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정
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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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시옹

재기 발랄한 석 달 된 태아는 자신을 사라지게 하려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엄마에게 서운 하다. 태아는 과연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의 고민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마름모꼴 진흙덩어리들에게 잡아먹히는 악몽으로 시달리고, 처음 듣는 어떤 나라에서 돌팔이의사가 뱃속에서 태아를 꺼내 우물에 풍덩- 빠뜨렸다는 뉴스를 듣고 아연실색한다. 자신의 존재를 반기거나 알아주는 사람은 전혀 없고, 사라지게만 하려는 일관된 환경에 좌절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도 담담하게 버티고 있는 다른 태아 친구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는다. 16주된 태아 친구와 3일 후면 세상 밖으로 나갈 태아 친구 그리고 장애를 가진 태아 친구. 갑작스런 아빠의 해고 소식까지 겹치자 태아의 소망은 자꾸 멀어져만 간다.

앵프라맹스

앵프라맹스는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의 상태. 냉기와 온기 사이의 아주 얇은 틈 혹은 인간으로서는 깰 수도 찢을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아주 얇디얇은 막을 말한다. 지온과 채린 두 남녀의 시점으로 그려낸 가슴 떨리는 사랑 이야기. - 지온 -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녀를 난 잡지 못했다. 그녀를 끌어안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란 인간의 용기는 거기까지였다. 비참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내 지금의 내 선택을 후회할 거라는 걸, 난 그때 절감하고 있었다. 처절하게. 그녀를 떠나보내는 순간, 난 삶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내 인생에서 또다시 누군가를 이토록 열망할 수 있을까. - 채린 - 내 뒤를 따라오며 배웅해주던 그에게 뒤돌아서서 안기고 싶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는 아무도 모르는 섬, 각자만이 알 수 있는 앵프라맹스가 있었다. 아, 어김없이 이번 봄에도 또 그가 생각나다니. 벌써 5년째 매년 봄이면 어느새 그의 생각에 빠져있다. 오래된 사진을 보듯, 내 기억 속의 장면들 또한 여전하다.

크로키

로맨스와 웃음 코드가 어울어진 강은정 작가의 장편 로맨스!  소싯적부터 오직 청파라는 청년과의 로맨스만을 꿈꾸면서 살아온 33세의 강모아. 하지만 언제나 “있는 사람들”만이 모아에게 허접한 행태로 접근해온다. 그러나 줏대 있는 모아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청파란 청년과의 진정한 로맨스를 꿈꾸며 척박한 현실을 인내한다.  8년간 증권회사에서 일에만 매진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모아에게 20대 초반부터 대중없이 반복되는 그 하나의 현상을 발견하게 된 어느 날, 심장이 조여 온다. 곧바로 퇴사를 결행하고 1년간 사색의 시간으로 돌입한다. 퇴사로 인한 가족들의 서슬 퍼런 악담과 저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더욱 굳세게 사색에 몰입한다.  해외 취업 중인 친구에게 이메일로 이야기하는 형식의 소설.

소나무나라

<소나무나라> 죽고 싶어도 장례비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 자신의 장례비를 다른 이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소나무나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소나무나라 비행기를 타려면 자국에서 사망신고를 마쳐야 한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과, 죽음에의 동경을 하는 사람들이 삶의 종착역이 될 소나무나라로 향했다. 사후처리를 부탁 할 사람도, 맡아 줄 사람도 없는 혼자인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산적이고, 자립적으로 마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죽음의 유토피아, 소나무나라.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이상국가다. 이곳은 냉정하게 말하면 인간 처리장, 또는 인간 처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 소나무나라는 인간에 대한, 사람생명의 마지막을 배려하는 나라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장벽이 없는 나라다. 어떠한 서류나 절차도 필요 없는, 오직 그 자신이 어떠한 마음을 먹었는지, 진실로 죽음을 가슴의 중심부에 둔 상태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곳이다.

모르포제

<모르포제> 제 안에는. 열 명이 더 살고 있습니다. 제발, 더 늘어나진 않기를. 이 열 명의 다중이들과 살아감이 심히 벅찹니다. 여러분은 몇 명과 같이 살고 있으신가요? 오늘도 난 여전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절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 마리 토끼를 열심히 쫓다 보면 나머지 한 마리는 보다 손쉽게, 거의 자동으로 잡게 된다고들 한다. 꿈을 열심히 좇다 보면 생계는 해결된다고. 하지만, 두 발로 땅을 밟고 걸어 다니는 이 현실세계에서 그것이 정녕 가능한 것인지…. 열정이 많이 부족한 탓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팍팍한 현실에 묻혀 살아가다 보면 꿈을 새까맣게 까먹고 있거나, 꿈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던 세포가 서서히 줄어서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너를 넘어서 바통을 잡아

<너를 넘어서 바통을 잡아> 트럭으로 야채와 생선 장사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세 자매. 첫째 딸인 서른두 살의 대기업회계사 오능란과, 도서관에서 계약직사 서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 오능미, 대학입학에 5수 째 떨어진 스물다섯 살의 막내 오능수. 능수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아서 정신과의사가 되는 게 꿈이다. 능수가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게 된 이유는, 십년지기 친구로부터 기인한다. 항상 능수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해오던 십년지기 친구는 정작 능수가 죽음 앞에 처하자, 혼자 도망치곤 멀리서 무감각하게 연극을 보듯 지켜보기만 한다. 능수는 의대진학을 위해 고시원에서 이년 동안 이를 악물고 죽어라 공부하면서 김치와 흰쌀밥만 먹으며 오직 주황색 똥만을 그렇게 싸댔건만, 이번에도 물거품이 돼버렸다. 능수는 해야 할 일이, 갚아야 할 빚이, 7수를 준비해야 하는 내년까지 빡빡한 삶이 정해져 있어, 다가오는 팀장에게 자신도 다가가고 싶지만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다.

경쾌함

<경쾌함> 가난한 부모 밑에서 대기업의 생산 라인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던 수정은 어느 날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보상금을 거부하고 법정으로 가자는 부모님과 달리 오히려 빨리 보상금을 받아 남은 인생을 편안히 살고 싶은 수정은 서로 대립한다. 부모와 다투고 제주로 혼자 여행을 다녀온 수정은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경쾌함, 단 그 하나의 감정을 알고 싶은 수정. '난 사랑 받길 원하지 않아. 난… 다만, 경쾌한 감정을 알고 싶어. 경쾌함, 마음과 머릿속이 온전히 즐거운 감정. 그 하나의 감정을 죽기 전에 느끼고 싶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