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명성 그룹의 혼외자, 서강준.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여자였던 주연희.그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려는 강준이 택한 건,연희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정략결혼이었다.“그래서 그만두겠다. 뭘? 일을 아니면 나와 갖는 관계를?”사표를 낸 건 힘겹게 꺼낸 고백이자 당돌한 거절이었다.“……둘 다입니다.”“상황 파악이 안 돼?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어.”하지만 강준은 연희를 이해하지도,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상처입은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그를 향한 잔인한 복수뿐이었다.난 널 떠날거야. 죽어서라도.
<놈의 기억 1> 내 아내를 죽인, 놈의 기억을 찾고 싶었다! 천재 뇌과학자 한정우는 ‘사람의 기억을 삭제·이식할 수 있다.’라는 논문을 게재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최고의 영예를 거머쥔 그 날, 정우는 집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 둔기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는다. 나흘 만에 정신이 들었을 때 아내는 19층에서 떨어져 살해됐고, 유일한 목격자인 9살 딸은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정우는 결국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딸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그는 기억 삭제·이식술을 활용해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며 은밀히 연구를 이어가는데….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크리에이티브 선정작 《놈의 기억》은 기억을 삭제·이식하는 기술을 발명한 대학교수 한정우가 아내를 죽인 살인자를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생생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이 소설은 ‘2020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크리에이티브 펀딩 페스티벌’에 선정되며 독자들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용의자의 기억을 스스로에게 이식하고, 범인을 추적해 가면서 알게 되는 충격적인 진실과 반전은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의 연속에 살인자가 누구인지 함께 추리해 나가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드 오브 퓨처> 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첫 번째 책이다. 안전가옥의 첫 기획 앤솔로지인 FIC-PICK의 시작을 알리는 《무드 오브 퓨처》는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상상하고 고민한 근미래 로맨스 단편소설을 엮은 작품집이다. 《무드 오브 퓨처》에서는 영화, 연극, 드라마,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문재를 빛내던 다섯 작가들이 합을 맞추었다. 드라마와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글을 쓰는 윤이나 작가, 미스테리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써오던 영화감독이기도 한 이윤정 작가,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배우/극작가로도 활동하는 한송희 작가, 방송 대본과 소설을 주로 쓰는 김효인 작가, SF소설로 데뷔한 뒤 줄곧 소설을 써온 오정연 작가가 그들이다. 이들은 ‘근미래’와 ‘로맨스’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모티브로 다섯 작가는 각자 자신만의 관점과 색깔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통역기 란토를 통해 전 세계 사람과 국경을 넘나드는 사랑이 가능해진 근미래에 무인도에서 펼쳐지는 리얼리티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촬영 현장에서 예전 애인에게 재회의 메시지를 던지는 준의 이야기(윤이나, 〈아날로그 로맨스〉), 죽은 가족이나 애인을 추억하는 이들이 만든 주문 제작형 안드로이드가 인공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인간을 대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AI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윤정, 〈트러블 트레인 라이드〉), 근미래의 정신과 약을 복용하던 비연애주의자 영화감독 소혜에게 어느 날 선물 같이 찾아온 좌충우돌하는 연애담(한송희, 〈사랑도 회복이 되나요?〉), 현실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정신을 치유하는 이야기(김효인, 〈오류의 섬에서 만나요〉), 과거와 미래, 지구와 우주 사이에서 이메일을 통해 첫사랑과 조우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오정연, 유로파의 빛을 담아〉) 등 그 스펙트럼부터 다양하다. 이 다섯 소설을 관통하는 ‘미래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보며 SF 로맨스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라.
