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도서는 15세이용가 도서입니다.생을 마감하려고 했다.“벗어나면 뭐해.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야.”“고사리도 누구는 시장 바닥 오백 원짜리 먹는데 누구는 백화점에서 산 유기농 만 원짜리 먹는데요.”“그래봤자 고사리야. 만원이면 특별한 줄 알아? 오백 원짜리를 만원에 팔아도 아무도 몰라. 결국 고사리는 그저 고사리인거야. 고사리를 만원에 판다고 해서, 금칠을 한다고 해서 소고기가 되는 건 아니야.”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썩은 고사리로 좁은 골목길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나와 가자.”나를 불행에서 꺼내주겠다고, 썩은 고사리를 물에 헹구고 잘 빗어내어 금칠한 백화점산 고사리로 탈바꿈 시켜주겠다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누구세요?”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분다. 몸도 마음도 얼려버릴 것 같은 한기가 불어 닥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