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NN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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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평점
파고들어, 쏙!

“역할 대행. 몰라? 하객 알바 같은 거 있잖아.”“얼마예요? 저, 그 알바 할래요. 하고 싶어요.”“진짜 할 생각 있어?”집안의 압박에 의해 없는 여자라도 만들어내야 했던 하겸과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잡, 쓰리잡까지 뛰던 예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역할 대행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 두 사람은 철저한 비즈니스 사이를 약속한다.“내가 네 고용주야. 넌 피고용인이라고. 알겠지?”“…알았어요. 숙지할게요. 절대 잊지 않고, 까불지 않고, 나대지 않겠습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겸과 예흔은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는데….꽁꽁 닫아 두었던 서로의 마음에 지나치게 깊숙이 파고들어간 하겸과 예흔.이 관계,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현대물 #로맨틱코미디 #원나잇 #계약연애#재벌남 #직진남 #상처남 #발랄녀

야릇한 사이

“오랜만이에요. 선율비서님. 내 이름은 알고 있죠? 설마 그 정도는 기억하고 있는 거죠?” 슬쩍 눈을 접어 웃는 남자의 표정이 꼭 가면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보였다.  저게 정말 웃음을 짓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지금 선율은 파악을 하기 힘들었다.  “…다 알고 있는데 왜 저를 수행비서로 고르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단순한 거 아니겠습니까. 결혼을 앞둔 남자가 전여자친구를 찾는 이유….” “…장난이 너무 과하십니다.” “장난 아닌데….”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는 선율의 손가락을 톡 하고 건드리며 유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유한의 오른손이 선율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선율씨의 몸이 잊히지 않아서 말입니다.”

난파선

“도와주세요.” 그때 유은의 무릎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참담한 기분을 느낄 틈도 없었다. 지금까지 유은이 했던 모든 노력을 이렇게 물거품이 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정말 악착같이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너는 가진 것도 하나 없으면서 참 열심히 살아. 그런다고 네가 나처럼 될 일도 없는데 말이야. 그래봤자 가난뱅이 거지 주제에.’ 다른 친구들이 공부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른 친구들이 잠에 들었을 시간에 유은은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가는 유은을 향해 비소를 던지며 세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박도한의 상대가 세빈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분노가 치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유은은 박도한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종현을 찾아온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물론 그동안 얼마나 제가…. 힘들게 살았는지…. 절대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지금까지 했던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도와 달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가 가진 자료 모두 드릴게요. 제가 박종현 대표님을 서포트 할게요. 박종현 대표님께서 혜윰 그룹의 회장님이 될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착각하지 마. 나는 너 따위의 서포트 없이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어.” “아….” “박도한보다 내가 훨씬 능력이 좋거든. 그런 거 말고. 현실적으로 네가 줄 수 있는 걸 말해.” “그게…. 그게 무슨.”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올려보는 유은의 턱 끝을 붙잡은 종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를테면 너, 라거나.” 종현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거 좋네. 너.” “…….” “너 정도는 나한테 던져줘야 구미가 좀 당길 것 같긴 한데 말이야.” 언젠가 가라앉을 배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내민 손을 붙잡은 내 잘못이었다.

나에게만 나쁜 남자

“일부러 나한테 접근했던 거지? 처음부터 회사가 탐이 나서.” “그런 거 아니라니까.” 경서의 신경질적인 대답에도 해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오빠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잖아.” “하아….” “장례 준비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랑 사귀고, 결혼 생활 하는 내내 오빠는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더라.” 해봄은 쓴웃음을 지으며 경서를 바라보았다.늘 반짝거리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해봄의 눈은 어느새 생기를 잃은 것만 같았다. “이혼하자, 우리.” 사랑 따위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버석한 눈빛으로 해봄이 이별을 고했다.

뒤틀린 부부

“급이 많이 떨어졌네. 하긴. 저 새끼 정도면 뭐, 네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네. 원래 손해 보는 장사 안 하잖아, 박무화는.” 그가…. 그가 어떻게 여기에! 너무나도 오랜만에 맞닥뜨리게 된 그였다. 잊고 싶어 그렇게 안간힘을 썼음에도 절대 잊을 수 없던 얼굴. 딱딱하게 변한 무화의 표정과는 상반되게 남자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우리 말장난할 사이 아니잖아요. 용건만 말해요.” “용건? 용건 좋지. 내 딸이 너를 찾아.” 내 딸이라니. 하준의 딸이라면 설마? 여전히 겨울을 떠올리면 무화는 가슴 한쪽이 찢어질 것만 같이 아파왔다. 그런 겨울이, 설마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뭘 그렇게 놀라? 설마 네 딸일까 봐?”  그제야 무화는 그가 말하는 딸이 겨울이 아닌 다른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에 태어난 앤데, 애 엄마가 죽었어.” “저기요. 신하준 씨.” “너 돈 좋아하잖아. 돈 줄 테니까 와서 애 엄마 노릇이나 하라고.” 이기죽거리는 하준을 보자 간신히 이성을 지키고 있던 무화가 결국 무너져 내렸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손을 올린 무화가 그의 뺨을 내리치려 했지만, 하준은 능숙하게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오히려 그 반동으로 무화의 몸이 하준의 품에 안기듯 끌려왔다. 이다음 일어날 불상사가 무엇일지 알고 있다는 듯 무화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돈 줄게. 와서 애 엄마 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무화와 다르게 하준은 태연하기만 했다.

