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에게 선택받은 자는 황후가 되리라.아리스만 제국에 볼모로 잡혀 간 망국의 왕녀 엘라.골방 같은 후궁전에 갇혔던 그녀는 어느 날 비델리안의 드레스에게 선택받는다.황제에게 사랑받게 된다는 드레스의 마법.그러나 끌리는 것은 황제의 동생이자 전쟁귀라 불리는 힐스만이었다.그에게는 불면의 저주가 있었는데…….본문 中힐스만이 제단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려 엘라의 허리를 감쌌다.그의 코가 엘라의 목덜미를 훑었다.“이렇게 닿아서는 잠들지 않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윽……. 더러운……! 떨어져!”“대화를 좀 해야겠군. 예상하는 것처럼 침실 시중을 들라는 게 아니니까 진정해.”눈앞엔 힐스만이 앉아 있었다.온 대륙이 두려워하는 그 전쟁귀가 자신을 향해 무릎 꿇은 채로.“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들어주지. 그러니 내 손을 잡아.”“…….”“마법을 부려라, 그날처럼.”
<워 오브 갤럭시 히어로즈>.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뒤 수만 년이 지난 미래를 배경으로, 우주의 영웅이 되어 전쟁을 벌이는 스페이스 무쌍류 전략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세상 속에 있었다.그것도 은하를 아우르는 초거대 우주재벌, ‘솔테라’의 101번째 자식으로!온갖 종족이 은하인으로 뒤섞여 살아가고, 기술화된 마법과 마법 같은 과학이 공존하며, 영혼의 존재마저 해석된 이 세계는, 그 어떤 시대보다 금력, 그리고 무력이 중요한 시대였다.그리고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주어져 있었다.“그래, 전생에 해보지 못했던 돈지랄이나 한번 해보자!”
<어둠의 양보> “이 세상 얼마 못 간다. 있을 때 잘해보는 거야. 한세상 재미나게 놀아보는 거지 뭐.” IMF와 정권 교체 이후 탄생한 벤처 거품 시대, 달콤한 어둠에 중독된 자들의 찬란한 몰락의 연대기가 시작된다. 2013년 『사이공 나이트』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무서운 신예로 떠오른 작가 정민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전작에서 베트남 호찌민에 모여든 한국 사내들의 음모와 배신, 비극적 죽음을 압도적인 서사로 그려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추리소설 중 단연 으뜸이었다. 한국 문학의 갱신을 말할 때 맨 앞에 내세울 작품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만큼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드디어 선보인 이번 작품은 벤처 열풍이 불던 시기의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원대한 실험과 타락한 욕망이 교차하는 대한민국의 낮과 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전작의 비극적 파토스 대신 세기말적인 유희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문제작이다. 추천사 『어둠의 양보』는 작가가 강남의 벤처기업에서 일할 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작품이 허구가 아니라 실화가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소설 속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진짜 묘미다. 2000년대 우후죽순 생겨난 벤처기업들. 그곳에 한국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 소설은 그들의 욕망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하는 김도술은 인생의 반을 어둠 속에서 보낸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음지에서 양지로 걸어 나가는지 소설은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새롭고 재미있다. _강희진(소설가,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자) 요망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현존했던 역사와 인물을 신뢰하지 않는다. 현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가 한 몸에서 기생하는 기묘한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과 얼치기 예술가와 지식 양아치, 허름한 오입쟁이들이 펼치는, 어둠의 양보로 만들어진 낮의 세계. 이 역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역사다. 어처구니없음? 그렇다. 『어둠의 양보』에는 그 괴상망측한 세계가 구질구질하면서도 덤덤하게 구연된다. 순식간에 읽었다. _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책 속에서 마침내 천운이 그를 방문했다. 1997년 초겨울, IMF라는 괴물이 대한민국을 습격했다. 그는 천부적인 사냥꾼이었다. 