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억을 읽고, 또 지울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진 캐서린. 친구의 기억을 빌려 쓴 <망각의 시간>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제 능력을 이용하여 집필 활동을 이어가려 하지만.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헛되이 사용할수록 점점 힘을 잃어 가는 능력에 작가의 입지마저 흔들리자, 캐서린은 결국 고향으로 내려와 서점 직원으로서 일하게 된다. 그렇게 권태로운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얼마나 걸리지? 당신 능력 다 알고 왔는데.” 캐서린 앞에 낯선 남자 손님이 등장하는데……. *** “너무 대놓고 쳐다보는 거 아닌가.” 캐서린은 살짝 휜 남자의 입꼬리에 머물던 제 시선을 황급히 끌어 올렸다. “……그쪽 쳐다본 거 아닌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낯부끄러운지 캐서린은 얼굴을 잠시 붉혔지만 모건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딴 건 그렇다 치고, 여기. 최대 접촉 면적은 뭐야.” 모건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계약서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손끝으로 계약 조항을 짚으며 캐서린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썹 한쪽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말 그대로야. 그쪽도 내 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왔을 거 아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이 닿으면 닿는 대로 기억이 읽히는 거 아닌가.” “맞아.” “접촉 면적이 넓을수록 기억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건데. 틀렸어?” “당신 말이 맞아.” 그럼 이딴 조건은 필요 없잖아. 모건이 캐서린의 손가락 사이에 끼운 만년필을 뽑아 들고는 좀 전까지 말하던 조항 위로 두 줄을 그었다.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수정된 작품입니다.]첫사랑의 쓰라린 기억에 연애를 쉬고 있던 유진.소개팅인 줄도 몰랐던 자리에 나타난 웬 남자가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차유진 대리님? 더 멋있어지셨어요. 꼭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준혁은 기억도 나지 않는 4년 전 얘기를 들먹이며그녀의 잔잔한 일상을 조금씩 깨뜨리기 시작하고.“내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끓는점이 다를 뿐이니까, 우리는.”뜨겁지는 않더라도 따뜻하게.완전하지는 않아도 온전하게.“웃을 때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웃을 때만?”“이렇게 벗겨 놓으면 더 예쁘고.”결국 유진은 어느새 몸도, 마음도서서히 그에게 얽혀 버리고 마는데.“어딜 봐, 여기 봐야지. 유진아.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수정된 작품입니다.]그러니까 오늘이 첫날이었다.번역가로 참여한 연극 공연을 위해 남쪽 동네, 소슬로 내려온 첫날.이곳에서 시작한 가여운 내 첫사랑을 온전히 지워 없애 버리기로 결심한 첫날.“김준휘 대표님. 적어도 우리 직장에서 공과 사는 구분하고 삽시다.”“아, 우리는 이상한 사이지. 그것도 존나 이상한 사이.”용기 내어 선전 포고도 했지만, 김준휘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급기야 우리는 열아홉 옛 기억에 취해 키스까지 하게 되는데.정작 김준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뭐? 실수? 그냥 잊어버려?“지금 간 보는 거지? 내가 너 좋아한다고 하니까 쉬워 보여서.”“쉽다고 말한 적 없어. 쉬워 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미련을 떨쳐 버릴 수만 있다면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특별히 크게 실수할 기회를 주는 거잖아, 김준휘 너한테.”좋아했던, 아니 좋아하는 남자 품에 안겨서좋았던 기억도 비워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확실히 해. 배이경 네가 허락한 거야.”김준휘는 엄지로 내 입술을 뭉개듯이 닦아 내고는그대로 날 매트리스 위로 쓰러뜨렸다.“그러게 그것부터 확인했어야지. 어디까지가 실수의 범위인지.”아, 뭔가 잘못됐다.우리는 이제 정말이지, 존나 이상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