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 이장군. 29연대 6중대 조교. 앞으로 이틀 뒤 전역 예정. 그런 내게 부사수라는 놈이 이렇게 말했다. “연무문 나설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게다가 전쟁이라도 나면 바로 소집되지 말입니다.” 이틀 뒤. 전쟁, 그 이상의 사건이 터졌다. 정확히는… 세상이 박살 났다. 그날, 29연대에 전역자는 또 한 명 있었다.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시계 역시 멈추지 않을 거야.’ 회중시계는 동지이자 연인이던 세연이 며칠 전 태일에게 준 선물이었다. 시계는 움직임을 멈추었고, 혁명은 실패했다. 탐욕을 과소평가했고, 배신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실패한 혁명가는 익숙하지만 낯선 세상에서 눈을 떴다. 그와 함께 멈추었던 회중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몸을 얻어 뭘 하려고 했지? 지배자로 군림하려 했나? 모든 인간을 네 발밑에 꿇어앉히고 멋대로 부리며 이 세계를 네 뜻대로 주무르려 한 거야?” “야야, 그런 거 아니야.” “그렇다면 피의 학살을 벌이려 했나? 이 몸의 힘을 이용해 적들의 몸을 가르고, 그 피로 목욕을 하려 한 거냐?” “전부 아니거든!?” 마왕이 혀를 차더니 팔짱을 꼈다. “잘 들어라, 납치범. 이 몸을 납치해 온 이상 네 놈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