사냥감을 쫓지 않고 매복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고독한 사냥꾼.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한 방으로 거대한 사냥감을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 뼛골 깊은 사냥꾼. 대부분의 재벌 기업이 망했던 그 시절, 그 빈틈을 김도술은 놓치지 않았다. 그 틈을 파고들어 광막한 빈자리를 순식간에 차지했다. 중앙정보부의 전설적 요원 김도술은 대한민국 경제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사악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남았고 그 사악한 세상을 마음껏 비웃고 마침내 그 사악한 세상에 승리할 운명의 정예 기업인 김도술 회장, 사악한 세상을 더욱 사악하게 만드는 일에 막 맛을 들인 정예 정보원 이기헌, 사악과 쾌락의 경계에서 어리둥절해하며 희희낙락하는 정예의 오입쟁이 겸 정예의 알코홀릭인 양희석과 한정수, 사악한 세상의 맛을 진하게 본 정예의 구조 조정 전문가 권준도 사장, 사악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더해 그 사악의 농도를 묽게 만드는 정예 여급 빨간 립스틱과 하늘색 원피스.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라도 출신의 노회한 정치인이 대통령에 덜컥 당선되었다.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라 경제가 순식간에 거덜 났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평범한 이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국가 안위 시스템, 정확히 말하면 정권 유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덕분에 전라도 출신에 사형 선고를 받고도 살아난 늙은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거짓말 같았던 정권 교체와 함께 이기헌은 골방에서 햇빛 찬란한 양지로 뛰어나왔다. 양지에 나온 이기헌은 순식간에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속도였다. 이정아는 사실 남자들을 혐오했다. 그녀가 만난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러했다. 부자이지만 열등감 덩어리, 똑똑한 것 같지만 잔머리에 사기꾼, 달콤한 말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 거짓말쟁이, 피스톤 운동의 일인자임을 자부하지만 정작 만족을 주지는 못하는 일차원 섹스 머신, 섬세하고 자상하며 다정하지만 결국은 의처증 환자, 학벌이 좋다는 과거를 가슴에 품고 사는 완벽한 멍청이, 정직하고 쓸모도 있지만 자기 여자한테는 쓸모없는 얼간이 중의 얼간이, 조용하고 성실하며 근면하지만 가끔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켜 주위를 매우 곤란하게 만드는 얌전한 또라이 등등. “IMF가 와서 돈 많은 이들이 많이 망했소. 그 틈에 돈 많이 번 이들도 많지. 나도 그렇고 말이오. 그런데 그거 다 거품이야 거품. 인터넷 회사 세워서 수백억, 수천억 번 젊은 친구들 있지 않소? 인터넷 전화, 인터넷 상가, 인터넷 포털 등등. 뭐든지 인터넷만 붙이면 돈이 됐지. 그런데 말이오. 그치들 대부분, 1년 버틸 수 있으면 성공한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오.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닌 거요. 그런데 말이오. 실력은 있고 희망은 넘치는데 잔재주가 없는 친구들이 있소. 나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고 싶은 거요.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시간. 아……, 물론, 그들이 세우고 내가 지원한 회사들 대부분은 아마도 망할 것이오. 하지만 사람은 남지. 바로 그거야, 내가 구상하는 사업의 목표가. 사람만 남으면 되는 것이지. 회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지난 하룻밤, 그들은 의기투합했다. 그들의 앞에 막 펼쳐진 것은 찬란한 아침이었다. 음지에서의 전쟁을 끝낸 그들의 아침의 위로를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죄악으로 가득한 아침의 출현에 그들 모두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은 아침 햇살에 노출된 뱀파이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밤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음지가 세상에 가득했으면. 술과 여자와 돈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이 영원하기를. 그들 모두가 붉은 태양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팔자에 없는 돈의 맛을 볼 대로 본 양희석과 한정수는 일명 ‘번아웃 증후군’에 빠져버렸다. 에너지가 고갈된 양희석은 여자에 더욱 집착했다. 