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으로 인해 나는 모든 걸 잃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당신을 가장 처참하게 죽여 버리겠노라고.” 시한부 남주를 버리고 전 재산을 훔쳐서 도망가는 전 부인, 일리아에 빙의했다. 남주는 병이 낫자마자 쫓아와 일리아를 죽였다. 일리아가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덕에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한 남주의 여동생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일푼으로 나왔더니……. 이혼한 전남편이 찾아왔다. “가져가신 것을 돌려주시던지, 아니면 당신이 돌아오시던지 해 주십시오.” 리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 나 아무것도 안 가져왔는데?” 당황한 일리아가 더듬더듬 말했다. 리힐이 요망한 입술을 움직였다. “제 마음을 가져가셨잖아요…….” 어, 방금 소름 돋았다.
“이제 아기를 못 낳는 몸이 되었다지? 남들 다 하는 걸 당신은 못하는군, 로렌디아.” 남편의 박대 속에서 그레이스의 쌍둥이 언니, 로렌디아가 죽었다. “마이어 후작이 준 위로금이 있지 않니? 그것 좀 내놓아라. 막내 결혼이 코앞이잖니.” 그리고 가족이라는 작자들은 언니의 돈만 탐냈다. 그레이스의 눈에는 그들이 악마로 보였다. 그레이스에게는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 로렌디아가 그녀를 대신해서 남기고 간 아이들! 그레이스는 다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렌디아의 복수를 하고 아이들을 지켜내고야 말겠다고. 설사 악마에게 영혼을 팔게 되더라도! *** 요한 라파엘 베르헤모스 대공. 그 악마가……. “그레이스. 당신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요. 나를 밀어내지만 말아요.” 이렇게 달콤할 줄은 몰랐지만.
뛰어난 미모를 가진 보기 좋은 포장지, 신시아. 신시아의 학비를 벌어오겠다던 언니가 사라지고, 언니를 찾으러 간 티레즈 지방에서 신시아는 평생 만날 일 없다고 생각한 남자와 만난다. 엘르윈 가브리엘라. 신이 사랑한 남자라고 불리는 남자. “네가 원하는 걸 말해.” 오만한 남자의 붉은 눈동자가 루비처럼 반짝였다. 마치 청동으로 빚은 것처럼, 정말 잘생긴 남자였다. 입술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이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 대가로 난 널 갖는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언니를 찾아주세요.” 그녀를 위해 모든 걸 했던 언니를 위해, 이번엔 신시아가 자신을 내던질 차례였다. 사냥꾼인지, 구원자인지 모를 남자에게. ***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가 달빛으로 번들거렸다. 신시아의 더운 숨결이 엘르윈의 목을 간지럽혔다. 울컥, 솟아오르는 핏물에 엘르윈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대로 죽을 셈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상냥한 속삭임에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평행선이 깨졌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넌 못 죽어.” 그 속엔 날 선 집착이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