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람이 불던 날,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지막 아이. 희온.‘반역의 씨’라는 꼬리표를 숨긴 채, 월국의 황제가 있는 궁궐로 들어간다.하나, 현을 적(敵)으로 둔 숙명이거늘. 어찌하여 ‘사내’로 마음속에 품어버리고 만 것일까.“온아, 나는 널 마음에 담았다.”“매일 밤, 널 품고 잠이 들고 싶다 말하면 거절할 것이냐?”“앞으로는 항상 내 곁에 있거라.”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아 지워지질 않고, 짙게 팬 슬픈 눈동자가 머릿속을 헤집는다.털어내고 떨쳐내려 해도 마치 놀리는 양 더 깊게 뿌리를 내린다.가져선 안 될 마음을 품고, 바라봐선 안 될 사내를 사랑하게 된 반역의 씨, 희온.그런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 여인으로 가슴에 품은 황제, 현.달(月)과 별(星)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슴 절절한 만월(滿月)의 빛이 지금, 당신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가 시리게 내려앉는다.
“하루만 여자 친구 해 줘, 서율.”엄마의 목숨값을 시원하게 날려 먹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던 날.괴로움으로 도망친 비밀 공간에서 율은 도건을 만난다.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달콤한 제안.미친놈이라 생각했지만, 이 악물고 수락했다.이유는 단 하나, 돈이 필요했으니까.하지만 보기 좋게 모든 걸 망치고 도망치듯 떠나 버린 율.8년 후.벼랑 끝에 내몰린 그녀의 구렁텅이 삶에, 다시 한번 그가 나타난다.“여자 친구는 필요 없고, 약혼자가 필요해.”말도 안 되는 위험한 제안을 들고서.“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사랑할.……나랑 한 번 더 거래할래?”분명,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래’일 뿐이었는데.도건은 선을 넘어 율의 뿌리를 뒤흔들기 시작한다.“네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이 거래는 내가 끝내고 싶을 때 끝나. 서율한테는 선택권 없어.”
‘내가 꼭 너 구원해 주겠다고.’꿈 같은 말로 마음을 헤집어 놓고 사라졌던 남자가 11년 만에 나타났다.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선 자리에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친 제 앞에.“나랑 결혼하자.”“그게 무슨…….”“약속했었잖아, 네가 내 목숨 구해줬으니까 나도 그러겠다고.”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라 생각했지만, 우습게도 좋다고 했다.학대당하며 살아가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처음 본 순간부터 감히 마음에 품어 온 사람이라서.“명목상 내세울 결혼이 필요한 것뿐이야, 사업적으로.”그런데, 사업적으로 필요할 뿐이라던 남자는자꾸 사람 마음을 헤집고 마치 자신을 기다려 온 것처럼 행동한다.“네 생각 계속했어.”“그게 무슨 말이에요?”“나는 네가 내 곁에서 진짜로 행복해졌으면 해.”자신과 많이 닮아 있는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엄마를 잡아먹었다는 나와 형을 죽였다는 당신.우리는 이 지옥 같은 구렁텅이에서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시작은 단순했다. “상무님.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상무님 여자 친구…….” 죽어라 모은 엄마의 치료비를 하나뿐인 피붙이가 들고 잠적해 버렸으니, 벼랑 끝에서 떠오른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연기 연습도 하고 뭐든 하겠습니다. 문제없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니까 제가 상무님 선 자리 때 여자 친구 역할 하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매번 사람을 구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그 사람들한테 줄 돈을 나한테 달라고. 일하는 것처럼 서로 원하는 걸 해 주면 되지 않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임 비서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남자의 눈이 평소와는 다르게 번뜩였다. 꼭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것만 같았다. “난 할 거면 끝까지 하고 싶은데. 그래야 감정 이입도 더 잘 되고.” 남자가 거리를 좁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커다란 손을 들어 압박하듯 작은 턱을 움켜잡았다. “임 비서, 내가 상사가 아니라 남자일 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이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지만, 떨리는 속을 감추고 당돌하게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뭐든 다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