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것들을 생각한다.함부로 그리움이 번지고 사랑이 피어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일들.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홍은동에 집을 산 건 다분히 충동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그만큼 남자는 무료했고, 때마침 마주한 서은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다.‘오랜만이네.’‘…….’‘기억 안 나는 건가?’오만하고 도도했던 여자는 눈빛마저 침착하고 단정하였는데,주혁은 여전히 그 모습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특유의 청명하고 시원한 남자의 웃음이 떠오른다.이어 서은의 번호를 묻고 갖고 하는 말들도 떠올린다.‘나랑 사귈래?’서은은 픽 웃었다.그날, 홍은동에서 남자와의 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삶이 화려하여 인생이 심심한 것처럼 굴던 남자.서은의 사소한 무언가가 남자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어 남자의 흥미가 동했을 뿐.그러니 남자는 곧 서은도 잊을 것이다.*이 작품은 15금으로 개정된 작품입니다.
남자가 또 웃었다. “자신하지 말지.” 하지만 이번의 웃음은 건조했다. “그러면 꼭 한번 그 취향 꺾어 보고 싶어지는데.” “왜, 제 애인이라도 되시게요?” 그 웃음이 은조는 불쾌했다. 대답조차 하지 않는 남자의 오만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비웃는 남자의 태도가 자꾸만 은조를 불쾌하게 했다. “애인은 됐고.” 남자의 눈이 느리게 은조를 훑었다. 고작 그뿐인데 왜인지 은조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주먹을 쥐고 꿋꿋이 견뎠다. “잠깐 놀아 줄 수는 있는데.” “…….” “어떻게, 한번 놀래?” 한없이 가벼운 투. 목구멍 아래 깊은 곳이 들끓는다. 수치심인가. 모멸감인가.
그 남자, 아니 그 새끼가 쓰레기라는 건 듣자마자 알았다. 시작은 사소한 호기심이었다. 두 번의 파혼 전적이 있는 동생의 약혼자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차갑지만 다정하고, 강인하지만 우아한 남자. “나랑 잘래?” “싫어.”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는 건 취향이 아닌데, 오늘은 그런 게 끌리네.” “…….” “정말 나랑 잘 생각 없어요?” 그러나 직접 만나 본 남자는 소문대로 다정한 쓰레기였고, 가볍고 악한 본성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희에겐 남자가 필요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으니. 그렇게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속이며 남자의 사랑을 갈구했다. 온통 거짓뿐인 연애의 시작이자, “좋아. 좋아해. 좋아해. 내가 당신을 많이 좋아해….” “계속 좋다고 해 봐. 실컷 예뻐해 줄 테니까.” 결국엔 죄가 될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