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우진의 물음에 연은 대답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그런 저의 대답에 보기만 해도 아픈 표정을 짓던 우진을 향해 그녀 역시 묻고 싶었다. 너는 후회하냐고. 너는 어쩌면, 후회하고 있느냐고. 하지만 혹시나 그렇다 할까 봐. 그의 입에서 듣기 싫은 말이 나올까 두려워 그녀는 차마 그에게 묻지 못했다. * “뭐든 좋으니, 이대로 버리지만 마.” 우진의 말에 놀란 연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세차게 흔들리는 그녀와 달리 그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녀를 담아냈다. “버리지 말아줘.” “너…….” “제발.” 그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눈물이 무기가 되는 것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에게 동정 받는 것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다. “놓지 않겠다 약속했잖아.” 그녀의 눈물을 본 우진이 연을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나는 이제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출판사에서 소설 편집자로 일하는 혜원은 팀장의 지시로 비밀에 싸인 베스트셀러 작가 ‘비우’를 만나기 위해 문학상 시상식으로 향한다. 2년 전 데뷔와 동시에 문학계를 뒤흔든 작가 ‘비우’. 그가 신작과 함께 얼굴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기 위해 시상식 현장에 도착한 혜원은 그곳에서 5년 전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만나게 된다. 얼굴부터 목소리까지, 연인이었던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작가 비우. 갑작스런 이별 통보에 헤어짐을 맞이한 뒤, 죽었다는 소식만을 들어야 했던 제 연인. 혼란스러워 하는 혜원의 앞에 다시 비우 작가가 나타나고, 출판사와의 계약과 함께 혜원은 그의 담당 편집자가 된다. 비우 작가와 만날수록 연인이었던 원우와 다른 점들을 발견하며 설렘과 실망을 반복하는 혜원. 우연한 만남들이 겹치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작가님. 우리 친구 안 할래요?” “작가님이랑 같이 있으면… 꼭 오래 안 사람처럼 편안해요.”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남겨진 여자와 사랑하는 연인의 곁을 떠난 남자. 그가 그녀를 떠난 이유도, 그녀가 남겨진 채 괴로워하는 이유도 결국 하나, 사랑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기적을 만들어낼,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
‘가지 마.’ 태어나 처음으로 했던 애원이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차갑게 돌아선 네 무정함 앞에선 무의미했다. 널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 매년 반복되었다. 고통을 닮은 그리움마저 지겨워질 때 즈음이었다. “찾았다.”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건. “도여름.” 발광하던 빛을 모조리 잃은, 등잔 밑에 숨어 있던 빛 바랜 여름을. “왜 그 꼴이야.” “받아먹은 5억은 어디에 썼길래.“ 겨우 이런 꼴을 내게 보이려 오랜 시간 저를 괴롭혔던가. 불행하길 바랐고,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럼 좋아야 하잖아.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마음껏 비웃으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왜. “생각해보는 중이야.” 그러니 알아야겠다. “이번엔 무슨 협박을 사용하면 좋을지.” 너만 보면 치밀어 오르는 이 뜨거움의 이유를.
누렸던 영광도 뒤로한 채 이제는 잘난 이름만 남은 W호텔. 그 호텔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진아 앞으로 그가 나타난다. “잘 지냈어?” 대한민국 굴지의 건설 회사 SW 선우원. 5년 전. 약혼이란 족쇄를 채우고 미국으로 떠날 땐 언제고, 이번엔 소리 소문 없이 한국으로 귀국을 했단다. “내가 네 약혼자고, 네가 내 약혼녀라. 호텔을 포함한 너와 네 가족도 지금 여기 있는 거잖아.” 집안을 위해 팔리듯 선우원의 약혼녀가 된 것도 서러운데. “같이 살게 될 거야.” 귀국 소식에 기다렸다는 듯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뭐? “아님 결혼할래?” 우리가 뭘 해? “지금 우리에게 있는 선택지는 두 개야.” “…….” “결혼 아니면 파혼.” 빌어먹게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장 내일 아침 결혼식장으로 끌려가 부부가 되는 것보단 적어도 몇 개월은 부부가 아닌 남으로 지내는 게 낫잖아.” 결혼을 피하기 위해 이 남자와 동거를 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답이. *** “위해 주는 척하지 마.” 과거에는 이 눈빛에 속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즈니스를 위한 도구로는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입니다.’ 원의 통화를 엿들었던 그날 이후. 진아는 원을 믿지 않았다. ‘사생아든 뭐든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해야죠.’ 더는 착한 얼굴에, 다정한 눈빛에 속지 않았다. ‘그 애 입에서 먼저 약혼 이야기가 나왔을 땐 아닌 척했어도 어찌나 놀랍던지.’ 분명. 그러겠다고 다짐했는데. “너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오려고 나, 그동안 애 많이 썼어.” 왜 그렇게 쓸쓸한 얼굴을 짓는 거야? “네가 우는 게 싫었어.”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냐고. “선우원.” 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