섹스 중독자가 된 양희석은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궁 속으로 파고드는 것. 그것이 양희석의 구원이었다. 초기 알코올중독자였던 한정수는 술에 더욱 집착했고, 중증의 알코홀릭 환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빛은 어둠의 양보 덕분에 탄생한 거야. 이것을 알아야 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찬란한 빛. 그 빛의 근원은 어둠이야. 그렇다면 말이지. 이 어둠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어둠의 양보를 무한정 기다려야 하나? 아니지. 어둠의 양보를 재촉해야지. 어둠이란 놈은 돈과 같아서, 결코 스스로 물러서지는 않더라고. 내가 어둠의 세계, 아니 음지의 세상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말이야. 음지, 어둠 속에는 죽여주는 달콤함이 있어. 한번 맛보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달콤함. 달콤함에 중독되면 그야말로 끝이지. 어둠의 양보를 재촉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빛의 탄생을 보기 위해서는 말이야. 어둠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하네. (중략)그렇게 어둠을 겪어봐야 빛을 볼 수 있네.” 다시 룸으로 들어간 양희석과 이기헌은 새로운 사업을 놓고 짧은 토론을 벌였다. 이기헌이 말했다. “일본에서 낡은 여객선을 들여와 선박 사업을 할 것이야. 이게 완전히 돈 놓고 돈 먹기지.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이야. 1년 365일 운행되는 대형 여객선. 이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니까. 세월이야 세월. 돈 버는 세월이 이어질 거라고.” “형님! 그 여객선 세월호라 명명하세요. 내가 카피라이터 출신 아닙니까. 풀살롱도 내가 지어낸 말이에요. 그나저나, 저는 베트남 사이공 뒷골목에 풀살롱 형태의 술집을 열 거예요. 사이공에 꼭 놀러 오세요.” 이기헌과 양희석이 술잔을 부딪쳤다. 그들은 양주 두 병을 싹 비웠다.
<사이공 나이트> 심사위원들의 뜨거운 반응, 하지만 차마 대상을 줄 수 없었던 바로 그 소설! 단 한 편의 소설로 무섭게 떠오른 신예 작가의 바로 그 화제작! 드디어 처음 경험하는 인간 사유의 거침없고도 적나라한 진흙탕! 술과 여자와 지폐가 가득한 욕망의 파라다이스, 사이공의 휘청대는 불빛 따라 술 취한 사내들이 비틀거린다. 이들을 향해 다가오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 누가, 왜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가? 권태와 욕망, 음모와 배신,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식민지 도시의 검은 밤, 냄새 나고 더러운 도시의 뒷골목에 네온사인이 켜지면 살인과 순결한 붉은 피가 사이공의 밤거리를 물들인다. 사이공의 검은 밤을 조심하라! 권태와 욕망으로 찌든 당신의 무기력한 영혼에 순결한 육체와 달콤한 거짓말이 소리 없이 다가와 아직 붉은 피와 모든 현실을 송두리째 빼앗을지도 모르니. “『사이공 나이트』는 결말의 반전까지 몰고 가는 서사적 파워가 강한 몰입도 높은 소설이다. 중년의 피로감이 짙게 밴 남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이 다다르게 되는 비극적 죽음 혹은 삶을 누아르 풍으로, ‘수컷’ 향기 짙게 다뤄 남성 독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단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사이공 나이트』는 베트남의 호찌민에 모여든 한국 사내들의 음모와 배신, 비극적 죽음을 그린 장편소설이다(사이공은 호찌민의 옛 이름). 특히 정식 문학수업을 받은 적 없는 작가 지망생의 처녀작인데도 심사위원들이 입을 모아 호평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이순원은 “읽는 내내 심사위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 편의 영화 같은 전개 솜씨에 놀랐고, 이 박진감 넘치는 얘기를 자신의 경험과 현실의 얘기처럼 풀어나간 작가의 이력이 궁금했다.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경험인지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다.”라고 했다. 소설가 신승철도 “영화 한 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빠른 전개와 결말의 반전은 도저히 신인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추리소설 중 단연 으뜸이었다. 한국 문학의 갱신을 말할 때 맨 앞에 내세울 작품이다.”라고 극찬했다. 추천사 『사이공 나이트』는 제9회 세계문학상 심사 과정에서 대상으로 뽑히길 간절히 바랐던 작품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내가 읽은 추리적 요소를 띤 소설 중 단연 으뜸이었다. 