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고요한
평균평점 2.50
잉그람의 등불
2.5 (1)

“저 아이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낮에 뜬 달처럼 창백하면서도 까마귀처럼 칠흑 같은 청년이 선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 만났다. 세상의 끝, 바람의 무덤 앞에서. “이름이 어떻게 되니?” “아샤예요. 아샤 코냐크.” 그는 전능한 마법사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소녀였다. 원래대로라면 조금도 그의 관심을 끌 리 없는. “저, 킬츠가 아는 누구를 닮았어요?” 그런 그가 나를 거둔 이유는 오로지 내 얼굴 위로 누군가를 겹쳐 보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지금도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아.” 흘러나온 목소리가 지독할 정도로 낮았다. 물이 고인 듯 침잠한 회색 눈동자에 빛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네 손목을 낚아챈 다음, 다시 집에 끌고 들어가 영원히 가둬 두고 싶을 정도로.”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진짜 우리의 밤이 시작된다! 서울의 밤을 환상처럼 꿈처럼 떠도는 청춘들 삶과 죽음을 껴안는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 2022년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 『저스티스맨』(도선우), 『로야』(다이앤 리),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 『언맨드』(채기성)까지 매해 독자를 매료시켜온 세계문학상이 올해도 196편의 응모작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고요한 작가의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20대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청춘의 방황과 성장, 죽음의 의미를 깊고도 무겁지 않게 그린 작품이다. 일곱 명의 심사위원단(최원식, 은희경, 권지예, 정홍수, 하성란, 강영숙, 박혜진)은 “죽음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서울 밤의 시내를 풍경으로 세계를 스케치하는 이 소설은 청춘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가운데 여백의 미를 보여 준다.”고 평했다. 권지예 소설가는 “죽음이 이토록 깊고 푸른 밤의 여행 같다면, 우리는 삶을 얼마든지 설레며 견딜 수 있다.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가 청춘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위안을 선물하리라 생각된다.”는 추천의 말을 보탰다. ‘나(재호)’와 ‘마리’는 자정이 넘어 장례식장 일이 끝나면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도보로, 그다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밤새 불을 밝힌 맥도날드를 찾아 광화문 일대를 떠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는데, 소설은 삶과 죽음의 시간을 껴안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가슴 시린 초상에 이른다.”(문학평론가 정홍수) 고요한 작가는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한 권씩 낸 기성 작가로, 단편소설 「종이비행기」가 세계적인 문학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2의 세계

<2의 세계>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 고요한, 권여름, 김혜나, 류시은, 박생강, 서유미, 조수경 일곱 명의 작가가 열어 보인 신비로운 삶의 단면들 1의 문을 두드리면 ‘2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짐작은 가능하지만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내일을. 그런 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삶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끌어들이는 통로가 아닐까. 삶을 1이라 본다면, 그 문을 두드리면 또 다른 세계, 제2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삶 너머의 이야기 말이다. 《2의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출발한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숫자 ‘2’라는 테마로 일곱 명(고요한, 권여름, 김혜나, 류시은, 박생강, 서유미, 조수경)의 작가가 열어 보이는 세계는 현실적이면서도 비밀스럽고,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커튼을 열어젖히면 이내 보이는 바깥세상처럼,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한 겹의 막을 걷고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줄 것이다. 일곱 명의 작가, 삶을 통해 말하는 ‘2’의 의미 삶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 삶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일들. 둘 중에 어떤 게 더 비밀스럽고 신비롭다고 느껴지는가? 물론 후자 쪽일 것이다. 일곱 편의 소설은 우리 삶에 펼쳐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2’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고요한의 <모노레일 찾기>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어느 횟집에서 만난 전 여자 친구 주변을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마음을 ‘모노레일’로 표현한다. ‘두 개’의 선로가 있어서 영원히 하나 되지 못하는 사랑을. 권여름의 <시험의 미래>는 파이널 점독관으로 채택된 구은열이 시험을 점독하는 상황을 그리며, 보이는 세계를 통제하는 또 다른 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방 역시 통제하는 ‘제2의 방’이 있다. 김혜나의 <코너스툴>은 ‘코너스툴’처럼 자신이 그 사람의 쉼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정작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반’ 작가의 사랑을 편지로 그려낸다. 류시은의 <2차 세계의 최애>는 아이돌 쇼케이스에서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현실과 달리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있는 ‘2차 세계’ 그리고 ‘덕질’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면서도, 인생에 있어 진짜 즐거움이 무엇인지 질문을 남긴다. 박생강의 <2의 감옥>은 퍼펙트 도플갱어를 만나 ‘2의 감옥’에 떨어진 2% 부족한 남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0)천공의 세계에 사는 존재를 만난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유미의 <다음이 있다면>은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게 된 미진이 자신과 닮은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담아내며, 미래가 불투명하고 나만 정지된 상태인 것 같을 때 ‘다음’이 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수경의 <이야기 둘>은 죽음과 만남을 통해 긴밀히 연결된 ‘두 개의 시공간’을 그린다. 