국민을 정신없게 했다. 그것은 마치 정치가 국민 생활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무대 같았다. 아울러 간접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변장한 파쇼에 불과하다는 증거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갈등은 어느 날 단숨에 끝이 났다. 폭격기 한대가 국회의사당에 자폭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그 날은 '솔직한 사회'는 국민의 뜻이 아니라 일부 불평분자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함을 천명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정치인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전날 룸싸롱에서 술 먹느라 늦게 나온 정치인도 없었고, 해외 시찰을 명목으로 여행을 떠난 정치인도 없었다. 여야 정치인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였고, 그들이 자폭테러 한 번에 몰살당했다. 이로부터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 모조리 사라졌다는 것은 기존의 정치세력이 모두 없어졌음을 의미했다. 살아남은 정치인은 있었으나,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부 또한 재편되었다.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정부 기관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없어져, 마침내는 모두 사라졌다. 국민이 실시간으로 그들의 의견을 가장 솔직히 전달하는 한, 입법부나 사법부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정부에는 오직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조직만이 남게 되었다. 그 후로 오 년. 역사책에서 시대 구분을 해도 좋을 만큼 세상이 변하게 되었다. 완전한 직접민주주의의 세상이 이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