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죽어줬으면 해, 벨리아.” 사랑하는 이에게 가족도, 나라도, 자신마저 빼앗기고 쓸쓸하게 죽임당했다. 죽어서도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겠노라 저주하며 눈을 감은 순간. 황제가 내게 구애하던 순간으로 회귀해 버렸다. “저와 결혼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동생인 망나니 2황자를 선택했다. “제 손을 잡는다면 전하께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아 줄게요.” 처음에는 그저 계약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칼리드가 벨리아의 손에 자신의 뺨을 기대었다. 그의 목소리가 목울대를 긁으며 날카로워졌다. “나를 떠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벨리아.” 그의 푸른색의 눈동자가 집착으로 물들어 점점 짙어졌다. 고작 계약 관계일 뿐인 내게 망나니 2황자가 애정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분명 우리의 계약 속에 진심은 없었는데.
환생했다. 아니, 환생인 줄 알았다. 사실 알고 보니 책 빙의였다. 【그날 수많은 귀족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작중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귀족’ 중 하나, 최종 악역에게 죽임당할 이름 없는 엑스트라로. 이대로 삶을 포기할 순 없다. 난 원작의 글자를 볼 수 있는 내 능력으로 최종 악역의 측근이 되기로 결심했다. “끌고 가.” 하지만 이 원작 악역, 쉽지 않다. 나는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 예언가예요!” 그건 그저,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뢰를 얻으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러니까, 저희가 연인 사이라고 말을 하라고요?” “나는 그대의 예언이 필요하고, 그대도 생존을 위해선 내가 필요하니까.” 졸지에 악역 대공과 계약 연애를 하게 되다니! * “자기야!” 난 뻔뻔했다. “뭐든 다 예쁘군.” 그러나 이 남자도 만만치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연기는 점점 물이 올랐고, 일시적 동맹이었던 계약 연애는 자꾸만 판이 커졌다. 그리고. 그가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였다. “……눈, 감아야지.” “네, 넵!”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