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희
김도희
평균평점 4.63
프티아의 왕자
4.25 (2)

그토록 운명을 증오하면서도 어쩌면 믿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우린 서로에게 구원일 거라고, 네게 나는 전부일 것이라고. 그것이 오만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놓쳐 버린, 놓아 버린. 그래서 결국엔 망가트려 버린 순간 깨달았어. 나를 떠난 네가, 너를 놓친 내가 이미 운명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물론 이런 후회 따위, 이제 아무 쓸모없겠지만……. “이런 내가 감히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운명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인간뿐이라 믿던 한 남자와, 평생을 운명 아래 휩쓸려 살아온 두 사람. “……사랑해. 네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을 만큼.” 여자는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 사이로 그토록 참아 오던 눈물이 결국 흘러내린다. 얼굴이 모두 젖을 때까지. 우는 모습 같은 건 두 번 다시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젖은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사랑해요.”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그들의 앞에 모든 것이 결정지을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트로이의 종막이 올랐다.

공주는 혼자 남아서
5.0 (1)

“사랑에 굶주린 여자만큼 쉬운 건 없지. 당신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 분명해.” 수백 년간 그 어떤 제국도 정복할 수 없던 왕국 티텐. 와스터 제국의 왕자, 히폴로테스의 목적은 오로지 티텐의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뿐. 티텐의 멸망을 위해, 나라를 버릴 아군을 위해, 그는 사랑을 연기한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강해지기 위해 그녀를 기만했다. 쓸모를 다한 여자가 탑에서 몸을 던진 순간, 누구보다 절박하게 여자를 움켜잡을 줄 모르고. * 탑에 갇혀 살아온 삶 속. 어미를 죽이고 얻은 삶은 그림자뿐이었다. 죄책감에 존재마저도 부정해 오던 어느 날 나타난 이국의 남자는 지나치게 반짝였다. 남자는 마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피해도 따라오는 빛줄기. 어둠 속에 숨어 지켜보다가, 손을 뻗어 보다가, 결국에는 슬쩍 발을 옮겨 조용히 눈을 감고 느끼게 되는…… 그런.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겨우 그걸로 사랑에 빠졌다. 정말 우스웠지만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결코 우습지도, 가볍지도 않아서. 그를 위해서 나라를 부수고, 왕가를 배반하고, 그래 모든 걸 뒤로하고…… 주저 없이 그를 선택했다. 또다시 혼자가 될지 모르고. * 그는 태양이었다. 건너편은 암흑뿐인, 반쪽짜리 태양. “나를 사랑해.” 나를 비추지 않는 그가 명령했다. “예전처럼 나를 사랑해 줘.”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은 표정으로.

에코, 나의 에코
5.0 (1)

“네가 불쌍해서 동정했어. 그뿐이야.” 어느 날 나타난 이방인. 구해 주고, 치료해 주고, 지켜 주고, 반지를 찾아 준 남자. 그는 고독한 현실을 잊게 만들어 주는 존재. “목소리가 닮았어.” “너는 몰라. 내가 얼마나 그 여자를…….” 누군가의 대신이라는 걸 알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기꺼이 그 여자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그가 전쟁을 몰고 올 적군이라 하더라도. “약혼을 결정했어.” “그 말은 지금 저보고 정부가 되라는 말이에요?” “…알아서 해석해.” 나를 비참한 자리로 끌어내린다 해도 당신이 내 손을 놓는 그날, 흔쾌히 놓아줄 다짐으로. “공주와 결혼할 거야.” 약혼, 그리고 결혼. 이건 준비해 온 이별. 그 끝에서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 “곁에만 있게 해 줘. 너의 무엇이라도 좋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후회는 남은 자의 몫이었다. * * * 이건, 짊어진 짐을 내려놓게 만들어 주는 목소리. 눈물을 말려 주고, 메아리치고 메아리쳐서 영원히 내 곁에 맴돌아 주기를 바라는 목소리. “너는 바람 같아. 네가 있어서 나는 세상이 살아 있음을 깨달아.” 그녀를 되찾기 위해 쌓아 온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 주세요!

열여덟의 첫사랑, 이후 10년 만의 재회.사랑을 몰랐던 그날의 소년이 돌아왔다.지긋지긋한 꿈도, 간절한 바람이 담긴 환영도 아닌 그가.“현선아.”현선은 다정한 목소리에 불쑥 고개를 치켜들었다.익히 알고 있는 도윤의 외관이 새삼 사랑스럽게 와 박혔다.심장에 가해진 타격 또한 컸다.덜 자란 애처럼 말 한마디 제대로 내뱉기 힘이 들 만큼.“나랑 결혼해 줄래?”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계획적인 결혼.사랑은 나 혼자만의 것임을 알면서도현선은 그의 청혼에 응하기로 마음먹는다.네가 누군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시작한 일이었으니.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차오른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눈을 휘며 웃기도 했다.“사랑하지 않는 거지?”“그런 감정놀음 이제 지겨워.”“사랑할 일도 없는 거지?”현선은 결국 두 귀를 틀어막았다.“그래.”***“나는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그는 현선의 보드라운 뺨을 쓸어내렸다. 그 감각 뒤로, 온몸을 붉힌 채 안아 달라 손을 뻗던 여자가 떠올랐다. 혹여 내가 밀어낼까, 젖은 눈을 들어 소심하게 눈치를 살피는 모습까지도 세세하게.“너랑 하는 생각만으로도 흥분해서 난감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사랑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가정부 취급도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곁에 머물기를 택했다.너무 아픈 비밀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15세이용가로 개정한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