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행세를 하면 되는 건가?」 차마 대답하지 못 하는 하나를 대신해 제이든이 물었다. 제대로 맞는 말인데도, 하나는 얼굴을 붉히며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언제까지?」 「그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요.」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를 빤히 바라보던 하나가 불쑥 엉뚱한 말을 꺼냈다. 「혹시 그런 말 들어 봤어요? 계약 연애라고.」 하나는 아무리 수지타산을 따져도 그가 밑지는 이 계약이 성립된다는 것 자체가 미지수란 생각이 들었다. 「제안해 봐.」 「네?」 「내가 탐낼 수 있는 조건을.」 *** 「하… 이 계약은 성립인가요?」 「얼마든지. 다만 기간은 내가 정하는 거로 하지. 내가 이 관계에 질릴 때까지로. 어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백승호를 떨쳐낼 수 있다면….
늘 이런 식이었다. 항상 제 것을 빼앗고도 오히려 적반하장에 안하무인인 태도. 생각할수록 이가 바드득 갈린다. “어차피 언니가 제출했으면 세상 빛 못 봤을 거야. 디테일이 다르잖아? 내 덕에 언니 디자인이 새롭게 옷을 입고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해.” “매번 이런 식이지. 항상 넌 내 것을 뺏고도 오히려 당당했어.” 채윤이 이내 실소했다. “그러게 왜 뺏겨. 바보같이.” “…….” 언니인 채란의 것을 제 것처럼 여기던 여자, 이채윤. 드디어 채란에게도 채윤의 것을 정당하게 탐낼 기회가 왔다. 그 남자 서강찬이 무감한 시선으로 내뱉었다. “우리 결혼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