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밖에 모르는 기계남. 출근에서 퇴근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오직 일, 일, 일만 하는 본부장.그렇다고 눈에 띄게 갑질하는 것도 아니다. 완벽한 상사를 둔 덕분에 늘 긴장을 놓치지 않는 서하는 어느 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는다. 그것도 제 직속 상사이자 최고 상사인 ‘본부장’에게.하준이 넙죽 인사했다.“본부장님……?”“박하준 대리입니다, 실장님.”“네?”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하준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인사발령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에. 진서하 비서님은 YSM기획팀 실장으로 승진되셨습니다. 저는 YSM기획팀 대리, 박하준이고요.”이게 무슨……. 서하가 눈을 느리게 깜빡이자 하준이 빙긋 웃었다.“자리를 옮기실까요? 아, 가방은 저에게 주십시오.”하준이 팔을 내밀어 서하의 백을 잡으려 했다.“본부장님, 제, 제가…….”서하가 쩔쩔매며 말하자 하준이 하는 말.“아, 말씀 안 드렸군요. YSM기획팀 대리 업무는 YSM기획팀 실장님 비서 역할입니다. 실장님의 손과 발이 돼 주는. 이런 것도 당연히 해야 하고.”그러면서 하준이 다시 서하의 가방을 살짝 가져갔다. 서하는 이건 꿈인가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일밖에 모르는 냉혈한 박하준이 저렇게 웃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10년 전에 헤어진 연인. 서른이 되어 피렌체에서 다시 만나다. 우리는 성인이 됐다. 성년의 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강준이 한 달 전부터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다.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어?” 나는 살짝 그러쥔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왜 뺨이 아니라 입술을 가렸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성년의 날, 키스가 떠오르는 탓인 걸까. 우린 첫 키스 이후로 아직 뽀뽀 한 번 하지 않았다. 그걸 내심 기대한 걸까? “은근, 기대하나 보네. 우리 애인님.” “아, 아냐.” 목덜미를 쓸어 만지며 부정하려 해도 지강준은 내 모습이 즐거운 듯 더 뻔뻔한 표정으로 빤히 봤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 강준이 뱉은 말에 내 고개가 홱 돌려졌다. “자기야.” “……!” “기대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