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연인에게서 비참하게 버림받았다. 그들의 죄를 대신해 처형장에 끌려온 리엘라를 구한 것은 황제 헤르한이었다. 그렇게 황제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많은 것을 내어주었지만, 그뿐이었다. 리엘라는 자신이 감히 그의 세상을 흔들게 될 줄은 몰랐다. “내겐 네 마음이 들리지 않아. 신은 꼭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만 앗아가더군.” 황제가 저주받은 능력자였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리고. “리엘라 블리니테. 판정 결과, 상급 구원자의 자질을 지닌 성녀입니다.” 자신이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의 성녀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동료와 연인에게서 비참하게 버림받았다. 그들의 죄를 대신해 처형장에 끌려온 리엘라를 구한 것은 황제 헤르한이었다. 그렇게 황제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많은 것을 내어주었지만, 그뿐이었다. 리엘라는 자신이 감히 그의 세상을 흔들게 될 줄은 몰랐다. “내겐 네 마음이 들리지 않아. 신은 꼭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만 앗아가더군.” 황제가 저주받은 능력자였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리고. “리엘라 블리니테. 판정 결과, 상급 구원자의 자질을 지닌 성녀입니다.” 자신이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의 성녀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비극적으로 죽었지만 마왕 덕에 두 번째 생을 얻었다. 복수? 성공? 그런 건 관심 없다. 일레니아는 그저 마왕에게 반했다. 나의 구원자. 악랄하고도 영원한 나의 사랑. 어떻게든 마왕에게 안겨 볼 생각인데, 문제는 이 남자의 철벽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안아줘. 한번만. 응?” 애교나 애원 따위는 당연히 소용이 없고. “이건 어때? 안고 싶지?” 몸으로 유혹했더니 애꿎은 곳에서만 날파리가 꼬였다. 선물세례도 안 먹히고, 협박하고 덤벼봤더니 코웃음 치면서 마왕성 문을 걸어 잠갔다. 칫. 결계인가. “내가 인간 따위를 사랑할거라고 생각하나. 어리석은 짓 그만하고 돌아가. 일레니아.” 일레니아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혐오스러워하는 눈빛이나마 마왕이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이. 낮고 나른한 음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정신이 아찔해지도록 좋았다. * 절대 이루지 못할 짝사랑이란 거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이 오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주교한테 들켰어. 내가 마왕 쫓아다니는 거.” “…….” “결혼해주지 않으면 마계의 벽을 허물어버리겠대.” “…….” “어쩌지? 나 일단 주교랑 결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 “그래. 어차피 당신은 나 안 좋아하니까 상관없겠지.” 아무리 마왕이 매정해도. 평생 답 없는 외사랑이더라도.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해왔는데 일레니아는 어느 순간 온 마음이 걸레짝이었다. 일레니아는 난생 처음으로 울면서 돌아섰다. 그때조차 마왕은 일레니아를 붙잡지 않았다. 예고에 없던 벼락이 내리쳐, 주교가 살던 신전이 무너져버린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