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랑
비나랑
평균평점 2.00
불친절한 계모
2.0 (2)

뻐꾸기 공작부인 벨라도나. 자신을 구해준 공작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그녀는 회귀한 후 더 이상 예전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ㅡㅡㅡ 공작님의 흔적이 있는 모든 것에 인정받고 싶었고, 가문의 일원으로 나를 품어주길 원했다. 그렇게 한 번의 생을 바쳐가며 공작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노력하던 그 벨라는 죽었다. 그러니 할 만큼 다 했다.    “좋아.” 털어낼 것은 털어내고 남길 것은 남긴다. 오로지 공작님의 유언을 따라 나는 케일란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공작가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3년 뒤면 미련 없이 이곳에서 벗어나겠지. 그러니까 얘들아. 너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겠구나. 그렇게 거부하던 내 관심은 이제 없을 거거든. --- “...어째서 날 혼내지 않아요?”  나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악독했던 아이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말이다. 레이나.” “...” “널 혼낼 생각이 없단다.” “...왜?-요?” 나는 네 마음의 짐을 덜어 줄 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냥.” 너를 위한 도움을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아서란다. ---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그게 다야?” “잘 모르겠어. 어떤 게 행복한 거야?” “가족들도 그렇고 맛있는 음식들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지고 싶은 물건?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행복해질 수 있잖아.” “그럼 너는 뭐가 가지고 싶은데?” “나는...음. 그냥...예쁜 머리핀이 가지고 싶어.” 지금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운 미소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아이는 이내 나를 향해 다짐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머리핀. 내가 줄게.”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리운 과거의 인연이 물 흐르듯 서서히 다가왔다.

당신들의 업보가 되었다

비가 오고 있던 모양이었다. 위에서 떨어진 그녀의 온몸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페일은 의식을 찾자마자 느껴지는 끔찍한 한기가 괴로웠다. 실낱같은 신음이 겨우 열린 입술 사이로 새어나갔다. “하..” 순간 바닥에 있던 피에 젖은 페일의 몸이 불쑥 들어 올려졌다. 자신과 똑같이 차갑게 젖은 타인의 살갗이 느껴진다. 맞닿은 잔뜩 긴장한 몸과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도. “잘했어. 의식 잃지 마.” “아으..” 누구야? 굳은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파들거리는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자, 빗물에 푹 젖어 흐릿한 시야 사이로 그가 보였다. “아이, 오..” 흠뻑 젖은 금발이 엉망인 그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런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티오..’ 그게 페일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사람들은 그랬다. 업보가 있다고. 나쁜 사람들은 꼭 벌을 받는다고. “쿨럭-” 신이시여 알려주세요.  ‘그들은 벌을 받나요?’ *** 고요함은 사라졌다. 설핏 떠진 눈 사이로 아리도록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 송곳으로 마구 찌르는 것 같았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막내 로제 아가씨께서 눈을 뜨셨어!!” 로제 블레앙. 그렇게 나는 나를 죽인 그들의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