<타로 언니> 귀신을 보는 소녀에게 펼쳐진 신비로운 학교생활 십대의 끝자락, 우리가 궁금한 미래는 무엇일까? 밖에서는 무슨 사고를 치든 상관없고, 어떤 활동이든 겉으로 교육적인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고, 어떤 식으로든 좋은 대학교만 가면 된다고 가르치는 세계, 학교. 다들 보이는 결과만을 좇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소녀가 있다. 바로 친구들의 따돌림과 선생님의 배신으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주인공, 주윤아. 그런 윤아에게 어느 날부터 검은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귀신은 자신이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일진 유지나의 엄마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지나에게 알릴 것을 요구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타로 카드를 빌미로 지나에게 엄마 귀신의 존재를 알린 윤아는 그 뒤로 신비로운 것을 보는 존재, ‘타로 언니’로서 지나의 일진 무리 ‘라붐’에 합류하게 되는데……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의 리얼한 학교 이야기 성장의 과정이라고 오해받는 십대의 상처에 관하여 아무리 밝고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마음속 지워지지 않는 상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른의 상처와 달리 십대의 상처는 한때의 반항이자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의 엄살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이 터지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린 나이. 세상이 청소년에게 붙이는 수식어는 이렇게 해맑고 당차기만 하고 그런 별명을 붙인 어른들에게 십대의 상처와 아픔은 성장의 증거로 여겨진다.『타로 언니』는 청소년의 결핍과 상처가 어른들의 관점으로 다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어덜트(Young Adult) 소설로, 어리다고 해서 아픔을 모르는 것은 아니며 십대의 상처는 성장통이 아니라 상처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름의 상처가 있다. 주인공 윤아는 모든 걸 의지하던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극심한 우울증과 실어증에 걸리게 되었고, 윤아의 귀신을 보는 능력에 매료된 지나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외국인 노동자 어머니의 부재로 항상 화목한 가정을 그리워하며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탈선을 일삼는다. 한편 지나와 같은 일진 무리 ‘라붐’에 소속된 해미는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없어 남자친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연애 중독자이며 또 다른 친구 개새는 어릴 적 당한 성폭행으로 누구도 믿지 못하고 지나와의 오랜 우정을 유일한 구원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마음의 결핍을 가진 아이들이 각자의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다. 해미는 윤아에게 자신이 가진 상처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자신을 이용하던 남자친구에게 통쾌하게 복수함으로써 상처를 털어낸다. 반면 개새는 자신이 가진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조금씩 변화하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일진 생활을 계속한다. 한편 일진이 되면서 왕따 시절과는 전혀 다른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 윤아는 주변 친구들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거나 혹은 회피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의 상처도 끌어안아야 할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늘 주눅 든 자세로 숨기기에 급급했던 자신의 결핍을 인정한다. 이 책 『타로 언니』는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는 상처를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상처를 외면하고 숨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중 어떤 것이 세상이 이야기하는 ‘바람직한 성장의 모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그들이 상처를 대하는 태도와 선택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고민과 사정이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또한 완전히 상반된 두 인물의 결정과, 그 결정의 중간에서 제3의 길을 택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거나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그런 부족한 모습도 결국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보이는 것만 진짜라고 믿는 정글 같은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 소녀가 살아남는 방법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전작 『학교에 괴물이 산다』로 현행 교육제도와 학교의 민낯을 생생하게 묘사한 저자 윤이나는 주인공의 귀신을 보는 능력을 통해 현재 학교에서 행해지는 ‘진짜’와 ‘가짜’의 관계를 풀어낸다. 이 책에서 주인공의 담임교사인 일대구는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윤아에게 ‘여자의 인생은 시집 잘 가는 게 결국 성공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엉뚱한 조언을 한다. 또한 교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승진하기 위해 학교의 문제아 지나, 해미, 개새를 몽땅 자기의 반에 몰아넣고는 학교에 출석만 하면 밖에서는 어떤 사고를 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반면 윤아의 귀신 남친 후니 오빠의 부모님은 아들의 일류 대학 의예과 진학을 위해서라면 매일 저녁 노트 필기를 대신해 주고, 신경 안정제를 먹일 만큼 극성이다. 이러한 후니 오빠의 부모님과 일대구의 모습은 자기소개서에 써넣을 수 있는 이력 한 줄, 수능 점수, 대학교 입학과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재 학교의 표상이다. 또한 이 책은 진짜를 추구하는 일대구와 후니 오빠의 부모님보다 가짜를 보지만 공감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진짜라고 믿어 온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타로 언니』는 다른 누군가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허상이라고 이야기할지라도 내 마음이 진짜임을 가리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책을 읽는 십대가 내 마음이 말하는 진짜 나만의 꿈과 진짜 나로서의 삶을 가질 수 있길 응원한다. “내가 지금 힘들고 괴로운 건 모두 성장통이래. 그런 아픔이 있어야 성장한다고. 