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은 다 끝났나?” 아린은 눈앞에 나타난 야수 때문에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넝마가 된 옷 사이로 보이는 거친 잔근육과 빛바랜 금색 홍채, 자기주장이 뛰어난 검은 동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그의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사, 사람이세요?” 아린의 물음에 고독으로 점철돼 있던 패왕의 얼굴에서 환희가 꽃피웠다. “당신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내가 원하는 거? 단 하나다. 허락 없이…….” 차분한 표정과 다르게 그의 샛노란 눈이 불타오르는 거 같았다. 그의 혀가 야살스럽게 굴려졌다. “내게서 도망가지 마.” 아린은 등골이 차갑다 못해 서늘해졌다.
아기 주제에 기행을 일삼던 쌍둥이 남동생.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 이거 환생자 같다. “흐음, 반응을 보아 몸에는 문제가 없으신 거 같은데….” 그녀는 아기답게 행동하지 않아 유모의 걱정을 사는 녀석을 째려봤다. 눈총이 따가웠는지 남동생이 이상한 방법으로 말을 걸어왔다. [너 뭐야.] ‘….’ [계집, 묻는 말에 답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 ‘나는 이미 너를 적으로 간주했다. 어디 감히 누나한테, 계집? 계에집!?’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건 이제 일상이 됐다. 혈육 놈이 무협지에서만 보던 전음인지 뭔지로 말을 걸어오는 것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 [아무리 삼류 소리 들었던 무인이었다지만, 아기한테까지 이런 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대천(大川)이라는 전생의 이름이 우는구나.] 네? 대천(大川)이요? 이름이 아주 익숙한데. 아무래도 엄마 아들놈이 양판소 남주인 거 같다. 그것도 집안이 멸문당하여 복수귀가 되는. 멸문을 피하려면 황족과 엮여선 안 됐다. 그런데…. “왜 날 구해줬어요?”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