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찌
파랑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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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굴어 놓고

이제 와서 매달려 봤자 헤덴 백작가의 장녀, 오드리네트는 집안끼리 자주 왕래하던 카르데나 후작, 후시안과 간질간질한 만남을 이어 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가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다고 한다. “가장 먼저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확실히 고백을 받을 줄 알았는데. 살짝 닿았던 부드러운 입술의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차갑게 식어 버린 현실과 마주하고 만 오드리네트. “……축하드려요, 후작님.” 실연을 뒤로하며 하루하루 견뎌 내고 있지만 왜 이렇게 후시안과 자주 마주치는 건지. 그럴 때마다 이 남자는 왜 아련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슨 낯으로 자신을 붙잡는 건지. 상처를 입힌 건 그인데, 왜 상처를 입은 눈을 하는 건지. 도무지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오드리네트는 하루하루 말라만 가는데…….

나 이제 너 안 좋아해

“미안한데, 넌 나 못 쫓아내.” “우리 말이야. 이제 정식으로 약혼할 때가 된 것 같아.” 17살. 올해로 성인이 된 피에라는 줄곧 짝사랑해 온 소꿉친구, 다리오에게 찾아가 수줍게 속삭였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음일 테니, 기꺼이 고백을 받아 줄 거라 믿었었는데! “약혼? 누가? 너랑 나랑?” 놀란 듯 동그래진 눈으로 되묻던 다리오가 곧 뒤로 넘어갈 듯 웃으며 말했다. “피피. 제발 부탁이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 말을 꺼내는 순간까지도 피에라는 알지 못했다. 제 제안이 이토록 무참히 짓밟히리라는 것을. * * * 다리오를 떠올리기만 해도 울렁거리던 마음이 더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겨운 짝사랑도 이젠 끝이야.’ 잘됐다고 생각하는 피에라와 달리, 다리오는 그녀의 변화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친구라고 선을 그었으면서. * * * “피피. 나는 앞으로 네게서 떨어지지 않을 생각이야.” “이번 일 때문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걱정돼서 그러는 것도 있지만 그냥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왜? 너 또 나 가지고 장난치는 거야?” 다리오가 테이블 위, 작은 공처럼 말린 피에라의 손을 제 쪽으로 끌어왔다. “너를 좋아하니까. 너와 친구 이상이 되고 싶어.” “…….” “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고, 네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손등에 빠르게 입을 맞춘 뒤, 그녀의 성난 얼굴을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다리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피에라가 진지하게 그를 불렀다. “나 이제 너 안 좋아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