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 새끼가 바람피운 게 맞다면. 나한테 올래?”해준의 커다란 손이 지은의 볼을 쥐었다.살짝 쥐었을 뿐인데 심장까지 잡힌 듯 몸 전체가 쿵쾅거렸다.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선 안 된다.그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나를 배신하고 상처만 준 사람. 그래서 사랑 따위, 믿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니까.여전히 나쁜 사람이다.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게 만드니까.자꾸 흔들리니까.“나한테 와.”정말 당신한테 가도 괜찮을까.지은은 질문하듯 해준을 쳐다보았다.어떤 무엇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단단하게 잡아줄 것 같은 올곧은 눈빛이 반짝였다.하지만 이내 지은의 입에서 쓴 웃음이 흘렀다.서해준인걸.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을 불안에 떨게 만들던 서해준.“싫어요.”당신한테 휘둘리던 건 한 번이면 충분해. 아버지나 권정규나 당신이나 다 똑같아.아니, 그중에서 당신이 제일 나빠.“절대 안 가요.”해준이 웃었다. 너 따위의 거절은 하등 상관없다는 듯 편안한 웃음이었다. 해준은 엄지를 넓게 벌려 지은의 아랫입술을 쓸었다.바짝 메마른 입술이 뜨거웠다.이러면서.해준은 고개를 기울여 지은의 입술을 삼켰다.
“난 앞으로 주 3일만 출근합니다.” 학원도 아니고 회사를 주 3일이라니.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희 회사는 주 5일 출근이 기본 원칙입니다.” “난 사흘만 출근하는 게 원칙이에요. 그만 가 봐요.” 진욱이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주말 동안 뭘 했는지 전보다 더욱 탄탄해진 몸은 선수촌에 있는 운동선수 같았다. 그러니까. 그 몸을 일하는 데 쓰면 얼마나 좋을까. . . . “이러려고 들어오겠다고 한 건가?” “장난 그만하시고 놔 주세요.” “안 일어나고 싶은 건 아니고?” 유진은 분노를 감추며 그를 쳐다보았다. 한때는 지켜 주고 싶은 인턴이었고, 잠깐 그의 품에서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반드시 견뎌 내야만 하는 ‘대표 놈’ 도진욱을.
“저는 연주자예요. 술집 여자가 아닙니다.”하얗고 가늘어 목련을 떠올리게 하는 여자.망나니 삼촌의 뒤처리 중 만난 박연수는 처연하게 울고 있었다.최악의 상황에 낙담하면서도 끝끝내 고고하게 구는 모습이 흥미를 돋웠지만, 그뿐이었다.다시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평생 개처럼 그를 부린 문 회장에게 복수를 결심했을 때,제 거짓 결혼의 상대로 가장 먼저 떠올린 여자는 박연수였다.“계약서에 부부 관계에 관한 조항이 없다는 허점을 노리고 유혹하는 거면 곤란한데.”“유혹한다고 넘어갈 것도 아니잖아요.”“넘어가.”참고 견딜 줄만 아는, 따분할 정도로 착한 여자.그러나 매번 태경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녀가, 자꾸만 신경 쓰인다.“전에 내가 말 안 했나? 박연수 씨 상당히 야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