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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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평점 3.00
검은지빠귀가 두 번 우는 밤

“너 왜 도망가…?” “…그러는 카를 님은 왜 쫓아왔는데요?” 클라우젠 공작가의 불청객. 열두 살의 나이로 양친을 모두 잃은 아델은 클라우젠 공작가로 오게 되고,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카를과 마주한다. 악연과 인연, 그 알 수 없는 사이 어딘가 부모 대부터 얽힌 관계를 풀어 보려 애쓰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상처,  후회와 집착만이 앙금처럼 남았다. 검은지빠귀가 두 번 우는 밤이 오면 시작되는  그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

번쩍, 하고 전율이 흘렀다
3.0 (1)

“어떤 삶을 원하는지 말해 보십시오. 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릴 테니.” 리디아 라니스터는 카이얀 비텔스 대공의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제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 못했지만, 딱히 불만이 있지도 않았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황제의 사생아로 쥐 죽은 듯 살았던 스무 살의 리디아는,  황제의 명령으로 카이얀과 결혼하기 위해 대공령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연히 열여덟 살의 황녀의 삶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전 삶의 결혼상대자였던 카이얀과 만나게 된다. 직접 만난 대공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꾸만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 물었고,  리디아는 답을 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번쩍, 하고 전율이 흐르는 순간, 리디아는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고.

이제는 내가 울 차례였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게 어째서 지금 내 눈앞에 있을까?” 카히르의 말이, 칼날처럼 내 가슴을 난도질했다. 3년 만에 만난 카히르의 눈에는 나를 향한 분노와 혐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짓씹듯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나를 후벼팠다. 절대로 울지 않는 것이 내 장점이건만, 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레아.’ ‘…….’ ‘지금 당장은 너와 함께 도망칠 수 없어.’ 누군가 칼로 심장을 내리찍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후작을 죽여줄게.’ 이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 새파란 눈동자는 시린 얼음 조각만 같았고 넓고 단단한 어깨는 잔인하게 나를 짓눌렀다. 이제는, 내가 울 차례였다.

두더지 아가씨 이네트

뻔뻔한 데다 염치도 없는 소매치기. 젠체하는 데다 저만 아는 공작. 이네트와 칼리언의 만남은 최악이었다. “놓았다가 또 도망가면 어쩌려고.” “……도망가지 않아요.”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일단 제 설명부터 들어 보시고―.” “소매치기 아가씨 말을 들어줄 필욘 없겠지.” 4년 전, 보물고 열쇠를 소매치기 당한 칼리언 클라이스트 공작은  바이제 백작가 영애로 돌아온 소매치기 이네트와 다시 한번 마주친다. 열쇠를 돌려받기 위한 칼리언과 그를 피해 다니는 이네트. 얽히는 오해 속, 두 사람은 스캔들을 잠재우려 결혼을 결심한다.   *   “당신은 항상 내 신경을 건드려.” “…….” “그리고 나는 후계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했고. 그렇지?” 칼리언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네트는 어린애가 아니었고, 귀족 간의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맞아요.” 칼리언의 눈이 만족스럽다는 듯 길게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