영화 한 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빠른 전개와 결말의 반전은 도저히 신인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사이공 나이트』야말로 한국 문학의 갱신을 말할 때 맨 앞에 내세울 작품이다. -신승철(소설가, 김영사 기획실장) 『사이공 나이트』는 첫 장면부터 뭔가 국제적인 음모가 배어 있는 듯한 불온한 느낌 속에 울리는 한 통의 전화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이공을 무대로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세 남자의 회합이 어긋나는 첫 장의 이야기부터 박진감이 넘친다. 읽는 내내 심사위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 편의 영화 같은 전개 솜씨에 놀랐고, 이 박진감 넘치는 얘기를 자신의 경험과 현실의 얘기처럼 풀어나간 작가의 이력이 궁금했다.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경험인지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순원(소설가) 작가의 한마디 “사이공, 아바나, 마닐라, 홍콩, 서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부끄러움과 죄악으로 가득한 식민지 거리의 낮이 저물고 있다. 시체들과 왕과 공주와 구걸꾼과 얼간이와 염탐꾼이 활보하는 식민지의 검은 밤. 이제는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한, '그 옛날 식민지 거리의 검은 밤'을 소설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 도시는 꼭 사이공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결코 잊히지 않을 식민지 거리의 ‘얼굴들’을 소설로 그려내고 싶었다. 아마도 그 얼굴들은 자신의 혹은 누구나의 얼굴이리라.” 책 속으로 지난 1년 동안 10만 달러가 넘는 빳빳한 오까네가 순철의 주머니로 들어왔다. 얇고 노란 고무줄로 돌돌 말린 지폐 뭉치는 몸값 비싼 창녀의 유방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돈을 건네받을 때마다 순철의 가슴도 터질 듯 두근거렸다. 순철은 지난 1년 동안 오로지 수금만을 위해 열 번 넘게 호찌민을 방문했다. 3~4일 동안의 체류 기간 동안 순철은 하룻밤에 400달러짜리 5성급 호텔에서 묵었고, 아침저녁으로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또한 매일 밤 21년산 발렌타인을 마셨고, 하룻밤 300달러가 넘는 창녀의 젖통을 떡 주무르듯 주물렀으며, 매일 18홀 라운드를 돌았다. 물론 기승과 함께였다. 모든 비용은 순철이 지불했다. 어차피 기승한테서 받은 돈이었지만. 기승이 건네주는 오까네는 낡은 수도꼭지에서 줄줄 흐르는 달콤한 수돗물과 같았다. 상쾌하게 차갑지만 약간 비릿한 수돗물. 순철은 지난 1년 동안 그 비릿하면서 달콤한 수돗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허술한 상품으로 이국의 정취에 들뜬 철부지 관광객을 유혹하는 기념품 가게의 네온사인이 비에 젖었다. 비에 젖은 불빛들이 검게 빛나는 길바닥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종종걸음의 키 작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가볍고 가식적인 각진 얼굴의 소유자, 순철의 눈동자에 쓰디쓴 환멸이 어려 있었다. 베트남 전통 요리를 파는 고급 레스토랑과, 버스에서 금방 내린 단체 여행객들로 부산한 어중간한 수준의 호텔과, 우중충한 얼굴로 높이 서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긴 담벼락과, 하얗고 긴 수염이 난 호찌민의 얼굴이 그려진 고풍스런 옛날 건물과, 불안하게 세워진 오토바이에 앉아 서로의 입술을 빠는 젊은 연인들이 득실거리는 어두운 공원과, 옆구리까지 파인 야드르르한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미녀들이 우글거리는 남성 전용 클럽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단체로 앉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를 마시며 재잘거리는 노천카페를 순철과 대수는 터벅터벅, 지리멸렬한 걸음으로 지나쳐갔다. 도식은 기승의 사업을 믿지 않았다. 기승이 말하는 달콤한 배당금보다는 기승과 순철 그리고 대수와 함께 사이공의 밤거리를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도식은 투자의 대가로 기승과 대수와 순철을 얻었다. 그들과의 싱거운 농담, 즐거운 한때가 투자의 대가라고 도식은 생각했다. 기승과 대수, 순철 그리고 도식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식은 그들과 술을 마시며 서로의 공통점을 곱씹었다. 목표를 손쉽게 달성한 남자들. 한때는 건실했던 남자들. 목표를 이뤘지만 그 대가로 뭔가를 잃어버린 남자들. 그 뭔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미련한 남자들. 하지만 그 뭔가를 애타게 되찾으려 애쓰는 한심한 남자들. 한때는 건실했던, 하지만 지금은 미련하고 한심할 뿐인 남자들이 기승과 대수, 순철 그리고 자신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