두 가지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죽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상태이고, 그 속에서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 또 다른 형태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보이지 않아서 더 경이로운 2의 세계로 삶을 산다는 건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을 해도 그 끝은 예상할 수 없고,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며, 오늘은 괜찮아도 내일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기대감이 생기는 것일 테다. 눈에 보이는 삶 너머의 세상, ‘2의 세계’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다. 1(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래서 더욱 삶은 신비롭기만 하다. 우리는 오랜 시간 팬데믹을 겪으며 ‘내년엔 괜찮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2022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막상 2022년을 살면서도 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상황의 익숙함만이 삶에 자리해 있다고 느낀다. 그런 우리에게 《2의 세계》는 잠시나마 우리의 눈을 돌리고 이렇게 위로해줄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오늘이 또 다른 세계로 이끌 통로라고. 1의 뒤에 ‘2’가 있듯 그 후의 세계도 있을 것이다. 숫자 2의 형태처럼 구불구불하고 또 다른 고통과 아픔, 슬픔의 순간과 직면할 수 있지만, 분명 즐겁고 행복한 길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고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그래서 인생을 살 만하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미지의 세계에 발을 푹 담고 가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데에 위로를,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그 세계를 매일 경험하고 있는 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더 이상 한국 문학의 금기는 없다! '멘탈갑' 뉴요커 할머니와 한국 청년의 결혼과 반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었음에도 나중에 깨달음처럼 사랑이 되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음에도 나중에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치게 하는 사랑도 있다.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우겨도 끝끝내 사랑이 되고 마는 사랑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눈을 뜬다. "사랑이 인생을 통해 가르치고, 인생이 사랑을 통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신인문학상에 동시에 당선돼 문단에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고요한이 2020년 9월 출간한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에 이어 다시 장편소설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가벼운 농담 속에 인생과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통찰을 담은 책!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이처럼 솔직할 수 있을까.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도시, 뉴욕에서 스너글러로 일하는 데이비드 장이 뉴요커 할머니인 마거릿을 만나 생긴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여기서 장의 직업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스너글러다. 꼬질꼬질한 보스턴백에 베개 하나를 넣고 뉴욕 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니는 스너글러. 돈을 받고 하룻밤 동안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 안아주는 일을 한다. 눈이 오는 겨울, 장은 인간의 체온만을 나눠주는 대가로 돈을 번다. 하지만 장은 몸을 파는 게 아닌, 자신은 잠옷을 입고 정당하게 외로운 사람을 안아주는 산타클로스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요커 할머니 마거릿을 만나 결혼 거래를 한다. 한국인 불법체류자인 장이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영주권을 따기 위해 백인 할머니와 결혼을 감행하는 시도는 이전의 삼류 영화나 소설 속에서 흔히 본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신대륙을 개척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었음에도 나중에 깨달음처럼 사랑이 되는 사랑 말이다. 장과 마거릿은 그렇게 낯설지만 부정할 수 없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냐고.’ ‘과연 이것은 사랑일까, 아닐까?’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정답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삶에서 가장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은 무엇일까? 노년일까, 가난일까. 이 두 가지의 절망은 모두 악마의 상점 명품관에서 오랫동안 각광받던 상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못했던 보너스 찬스가 생겼다.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던 방향으로부터 돌풍이 불어온 것이다. 임지훈 평론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사랑에 빠진다. 사랑으로 도망치고, 사랑에서 도망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진실한 사랑의 대상을 만났다고. 혹은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끊임없이 긍정하고 부정하는 쳇바퀴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이 없어도 우리의 삶은 돌고 돌 테지만, 그건 단지 우리 삶의 과잉된, 돌출된, 여분의 어떤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사랑에 빠지고, 자신이 모르는 사이 사랑을 지나쳐온 자신을, 과거가 되어버린 사랑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두 손으로부터, 아무것도 남지 않은 두 손에 이르는 그의 순간들을,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면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고요한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4년 전부터라고 한다. 고 작가는 “소설을 출간하면서도 아직도 밤마다 뉴욕의 밤거리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꿉니다. 