하지만 난 그게 사는 것 같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견디기 위해, 버티기 위해서 가짜를 만들었지. 하지만 이제 넌 진짜 삶을 살아야 해. 너는 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언제나 너였으니까.” -책 속으로 “예전에 말이지, 그게 한 10년 됐나? 너 같은 애가 있었어. 너랑 증세도 똑같았지. 몇 번이나 죽으려고까지 했던 애였는데, 어휴, 나 정말 고생했다. 녀석 달랜다고. 그랬던 녀석이 지금 꼬박꼬박 스승의 날만 되면 찾아와. 좋은 남자 만나 신나게 잘 산단다. 여자는 시집 잘 가는 게 최고 아니겠냐? 그러니까 미래를 생각하면서 딴 생각 말고, 응?”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은 두 손가락을 자기 눈에 바짝 갖다 대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내가 널 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마라. 난 항상 너를 보고 있어.” 후니 오빠가 날 보고 씩 웃었다. 귀신이 지금 자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걸 알면 담임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후니 오빠는 내 남자친구다. 귀신이기도 하고. 남친과 귀신이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세상엔 꼭 어울리는 것만 있진 않으니까, 뭐. -바보 그때였다. 지나 뒤로 검은 머플러가 살짝 보였다. 그게 무엇인지 보려고 몸통을 뒤로 쭉 빼서 지나 뒤를 살펴보았더니 검정색 머플러를 두른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지나 뒤에 서서 마치 지나를 제자리에 앉히려는 듯 지나의 어깨를 힘주어 눌렀다. 하지만 지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인상을 쓰며 잔반 처리구로 가서는 그대로 밥을 엎어버렸다. 여자는 망연자실 서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자 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여자는 바람처럼 급식실을 왔다 갔다 했다. 후니 오빠도 방금 저 여자를 봤나 싶어 여자 쪽을 한 번 보라고 눈짓했다. 오빠는 귀신쯤이야 어디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눈만 껌뻑껌뻑했다. 하지만 나는 오빠 이외의 귀신을 처음 본 터라 조금 무서워져 남은 밥을 마저 먹을 수 없었다. -힘 “마라톤을 할 때 정말 숨이 터질 것처럼 뛰는데 말이지. 옆에서 ‘힘내!’, ‘힘내라고!’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통통 튀는 에너자이저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본 적 있니?” “텔레비전에서 마라톤 경주 몇 번 봤지만 옆의 사람들은 별로 기억이 안나.” “거기 학원 말이야. 스파르타식으로 굴린다고 엄청 광고하는데, 선생님들이 모두 그랬어. 에너지로 가득 차서는 박수치면서 ‘파이팅!’을 얼마나 외치던지. 그 사람들은 아픈 사람도 없고 힘든 사람도 없는 걸까 싶었어. 내가 지금 힘들고 괴로운 건 ‘성장통’이라는 거야. 그런 아픔이 있어야 성장한다나? 모두 ‘힘들어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뿐이었어. 주위엔 결의에 가득 찬 애들밖에 없고. 하지만 난…… 그게 사는 거 같지 않았어.” “그럼 뭐 같았는데?” “검투사들 싸움. 광장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려고 싸우고, 피 튀기는 걸 보면서 관중들이 더 흥분해선 박수치고 웃고. 어서 죽이라고, 죽여 버리라고 고함치는 그런 싸움.” -별 시달리다 못해 질린 나는 지나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검은 여자라면 이젠 정말 지긋지긋했으니까. ‘일반인’이 ‘일진’에게 걸어가자 급식실에서 밥을 먹던 아이들 전부가 날 피했다. 지나에게 가는 길이 마치 모세의 바다처럼 쫙 하고 갈라졌다. 내가 다가가자 신나게 짜장에 밥을 비비던 개새가 젓가락을 확 던져 버렸다. 쌍수는 팔짱을 끼더니 흥미로운 동물을 대하듯 요리조리 나를 살펴보았다. 정작 지나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내 얼굴을 지켜보기만 했다. “왜?” 지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엄…….” “뭐” “너, 엄마……가 있어.” 내가 검은 여자를 노려보며 힘주어 말했다. “뭐라고?” “네…… 바로…… 옆에.” 내가 폭탄을 던진 자리가 식판 긁는 소리, 덜그럭대는 소리, 시끄러운 수다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이게 미쳤나!” 개새가 소리를 지르며 자기 급식판을 확 뒤집어엎었다. -심판 “할 수 있고, 해야만 해.” “정말 내 말 모르겠냐? 만일, 만일에 말이야.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고 너무 싫어져서, 미쳐서 돌아버릴 때 있잖아. 그땐 어떻게 하냐고!” ‘나도 그래.’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할 수 없지. 아마 그런 마음이 들지도 몰라. 아니 분명히 그런 마음이 들 거야. 하지만 그 순간이 되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어. 노력은 어차피 계속해도 상관없잖아?” -마법사 저 새는 곧 날아가겠지. 언제나처럼. 만일에 비가 오면 젖은 날개를 접고 잠시 피할 곳을 찾을 테지.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날개를 펴고 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귀를 기울이자 어딘가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움 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깊고 깊은 울림 속에서 나지막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에필로그
"이래도 네가 이 방에 들어온 게 실수야?" *** 솔직히 말하면 전혀 괜찮지 않았다. 「멜. 담배하고 그것 좀 챙겨줘.」 오늘은 퍼스널 버틀러로 5년을 일하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적이고도 불쾌한 지시를 받았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와이프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이 년이랑 호텔에 들어와?」 남편의 여성 편력이 그의 재산만큼이나 대단하다는 걸 뻔히 아는 그의 부인에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더니, 「당신 미쳤어? 내 집사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호텔 로비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몸으로 와인을 뒤집어썼다. 그러니 괜찮을 리가 있나. 머리카락을 적시고 얼굴로 흘러내린 붉은 액체가 하얀 블라우스를 물들였다. 수치심과 자괴감이 온몸을 뒤덮어 일 초라도 빨리 모든 걸 씻어내고 싶었을 뿐인데.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의 눈앞에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는 남자가 서 있었다. 왜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넥타이와 셔츠를 잔뜩 풀어 헤친 채였다. 이제 막 방으로 들어와 샤워하려던 사람처럼. 아, 설마…….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친 그 순간이었다. “중동 부호의 내연녀께서 왜 내 방에 있을까?” 정말이지 오늘은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