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꿈이야?” 공작가에서 비서로 일하던 어느 날, 이름과 얼굴만 아는 기사가 다치는 꿈을 꿨다. 이상한 꿈이라며 의아해한 뒤 넘어갔지만, 아무래도 예지몽이었던 모양이다. 그날부터 그 기사가 자꾸만 내 꿈에 나와서 다친다. 그것도 모자라서 꿈에 나온 일이 그대로 현실에서 일어난다. 그냥 모른 척하기에는 양심에 찔려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기사님! 앞에 돌부리 조심하세요!” “누가 소각로를 열어두고 갔네요. 위험하게…….” “저는 저쪽 길로 가는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제가 가는 길이 더 잘 정돈되어 있어요.” 그렇게 몇 번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다칠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정원으로 불러냈더니 이런 말을 한다. “죄송하지만, 제가 연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 당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양심이 건재하고 간이 콩알만 한 사람일 뿐이라고요! 아무리 주장해도 기사는 듣지를 않았다. 나는 그걸 항의하다가, 어이없어하다가, 마음대로 생각하라며 포기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와 제법 가까워졌다. 되도 않는 오해를 하며 미리 철벽을 치던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정말로 저를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다소 시무룩한 기색으로 물어보는 웬 곰 같은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곰이면 무서워야 하는데 왜 귀여운 것 같지? 내가 드디어 미쳤나?
S급 헌터인 레이몬드 데본은 하루아침에 기억을 잃었다. 눈을 뜨니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고, 그의 집과 주변 환경이 모두 뒤바뀌어 있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갑자기 그에게 웬 아내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상냥하고, 순진해서 더더욱 싫은 아내가. “과거의 내가 당신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는 네 존재를 용납 못 해.” “…….”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겠지. 최대한 빠르게 이혼하고, 이 집에서 나가주면 좋겠군.” 레이몬드는 과거의 자신이 벌여둔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상대가 저렇게 형편없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고마워요, 레이몬드.” ……속없이 착하고 바보 같은 여자가 환히 웃을 때마다, 그의 오만한 생각이 뒤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