물에 피는 꽃

“이름이 뭐라고 했지? 프로필 검색하니 이름밖에 안 나오던데.” “설명…못 들으셨나 봐요.” “어. 대충 듣다 보니…. 아! 사생아라는 소리는 기억나는군.” 아연의 앞에 놓인 커피를 자연스럽게 들고 온 은성이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마셨다. 그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도연이었다.  "겨울이라 결혼하기 썩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어차피 가까운 가족들만 모시고 할 결혼이니 상관없지?” “…네? 그게 무슨.” “음…. 다음 주는 좀 힘들 거고, 다음 달?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연의 이야기는 아예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자신의 말만 쏟아내는 그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쯤은 말이 통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만나는 남자가 있어서….” “한 달이면 정리할 시간은 충분할 것 같은데?” “네? 하지만….” “정리하기 싫으면 정리하지 않아도 돼. 남자가 괜찮다고 하면 말이지.” 눈앞이 아득해져 그 어떤 말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은성의 말에 아연은 애꿎은 아랫입술만 씹어대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그와 결혼식장에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정략결혼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도연은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결혼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의 삶 역시 자신의 뜻이 아닌 저 남자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또한 말이다. "아이는 바로 가질 생각이야." "그게 무슨…." "왜? 남자 구실 못한다는 소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너도 다른 새끼 핑계 대는 거 아니야? 그래도 너 하나 심심하게 해주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고."

옆집 아빠

“강나리 후배님. 여기서 다시 보니 무척 반갑군.” 은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지자 나리의 고개는 더욱 바닥으로 숙여졌다. 이렇게 다시 이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이 아이도 생겼네.” 냉담하기 짝이 없는 은재의 말에 나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은재였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채 나리는 그 책임을 오롯이 혼자 지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아이의 아빠가 또다시 나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예전에 즐거웠잖아. 나도, 너도….” “…….” “다시 즐겨보자고. 예전처럼 말이야.”

죽었던 남자가 돌아왔다

“3년이 길긴 기네.” 연회장의 조명이 꺼지던 그 순간, 닫혔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이목이 무대가 아닌 뒤쪽으로 집중되었다. 물론 영경의 시선까지. “다들 몇 년 전보다 달라지셨네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등장에 J그룹 창립 기념 파티는 순식간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누구야? 진재이 아니야?” “말도 안 돼. 죽었잖아. 장례도 치렀던 걸로 아는데.” “그럼 뭐야…? 살아 돌아온 거야?” 경악으로 물든 사람들 사이, 영경의 눈에만 설핏 반가움이 스쳤다. 분명 봄비가 억수처럼 내리던 그날, 영경과 마주친 그 남자였다. “그새 채갈 건 다 채가 버렸고.” “…진재이?” 그때 눈에 띄게 경직된 준재를 알아챈 영경이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약혼자를 올려보았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두려운 표정을 한 그가 영경의 손을 거세게 붙잡았다. "아...!"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인 듯 했지만 영경은 처음 보는 준재의 모습이 낯설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남자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셔터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런데 주인이 나타났으니, 가짜는 이만 꺼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 준재에게 붙잡힌 손을 노려보는 남자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날과 달리 싸늘하기만 한 그의 눈빛에 영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짙은 밤

“날마다 구질구질하네, 유은하는.” 반쯤 풀어헤쳐진 머리칼과 고된 노동에 잔뜩 달아오른 뺨, 이미 땀에 푹 절여진 자신과 다르게 눈앞의 남자는 오늘도 완벽하기만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깔끔한 슈트 차림의 태건은 누가 뭐래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태건의 눈에 자신이 구질구질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은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책임져 달라고 말해 봐. 그럼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아, 그러니까.” “기회는 딱 한 번뿐인데.” *** 은하의 입술을 삼키며 태건은 마음껏 그녀를 탐닉했다.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곳곳을 파헤치는 태건에게 은하는 어느새 잠식당하고 말았다. 하고 다니는 꼴은 어디에 내놓아도 주워 가지 않을 정도로 싸구려 같은 여잔데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하필이면 닳고 닳은 저 같은 놈에게 걸려 제대로 인생을 망치게 생긴 은하가 딱하다는 생각도 태건의 머리를 스쳤다. 제멋대로 얽혀 있던 입술이 어렵사리 떨어졌다. “왜 이렇게 무서워해.” “그게, 그러니까….” “부부 사이에 이런 게 그렇게 무서울 일인가.” 매섭게 치켜 올라가는 태건의 눈썹에 은하는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태건은 은하에게 뭐랄까. 동경이나 선망의 대상에 가까웠다. 태건의 가벼운 손짓 하나, 시선 하나에서도 몸에 밴 우아함과 기품이 느껴졌으니까. 설령 남들과 똑같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태건의 입에서 튀어나올지라도 말이다.  특히 태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저 ‘부부’라는 말이 이상하게 은하의 심장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분에 넘치는 행운을 우연히 거머쥐게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