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하냐?”“…….” “네 짝사랑.”“…….”숨을 들이마시다가 멈춘 영의 어깨가 나무토막처럼 빳빳해졌다. 눈을 끔뻑이는 것도 잊었다.“진행형, 맞구나.”그가 웃었다. 빈정거림, 비아냥에 가까운 비웃음이었다.“넌 뭘 그런 걸 하고 그러냐. 난 도저히 못 해 먹겠던데.”들키지 않으려 참고 또 얼마나 마음을 졸여 왔는데……. 오늘로써 10년의 짝사랑도 종지부를 찍으려 했건만, 하필 유시현에게 들키고 말았다.“이영.”어느 틈에 다가온 그에게선 머스크 향이 은은하게 풍겨 왔다. 가시덤불에 내던져진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는 향기였다.“구두 주운 김에, 내가 너 주워 가도 되냐?” “…… 그게 무슨.”“너, 나랑 살래?”“…….”영은 입술을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주술에 걸려 말을 못 하는 인어 공주라도 된 듯했다.“난 너만 괜찮다면, 네 마음 들키지 않게 숨겨 줄 수 있어.”“선배.”“그러니까 내 옆에서 좋아해. 차정운.”
"그래도 할 거잖아요. 결혼."참으로 이기적이고 잔인한 남자다."그래, 할 거야. 결혼."죽지도 못하게 하면서 숨통을 조여 오고,목줄을 틀어쥐고도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준비하는.그렇지만.그럼에도 이런 나를 원한다면, 그래도 된다면."저 좀 사 주실래요? 오빠 앞에서만 웃을게요.""감당할 수 있겠어?"“…….”“감당할 수 있겠냐고.”남자의 위압적인 눈빛 앞에 재희는 흐린 미소를 머금었다.“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어요?”“반대일 지도 모르지.”“견뎌 볼게요.”“울릴 수도 있어.”“버틸게요.”“결혼 준비하는 거, 그것도 보게 할 거야.”“…….”신태하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예정된 결혼의 끝을 보는 것도, 떠나는 것도 네 자유라고.
“팀장님, 저요…… 저는 파혼했는데요.” 애써 웃음을 삼키는 그의 얼굴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챈 은조의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었다. 느껴졌다. 저로 인해 한 남자의 심리 상태가 정점을 찍다가도 추락할 수 있단 사실을. “그래서?” “저는 파혼녀라구요.” “그게 뭐.” “……아무렇지 않으세요?” “더하면 더했지. 서은조한테 뒤지지 않는 놈이 나일걸?”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원은 알았다. 은조의 머뭇거림, 그리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 건지. “이거…… 썸인가요?” “서은조가 신호를 느꼈다면 썸이겠지, 난 이미 보냈고.” 그의 손이 뺨을 더듬은 것도 아닌데 은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 * * “지금 와서 돌아설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봐. 자신 있으면 해 봐, 어디. 붙잡아 볼 테니까. 잡고 매달려 볼 테니까.” “제가 팀장님한테 어떻게 그래요…….” “자신 없어? 그럼 끌리는 대로 해. 맘껏 흔들어 볼 테니까 넌 그냥 흔들려.” 모순적이게도 이 순간 은조는 답을 찾은 듯했다. 무섭게 몰아붙여도 그의 손만은 따뜻했으니까. 성난 눈빛 이면의 따뜻함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