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리프
그린리프
평균평점 5.00
그 황제는 이미 무릎을 꿇었다
5.0 (1)

“플로리아.”  “당신에게 나를 바치겠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날 증오했어야 할 남자가 그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잔혹하게 아름다운 그 남자는 어느 날 번지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에스타란토의 신성을 부여받아 제국의 축복으로 살아야 했으나 재앙이라 불리며 사랑하는 황제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플로리아 리엘 브넬페. 이 거지같은 소설 속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은 분명 그 비련의 여주인공인데.   익숙한 향기와 가슴이 아리는 떨림,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난 모든 것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Copyrightⓒ2021 그린리프 & 페리윙클 Illustration Copyrightⓒ2021 러기 All rights reserved.

이런 식의 구애는 곤란합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벨리아 드비어’는 크리스마스의 무도회장에서 처음 보는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다. 그가 여기저기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희대의 바람둥이 ‘헬리오스 아르젠’ 공작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청혼해도 될까요?” “어쩌죠? 난 싫은데.” 벨리아는 용기 내어 마음을 전하지만 그에게는 비웃음 섞인 거절만이 돌아오는데……. “전 공작님을 좋아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 제 행복을 나눠드릴게요. 마음껏 가져가세요.” “후회할 텐데.” “언젠가 제 마음이 공작님께 닿도록 저는 계속 다가갈 거예요.” “그럼 해 봐요. 뭐든. 지칠 때까지.” 냉담한 헬리오스의 반응에도 아랑곳않고 둘이 처음 만났던 겨울을 지나 늦봄에 이를 때까지, 그의 곁을 맴돌며 끊임없이 구애하는 벨리아. 그러는 동안 벨리아 특유의 발랄하고 순수한 모습에 사랑을 모르던 헬리오스의 마음도 점점 그녀에게 기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후, 헬리오스의 약혼자인 ‘로제인 리베른’이 수도로 돌아와 벨리아와 헬리오스의 주변을 뒤흔드는데……. 과연 벨리아의 가슴 뛰는 첫사랑은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날 버리겠다 하신다면

“데이먼, 난 너의 장난감이 아니야. 그리고 널 사랑했던 헤리안 밀러는 여기 없어. 나도 잊을 거야. 너처럼 모조리.” 23살의 봄, 헤리안의 행복을 위해 왕위에 오르겠다고 말하던 연인 데이먼은 반역죄로 죽었다. 그를 잃고 앓아가던 헤리안은 데이먼을 그리다 눈을 감는다. 그런데 생애 마지막 순간 신에게 빌었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걸까. 헤리안은 데이먼이 살아 있는 과거에서 눈을 뜬다. 그녀는 데이먼의 죽음을 막겠다는 결심 하나로 살았다. 그렇게 데이먼의 생은 이어졌다. 하지만 결혼을 약속하고 떠난 데이먼이 전쟁 영웅이 되어 돌아온 그 계절. 그의 옆에는 헤리안이 아닌, 그녀의 절친한 친구 안나가 있다. 배가 볼록하게 부른 채로. “넌 항상 그랬어. 당연하게 내가 왕이 되지 못할 것처럼 얘기했지. 안나를 만나고 모든 의문이 풀렸어. 잘 지켜봐. 누가 왕위에 오르는지.” 배다른 자신의 형과 헤리안이 부적절한 관계라고 확신하는 데이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의 아이를 가진 안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한다. “헤리안, 네 존재가 데이먼한테는 독이었어. 그이가 그러더라. 네가 자기를 망가뜨렸다고.” 의미 없는 삶은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헤리안은 죽음을 결심한다. 그런데. “날 봐요. 그리고 날 원해 줘요. 그럼 내가 당신을 살게 할게요.” 단 한 번 본 게 전부인 이턴 공작이 그녀를 구해내고 서슴없이 다가온다.  “원하는 게 뭐예요? 득이 없는 친절은 베풀지 않는 분이시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헤리안. 당신이에요.” 그가 입매를 휘며 속삭였다.

버려진 개는 주인을 길들인다

블루먼 공작가의 고귀한 아가씨, 사라 블루먼은 죽었다. 영원할 것 같던 블루먼 공작가의 영광의 시대는 저물었고 그녀의 쌍둥이 오빠, 그레인 블루먼만이 살아남아 가문을 지켰다. ……적어도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진실은 달랐다. 사라는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죽은 오빠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남장을 하고, 절름발이였던 오빠를 흉내 내기 위해 멀쩡한 다리까지 스스로 망가뜨린 채. 몇 년 뒤, ‘블루먼 공작’으로서 사교계에 복귀한 사라의 눈앞에 과거의 인연이 나타난다. “널 보고 있으면 자꾸 누군가 생각나.” “…….” “사라 블루먼. 먼저 간 네 누이 말이야. 내가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던 그 여자.” 헤리워스 데본. 한때 사라의 ‘충직한 개’였던 소년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그날 이후 증오만을 품고 살아왔다. 증오의 대상은 이미 죽어 버렸는데도 감정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어엿한 데본 백작이 된 그는, 이제 블루먼 공작을 집요하게 좇는다. 증오와 그리움으로 범벅된 눈에는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키우던 개새끼를 버릴 땐 차라리 죽여 버렸어야지. 그래야 뒤탈이 없었을 텐데. 아깝게 됐네.” 그가 가진 증오는 증오라 부르기엔 너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