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황후 폐하께서는 모르실 거예요.”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되던 날, 기사들에게 끌려가는 에리얼을 보며 공주가 말했다. 올라간 입꼬리와 남의 불행을 보며 기쁨에 반짝거리는 눈동자, 선량한 가면을 벗은 이비엔 공주의 얼굴은 음침하고 악독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에리얼은 자신을 비난하는 무수한 시선과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초라하게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공작저로 돌아가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 혹은 그보다 못한 삶뿐이었다. 하지만……. . . . “저를 내보낼 때 다시 잡아둘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안 하셨나 봅니다.” 이제껏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왔다. 에리얼은 엉망으로 일그러지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이젠 그들도 겪어볼 차례였다.
긴장과 설렘을 품에 안고 식장에 입장한 순간, 하객석에서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맞춘 것처럼 결혼 예복과 똑닮은 옷을 입은 그녀를 보고 당혹스러워 하는 건 나 뿐인 듯했다. “원래 짓궂은 성격인데 장난을 친 모양이에요. 이 정도로 식이 망쳐지지는 않았어요. 나중에 혼낼 테니 너무 심각하지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남편이 이어 말했다. “유리엘이나 백작가 사람들은 나와 가족 같은 사이니 당신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모욕적인 결혼식을 마치고 들어간 그곳은 집이 아니라 감옥이었다. “오늘 폐하께서 당신을 수도원에 보내겠다고 하셨어요. 이미 전조의 황족들은 전부 죽고 없는데 당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겠다니, 지나친 자비지요.” 끝내 모든 걸 잃은 내 앞에 내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그 여자가 찾아와 말했다. 아이도, 가족도 잃고, 얼굴도 망가졌다. 세상을 등지고 뛰어내리던 순간 독하게 저들을 저주하고 맹세했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그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리겠다고. 그런데...... 그 소원이 이뤄졌다. * * * “헤일라,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는 겁니까?” 남편이 벌게진 눈으로 물었다. 나를 향한 시선엔 의심과 분노, 질책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내 곁에 있는 이를 향해서는 화내지 못했다.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상대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대로 끌려가려던 순간, 크고 억센 손이 내 손목을 붙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떼어냈다. 눈앞에 눈부시게 잘생긴 얼굴이 보이고, 그 아래 내 것과 무척 비슷한 연미복이 보였다.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한쪽 손을 내밀며 물었다. “저번에 했던 그 말 아직 유효합니까? 내가 당신 사람이라던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