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진서
평균평점 3.96
네가 죽기를 바랄 때가 있었다
3.96 (68)

크로이센의 황제 카를로이는 황후 이본느를 증오했다. 하루 세 번쯤 그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원수인 델루아 공작을 꼭 닮은 얼굴도 싫은데, 아무리 모욕을 줘도 변함없이 무심하고 냉담한 성격은 더 끔찍했다. 죽든, 사라지든 그저 제 눈에 띄지 않는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가 그 소원을 더는 바라지 않을 때에.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당신을 가지고 싶어요. 삶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딱히 재밌지도 않았다. 내게 주어진, 주어질 것들 중 진실로 원한 건 그 무엇도 없었으나, 모든 건 이미 완벽하게 정해져 있었다. 딱 하나, 그 남자만 빼고. “뭘 하든 내 탓을 하면 돼.” 지루할 정도로 잘 짜인 인생에 제멋대로 끼어든 남자가 마치 사탄처럼 속삭였다. “당신은 어쩔 수 없었다고. 내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거라고 내 탓을 하면 돼요.” 그 남자는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더럽고, 질 나쁜 것이었다.

네가 죽기를 바랄 때가 있었다 외전
4.0 (1)

크로이센의 황제 카를로이는 황후 이본느를 증오했다. 하루 세 번쯤 그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원수인 델루아 공작을 꼭 닮은 얼굴도 싫은데, 아무리 모욕을 줘도 변함없이 무심하고 냉담한 성격은 더 끔찍했다. 죽든, 사라지든 그저 제 눈에 띄지 않는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가 그 소원을 더는 바라지 않을 때에. ▶잠깐 맛보기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제 궁에 오실 건가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너무 작아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제야 카를로이는 이본느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평소 거만한 무표정이라 싫어했던 얼굴엔 미묘한 감정이 어려 있었는데 무엇인지 정확히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눈은 그대로였다. 공작의 눈을 그대로 닮은 진득하고 불쾌한, 초록빛의 곧은 눈. 그 눈에서 카를로이는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불쾌한…… 익숙함이었다. “……글쎄. 그곳에 황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 갈지도 모르지.” 식탁 위에 놓인 얼음도 카를로이의 목소리보다는 덜 차가울 터였다. 몇몇 시종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저, 하지만…….” 냉대에도 이본느는 포기하지 않고 또 입을 열었다. 매사 무관심하다는 얼굴로 있을 땐 언제고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카를로이는 결국 짜증 섞인 손길로 테이블을 쳤다. “그만 좀 하세요, 황후.” 그러고는 식사도 채 끝내지 않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 이후로 몇 번 없던 식사에서 이본느는 다시는 식사 중에 황제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카를로이 또한 이본느에게는 단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지났다. 카를로이는 언제나 다른 여자들을 파티에 데려오고, 이본느는 카를로이의 존재를 무시한 채로.

부고

<장관 레이 크로포드, 부인으로 인해 곤욕을 당하다> 로즈 크로포드 장관 부인께서는 아직도 오르투란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신 듯하다. 우리와는 몹시 다른 문화를 가진 볼턴 출신 외국인인 그녀는 얼마 전에도 파업 관련한 불미스러운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관련 내용은 본지 1905-280호를 참고하세요.) 로즈 크로포드 부인께서는 예전부터 모국 볼턴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을 숨기지 못했었다. 전쟁조차도 크로포드 장관의 지지율 상승 가도를 막지는 못했으나, 로즈 크로포드 부인께서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내셨다. <데일리 오클리 리뷰>의 충실한 독자분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크로포드 장관이 호감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저번 조사보다 10퍼센트 넘게 떨어진 것이다. 직전의 조사는 그의 결혼 전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하락의 원인은 명확하다. 보수당의 모 의원은 이 사태를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혀 왔다. 대중이 반기지 않는 결혼 이후 자주 구설수에 휩싸이는 크로포드 장관을 계속 보수당의 얼굴로 내세우기가 주저된다는 것이다. 과연 이 나라가 가장 사랑했던 정치인 중 하나인 레이 크로포드가 아내의 미색에 홀려 잘못된 결혼을 선택한 남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다. - 데일리 오클리 리뷰, 존 도널드 *본 작품은 리디 웹소설에서 동일한 작품명으로 15세이용가와 19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라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