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우리가 왜 같은 침대에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잖아. 맘껏 물어봐.” 미치겠다. 피폐 소설 속 악녀의 대역이 된 것도 모자라서 악녀를 죽이는 서브 남주와 술에 취해 하룻밤을 같이 보내다니. “우리 했어?” “뭘.” 남자와 여자가 밤에 침대에서 옷 벗고 할 게 뭐가 있어! “질문은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뭘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봐.” *** 분명 소설 속 엑스트라에 빙의했을 텐데. 어째서 악녀와 내 얼굴이 똑같은 걸까? 그래서일까. 악녀가 자신의 대역을 제안했다. “네가 나 대신 세르리네 라트니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된 이상 주인공들과는 엮이지 말고 인생 즐기며 돈이나 챙기자 생각했는데…… “너, 세르리네가 아니군.” 원작 속 악녀를 죽이는 서브 남주에게 정체를 들켰다. 그것도 모자라서 술에 취해 하룻밤까지 같이 보내고 말았다. 게다가 남자주인공과는 비밀연애를 하던 사이, 여주인공과는 소꿉친구라니?! ‘난 이 소설에 참여할 생각 없다고!’ 나는 그래서 이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기로 했다. 다들 날 놔줘! 난 조용히 즐기다가 사라질 거라고!
가족과 남편이 나를 죽였다. 고작 유산 때문에. 과거로 돌아온 나는 결심했다. ‘내 목숨과 유산을 지켜야 해.’ 저주받은 가문의 라피레온 대공. 나는 재산과 여자에 관심 없는 그에게 일 년간의 계약 결혼을 제안했다. 이제 무사히 이혼만 하면 되는데…… “부인, 이제 와 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어?” 남편이 이상하다. “토지를 줄까, 아니면 광산을 줄까? 아니면 제국?” “샤샤, 테오가 뭐 잘못했어요?” “엄마, 날 두고 가지 마요.” “언니…… 난 언니 없으면 안 돼요.” 심지어 시댁 사람들도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결혼식 당일, 내 연인과 친구가 바람난 사실을 알았다. “레아, 나 임신했어. 애 아빠는 너도 아는 사람이야.” 두 사람의 배신에 나는 죽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과거로 회귀했다. 이건 신이 내린 축복이니 정당하게 복수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체 왜! 어째서!" 내 회귀가 끝나지 않는다. 복수가 성공해도 나는 여전히 죽었고 계속 죽어서 회귀했다. 그래서 이번엔 죽은 척 위장하여 모든 걸 버리고 떠났다. 끝없이 날 죽이는 이 살인마를 피하고자 내 이름까지 버리고서. 그런데. 내가 죽고 난 후에야 다들 날 찾으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 모든 걸 버린 나는 몸을 숨기기 위해 비올렌투스 성의 하녀로 위장 취업했다. 그런데 이 성의 주인이 이상하다. “레페렌티아를 내가 죽였어야 했나. 아니면 가둬두고 지켜봤어야 했나.” 죽은 나를 두고 후회하는 건 물론이고. “죽었다던 레페렌티아가 어떻게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걸까.” 아무도 모르게 숨긴 내 정체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북부의 지배자라 불리는 라체스 비올렌투스 공작. 이 남자는 과연 내 구원인가 아니면 날 죽이고 죽여 회귀 속에 가둔 미치광이 살인마인가.
“부인의 영혼이 내게 귀속돼.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즉, 내 것이 된다는 뜻이야.” 오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베이지는 반역자로 몰려 죽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베이지는 저주받은 저택의 유령이 되어 있었다. “난 죽은 자들이 보이거든.” 모두에게 버림받은 베이지의 앞에 미친놈이라 불리는 이안헬트 데번셀 공작이 발을 들이밀었다. “다시 널 살릴 생각이야, 베이지.” 제국의 그 무엇도 탐낼 것이 없는 남자가 바라는 건 저주받은 폐저택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겨진 베이지, 겨우 하나였다. ***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은 쫓아내야 한다고 수차례 경고했잖아. 날 미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라고 친히 기회까지 줬는데.” 다들 베이지가 미친놈에게 목줄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건가? 응?” 하지만 주인에게 매달리듯 애원하는 이안헬트를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젠 돌아갈 수 없어. 이제 와 없던 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미친놈이 베이지에게 제대로 목줄이 잡혔다고. "부인은 내게 귀속됐고, 난 부인에게 귀속됐어. 잊지 마. 부인이 죽으면 나도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