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슈페 에얄 로드리. 처리 완료. 왕궁으로 복귀한다.” 온 가족이 몰살당했다. 신이 계신다면 부디 바라건대, 내 손으로 저들을 처단할 기회를. 이유조차 모른 채 스러져간, 사랑하는 이들을 내 손으로 지킬 수만 있다면. 제발 단 한 번만. 간절한 바람에 신은 나의 손을 잡아, 두 번째 기회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죽지 않았다. ***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무엇인지요.” “대답해 줄 건가?”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반역이 아니겠습니까.” 당돌한 그녀의 대답에 키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나 금세 입가에 웃음이 만개한다. 이러니 로드리 공녀에게서 관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무엇 하나 제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으니. “오늘 그로버 왕국의 공녀가 죽었다지.” “알고 계시는데도 저를 부르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알면서도 키안은 굳이 되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준 채,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댔다. “정녕 그대가 죽였는가.” 키안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끝없는 환생 속, 이번에는 황가의 번견. 공작가의 영애였다. 사랑을 위해 가문을 배반하고 비로소 생의 끝을 맞이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여덟 살 자신의 모습.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생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야 하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 “저는, 황권에 도전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지난 생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 번견의 이름을 갖되, 사랑하는 디오발드를 지키고 그가 사랑하는 제국을 지켜내리라 다짐했는데. “로사나, 나를 이용해 당신의 뜻을 이루세요.” “나의 파트너가 되시오. 로사나 에우트 에스페란사.” 예정되어 있던 약혼자 요제프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 파트너를 핑계로 자신을 먼저 찾아온 황태자. 디오발드. 지난 생과 다른 건, 두 남자의 구애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힘. 오롯이 저만이 가질 수 있는 권력. 공작위를 물려받는다. 그것으로 제국과 자신의 저주받은 삶을 끝내야만 했다. “개는 주인을 물지 않아요. 영원한 충성심으로 보답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