아직도 화자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문득문득 장이 떠오르죠. 거리를 걷다가도 불현듯 장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하늘은 봅니다.”라고 했다. 작가는 또한 요즘 한국에서의 불법체류자 기사를 볼 때마다 소설에서 자신이 그렸던 주인공의 삶을 떠올렸다고 했다.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는 고요한 작가가 4년 동안 집필한 두 권의 장편소설 중 두 번째 소설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근작이라 아직도 주인공과 함께 하루를 보내며 출간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돼 현대 한국문학의 독창성을 널리 알린 고요한의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동시에 당선돼 문단에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고요한의 첫 창작소설집. 그의 단편소설 <종이비행기>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돼 주목받은 바 있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인간 내면을 관통하며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의 세계는 오늘날 현대인의 숨겨진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개성 있는 문체와 새롭고 신선한 상상력으로 그려 낸 소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우리를 낯설고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가 정말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나?” 블랙유머 같은 부부의 세계 그 결말이 던진 냉정한 질문 표제작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제목처럼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욕망은 반드시 비극을 불러온다는 고전의 법칙을 깨고 더욱 불온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발칙한 작품이다.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대리부를 고용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계획한 남편이 있다. 아내는 치욕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남편이 고용한 남자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는다. 아내가 아이보다 남자를 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월한 2세의 유전자만을 희망했던 남편이 이제 원하는 것은 아내의 사랑뿐. 사랑을 찾아 기꺼이 꿈속에서조차 방황하다 그리움이 사무쳐 마침내 한 폭의 병풍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그는 어릴 적 스님이 된 아버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회화 중에서도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설 ≪몽중방황≫, 이성을 향한 왜곡된 집착을 종이비행기에 접어 보내는 남자의 기괴한 이야기 ≪종이비행기≫,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자의 전 남자친구와 동거를 선택하는 남자를 그린 ≪프랑스 영화처럼≫, 교통사고로 낭떠러지에 추락하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24시간 동안 신과 사투를 벌인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등. 사랑과 작별, 상처 입은 유년으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도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결혼과 이혼, 연인을 위한 특별한 선택 등, 이 소설이 다루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눈부시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자의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며 내면을 성찰한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종이비행기>를 세계적인 문학 저널 ≪애심토트≫에 번역해 소개한 역자 브루스 풀턴과 윤주찬은 그의 작품이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세계를 그렸다고 평했다. 절망은 끝까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옛 도로로 차를 몬다. 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남자는 나뭇가지에 ‘빨래’처럼 걸린다. 이제 그가 발견될 방법은 다른 차가 바로 같은 장소에서 자신과 똑같이 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택시를 보며 그는 신에게 요청한다. “저 택시 사고 나게 해 주세요.” 곧 그가 바라는 대로 사고가 난다. 그러나 운명은 택시기사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구원은 멀리 있고, 절망은 가까이 있다. 나의 구원이 타인의 죽음에 의해 이뤄진다면 그것은 이미 구원이 아니다. 김수영 시의 한 구절처럼 ‘절망은 끝까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_채호석(문학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키우던 고양이가 폭군이 되어 버렸다

수인물 로판에 빙의했다.내 역할은 저주에 걸려 고양이 수인이 된 남주를 괴롭히다가 단명하는 조무래기 꼬마 악녀.이렇게 죽을 순 없지. 당장 원작 개조 들어갑니다.“으, 채찍 극혐.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갖다 버려요.”악녀의 애장품부터 싹 내다버리고.“이 방은 고양이의 관절에 너무 나쁜 환경이야! 빨리 카펫을 깔아! 동대륙산 최고급 카펫이 아니면 안 되는 거 알지?”남주의 안락한 복지를 위해 방도 개조하고.“먀아옹, 눙미야아오옹.”“싫어도 목욕은 해야 돼. 이거 끝난 다음에는 햇볕도 쬐러 나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처량한 쪼꼬미 남주의 우울증도 강제로 치료해 주었다.목표는 황궁에서 쫓겨난 남주에게 황태자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것.여기에 겸사겸사 남주의 적이 되는 공작과 황후도 퇴치해 버리자.그렇게 동분서주 노력한 결과, 쑥쑥 자란 남주는 다시 황궁에 입성하는 데에 성공했다.이제 원작 여주만 데려와서 이어주면 얘도 행복해지고, 나도 내 살 길 찾아 떠날 수 있겠지?* * *“혼담을 주선하겠다고?”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보던 루키아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네, 마침 저기 동대륙에 좋은 여성 분이 계시는데…….”“어째서?”“넵?”“어째서 그래야 하는데?”“그야, 어, 이제 전하께서도 혼기가 차셨으니까……요?”나는 목을 움츠렸다. 루키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그러니까 그대의 말은.”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던 남자의 손에서 서류가 콰직,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지금 나더러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라는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