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스무 살이 된 그해. 결혼을 종용받게 된 지우, 아무리 이성에 문외한인 지우라도 알았다. 차승도가 얼마나 방탕한지, 색을 얼마나 밝히는 남자인지, 개차반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차승도입니다.” “혹시 어린 여자에 대한 환상있어요?”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여자보다는 어른 여자가 좋죠. 여러모로 휘둘리는 걸 좋아해서.” KE그룹의 막내 개차반 차승도와의 선.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만남. “저와……결혼해 주세요.” “나랑 결혼해줘요, 차승도 씨.” “내가, 차승도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차승도 씨가 좋아지려고 해요.” 등 떠밀리듯 하는 결혼이 아니라, 구걸해야 하는 결혼. 이 결혼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차승도. “도와줘요……나를.” 갓 스무 살, 성숙하지 못한 지우의 성숙한 결혼.
강원도 양양의 다 허물어져 가는 시골집에서 자랐다.그 흔한 LED TV는 사치였다.“친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는 아줌마 친자식이야.”“저기, 누구세요?”연아는 명치끝에서부터 힘을 끌어 올렸다.“넌?”“전…… 전 이연아라고…… 오늘부터 이곳에서 살게 된…….”“넌 뭐냐고.”연아는 소름이 끼쳐 비명을 질렀다.“네가 뭔데 여기 있는 거야.”“누가 여기 쓰라고 했는지 묻잖아.”남자의 눈동자는 분명 갈색인데 빨갛다는 기이한 착각이 들었다.연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현대물 #동거 #복수 #소유욕/독점욕/질투 #재벌남 #뇌섹남 #집착남 #평범녀 #무심녀 #순진녀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는 안 됩니다.” “정우 동생이라 어린 모습만 기억하지? 이제 완전히 숙녀야. 24살이면 결혼하기 예쁜 나이다. 너도 알잖아.” “제 결혼 상대로 최소한 연우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일이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기어코 자신은 투명 인간 취급하며 사라지는 그가 밉고 원망스러워 저도 모르게 입술이 움직인다. “차기주.” 낮고 분명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지금 내 상황이 결혼을 얘기할…….” “결혼하고 싶으면 딴 새끼를 알아봐.” “내게 여자란 성욕을 푸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니야.” “…….” “결혼이란 거, 어떤 여자든 즐길 상대면 돼.” “그럼, 어떤 여자라도 상관없으면, 나랑 해.” “그럼, 결혼 말고 즐기고 싶을 때 찾아오면 상대해 줄게.” “오빠 정말.” “난, 농담 아닌데.”
―얘, 우건아. “네, 말씀하십시오.” ―결혼해야겠다. 우건은 앞차의 후미등이 붉게 들어와 브레이크를 밟았다. 누구도 특별히 간섭하지 않던 삶이었다. 우건은 별안간 결혼하라는 조부의 명령이 당황스럽다. “천애고아 뒷바라지라도 하시란 말씀이에요?” “그래.” “노망나셨습니까?” “이 미친놈이.” “황혼 연애라도 하셨어요?” “그래, 이놈아.” 9살이나 어린 스물두 살의 여자애와 결혼을 밀어붙이는 조부가 노망이 난 듯하다. “하, 할아버지께서 억지로 밀어붙이셔서 나온 거 맞지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어린 나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가 분명하지만, 할아버지를 말리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한번 설득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요. 여기 나오기 전에.” 금세 당황해하는 여자를 외면하며 우건은 식사만 한다. 이런 일의 연장선상 같은 자리 언제나 있었던 일이므로. 본편 표지 : 힝둥 님 외전 표지: 재득 님
“남자를 꼬시려고 넌 어떻게 했어?” “……엄마는 뇌병변장애인이었고, 아빤 농인이었어요.” “너 어디서 상상력 풍부하단 소리 많이 듣지?” 수진은 생긋 웃었다. “돌아가세요, 취했어요.” 분명 그랬던 남자였다. 한혜영. 한국 경제를 틀어쥔 최대 기업 KS 전자의 차남이자 망나니.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그런 방탕아이자, 수진을 절망의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줄 유일한 남자. 그러나 결국 수진을 버린 남자. 다른 남자와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 남자와 왜 이렇게 더럽게 엮였는가를. “지긋하게 가난을 싫어했잖아.” “…….” “너를 건져 올릴 테니까 결혼은 나와 해.” 제게는 어째서 이런 날조차도, 다른 여자가 애를 가지고, 눈이 오고, 눈발이 휘날리고, 납치당하고. 어째서. “수진아.” 부르지 말아요, 그 이름. “이수진.” 제발. “사랑해.”
“정, 지수입니다.”“계속 서 있을 겁니까.”지수가 정신 차려 발걸음을 움직여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이었다.“아, 그쪽 말고 이쪽.”그가 반대편으로 고갯짓한다.“그쪽에 앉았던 사람이 방금 해고돼서.”지수는 침을 삼켰다.원래, 도재윤이 이렇게 위압적인 남자였나.“마음 써주시는 것은 감사하나, 저는 부사장님께 부족한 재원으로…….”“정지수.”“…….”지수는 입안의 어금니 쪽 살을 깨물었다.“내가 너한테 지원해 준 돈이 얼만데 먹고 튈 생각을 해?”“도재윤 부사장님께서 주신 도움은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언제?”“매달…….”“몸으로?”지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경악한 얼굴로 도재윤을 쳐다보았다.“정지수, 넌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야. 옛날이나, 지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