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여주 #무심여주 #능글남주 #후회남조“너를 만난 걸 죽을 만큼 후회해” 서로 아끼고 사랑해줄 줄 알았다. 남편이 정부에게 푹 빠져서 딸의 죽음까지도 방치해 버리기 전까지는.이제는 푸석해진, 탐스러운 은발의 머리칼을 넘기며 그녀는 독이 든 차를 스스로 마셨다. 타오르는 듯한 고통 끝에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 아닌,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황궁의 모습이었는데. “내가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말하면, 네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삶 속에서 펜리르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새로운 인연들. 이제는 사랑을 믿지 않는 그녀에게 자꾸만 이 남자가 얽혀 들어온다.
그저 백작저에 갇힌 비참한 노예일 뿐이었다. 무장한 기사들과 빨간 혀를 날름거리는 화염이 주인의 저택을 둘러싼 그 날. “어디 가. 너는 이리로 와야지.” 사내의 나긋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케드릭 크롬웰’은 바네사에게 있어서 구원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운명이었다. 결국, 그녀는 남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채 그의 곁을 떠났으니까. 그러나 몇 년 후. “뻔뻔하게, 내 아이를 가지고 도망갈 생각을 다 했어.” 도망간 바네사의 앞에 다시금 그가 나타났다. “네가 누구의 핏줄이건 나한테 그런 건 하등 중요치 않아.” 역적의 후손이건, 도적의 딸이건, 설령 가족을 죽인 원수 놈의 딸이라고 한들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일까. “중요한 건, 아직도 내 이름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는 거지.” 바네사의 어깨로 고개를 가까이 묻은 사내가, 마치 짐승의 것처럼 그르렁거리는 음색으로 말했다. 그의 커다란 손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주인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 바네사의 하얀 어깨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