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오
서지오
평균평점
지독하게 얽혀서

얼토당토않은 외할머니의 유언대로 결혼을 결심한 현겸은 유림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단칼에 거절하는 유림에게 현겸은 외할머니의 유언을 솔직하게 말하고 계약 결혼을 제의한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유림은 고심 끝에 현겸과 결혼을 한다. 결혼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가족이란 무덤에 들어가야 끝나는 관계였다. 각자의 부모로부터 두 사람은 또 한 번 상처를 받으면서 단순한 계약 결혼에 진심이 담겼을 리 없다며 오해하고 결국 잠시 떨어져 있기로 타협하게 되는데…… *** “하아…… 그땐 고등학생이었잖아.” “아아. 이젠 어른이라서 섹스하자는 말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됐다, 이 말이지?” 느른한 눈빛으로 현겸이 유림에게 입을 맞췄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입술을 현겸은 그냥 놔주지 않았다. “그, 그건 아니고!” 유림이 발끈하자 입술을 떼고 현겸이 희미하게 웃었다. 욕심껏 도톰한 입술을 현겸이 빨아 당겼다.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현겸이 유림의 입안을 제멋대로 유영했다. 입천장을 샅샅이 핥고 혀를 옭아맸다. “으음…….” 새어 나오는 비음에 흥분과 정염이 섞여 나왔다. 참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욕정에 온몸이 불타올랐다. 자꾸만 보드라운 몸에 제 몸을 밀어붙였다. “하아…….” 그녀의 숨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유림은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도 그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눈 떠.” 현겸이 유림의 입술 위에 속삭였다. 아찔하게 넓은 어깨와 잘 다듬어진 근육이 제대로 자리 잡힌 가슴으로 유림의 시선이 따라갔다. “잘 봐, 네가 지금 누구하고 이런 짓을 하는지.” “최현겸.”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겸이 입을 맞췄다. 그래, 나 최현겸이야. 지금 너하고 키스하고 있는 사람은 나 최현겸이라고. 잊지 말라고. 뽀얀 몸이 그의 눈앞에서 유혹하듯 흔들렸다.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현겸의 입술이 목을 지나 쇄골로 미끄러지자 유림의 등이 뒤로 휘었다. ‘알아. 현겸이 아니라면 감히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현겸이라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거라고.’ 사탕을 핥듯 제 입술을 빨아 대는 현겸을 향해 유림이 소리 없이 말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졌다. 살살 굴리는 혀에, 옷 속을 파고들어 민감해진 살결을 훑어대는 뜨거운 손길과 입술에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그가 주는 아찔함에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한숨 같은 신음이 연신 흘러나왔다.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뜨거운 입술이 배꼽 주위를 맴돌며 연신 입을 맞추자 뱃속 한가운데가 찌릿찌릿해졌다.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던 손이 아래로 향했다.

한번 꽂히면

“온아 씨는 나를 안 믿습니까?”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과 함께 나타난 서준환. 온아는 회사 디자인 유출 시기와 맞물려 입사한 준환을, 준환은 라이벌 회사 대표와 연관이 있는 온아를 이중 스파이라고 여긴다. “제가 당신을 믿어야 할까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하나씩 알아 가죠. 먼저, 내가 유온아 씨 좋아한다는 것부터.”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꾸만 자신에게 다가오며 매혹적으로 구는 그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속옷 매장을 둘러보며 열정적으로 제품을 설명하는 그녀의 어깨 위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잘 안 보여서.” 그는 손을 뻗어 온아의 입술을 건드렸다. 그리곤 그린 듯 붉고 선명한 입술을 움직여 속삭였다. “제대로 본 지 오래됐잖아요. 키스한 지 꽤 됐으니까.” 새빨갛게 물든 온아는 준환이 지나가고 나서도 한참 숨을 참아야 했다.

보이프렌드 존

개학 첫 주부터 지각했던 열여덟 봄, 숨 고를 틈 없이 시선을 사로잡는 그 애를 만났다. 강우는 매끈한 손가락 끝으로 껌이 진열된 칸을 스윽 쓸곤 해인의 눈앞에 갖다 댔다. “먼지 있다?” “사장님 손자라고 갑질해?” 멀쩡한 교문 놔두고 담 넘는 애. 상속받은 건물만 열 채가 넘는다는 편의점 사장님 손자. 몸만 좋은 운동에 미친 남자애. 해인에게 강우는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안 좋아하고. 이건 복숭아 알러지 있어서 못 먹는다고 했고... 초코?” 왜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있는 걸까. “나 원래 몸에 열이 많아서 네가 아픈 건지 잘 모르겠다.” 서슴없이 이마에 손을 올리곤 아프냐고 묻는 걸까. “너 나 왜 피해?” 모든 일에 무감한 네가 유독 내 행동에만 기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네 보폭처럼 성큼성큼 다가오는 네게, 나는 떨리는 마음을 들킬까 봐 겁이 났다. 끝내 들킨 마음을 부정해도 넌 눈을 똑바로 맞추고 물었다. “너 나 좋아하지.” 물음표 아닌 마침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