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양
한태양
평균평점 2.75
사준의 종

“걔 인생에 유일한 건 사준, 나 하나라고. 왠지 알아?”“다, 죽었거든.”“종희가 좋아한 건, 다 죽어버렸다고.”이종희.어쩌다 이 여자가 좋아하는 건 다 죽어버리기를 바랐던 걸까.교실에 조용히 앉아 존재감이 없던 여자아이는1학년 땐 인사를 건네왔고,2학년 땐 선물을 갖다 바치기 시작했다.그 무렵 종희는 ‘사준의 종’으로 이름이 회자되었다.뭐가 됐든 하나는 확실했다.자신을 좋아한다고 뒤꽁무니 빠지게 쫓아다니던 여자애 중에선 단연 그 질김이 1등이었다. 결이 다른 추종이랄까.그 존재감 없던 여자아이는 어느샌가 사준의 안에 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너 사준 좋아해?”종희에게는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처음부터 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종희는 준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준을 위해서는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주고 싶었다.어떤 답례도 바라지 않는 양 너무도 당연한 베풂이었다.“사준의 종이래. 널 보고.”당사자 앞에서 ‘종’이라 듣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종희는 그 말이 싫지가 않았다.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변하지 않는 나무처럼 묵묵히.하지만 틀어져 버린 그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가 없어져 버리고,그를 피하듯 도망쳤지만 종착역은 다시 사준이었다.“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 내가 제일 혐오하는 거. 그걸 다 해. 근데도 나는 왜, 너를 놓지 못할까.”다시 만난 사준은 예전과 달랐다.그의 관심은 집착으로 변해 있었다.“튀는 건 참 잘하지. 변하기도 참 잘 변해. 응?” 6년 만의 재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오기로 뭉쳐진 집착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네 감정이 두려웠다. 뒤틀린 집착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정말 이게 사랑이라면, 이것도 사랑이라면.차라리 그 편이 더 쉬운 길일지도 모르겠다고.“너만 내 옆에 있으면 돼. 나무처럼.”형형히 빛나는 눈동자가 종희를 삼킬 듯이 내려다봤다.그때는 몰랐다.이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본 도서는 15세이용가로 개정되었습니다.

무지한 관계
2.75 (2)

세상 까칠함과 예민을 저 혼자 품고 사는,봐 줄 만한 건 잘생긴 얼굴밖에 없는 무제윤 팀장.하지만 예쁜 것, 잘생긴 것, 아름다운 것을 삶의 활력소로 삼는 지수에게그의 모난 성격 정도는 흐리게 넘겨줄 만했다.“남의 몸 만지면 기분 좋습니까?”자신이 상사의 몸을 만진 추행범으로 몰리기 전까지는!“만져볼게요. 그거라도 원하시면요. 현장 검증이라도 거치면 제가 기억날지도 모르죠.”수는 오해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한편 제윤은 그 사건 이후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즐겼잖아. 이렇게 내 손길이 닿는 거. 은근히 기다렸던 거 아냐?”덥석덥석 잘도 만질 때는 언제고!이제 와 자신을 피하려는 지수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 제윤은결국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가을이란 게 참 이상하죠.”제윤이 느지막이 숟가락을 손에 쥔 채 그녀를 바라보며 비스듬히 웃었다. “그 연애, 나도 당기네요.”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입만 움직이는 미소였다.*15세로 개정한 버전입니다.

파멸하는 시간

스무 살, 희주에게 유학은 해방이었다. 그 남자, 류이석을 만나야 했던 순간을 제외하면. 2주에 한 번씩 파리의 별장에 가면, 그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자신을 말없이 관찰했다. 그 기괴한 행위를 1년이나 지속하고 종적을 감춘 그가 스물다섯 살, 결혼 상대로 다시 등장했다. “스물다섯까진 연희주 씨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뒀잖아. 아이를 가졌다 해도 그 정도는 내가 책임져 줄 생각이었는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재밌어. 세상에 갓 눈뜬 것처럼.” 류이석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실인증을 앓고 있다. 그 때문에 더 미쳐 버렸다는 소문은 파다했고, 그를 둘러싼 구설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알아본다는 얼굴이 연희주, 였다. “어떡하지. 난 연희주 씨 옆에서 숨 좀 쉬고 싶은데.” 그가 내비친 건 사랑이 아니었다. 감당하기 두려운 소유욕이다. 왜 하필 류이석의 눈에 든 게 나인 건지. 그와의 결혼만큼은 피하고 싶어 발버둥 쳐보지만,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넌 내, 빛이라니까.” 이 인연의 끝은 어딜 향하고 있을까. 일러스트: va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