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르신
님도르신
평균평점 4.25
월급쟁이 마법청년입니다

“자, 네 의지로 키스해. 그다음은 내가 이끌어 줄 테니까.” 키스. 그 단어의 자극이 너무 강했다. 카오스의 입술만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끌어 준다니. 어떻게. 지윤이 혀끝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슬쩍 핥았다. “시간이 가고 있어.” 재촉하는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입술을 겹쳤다. 말캉한 입술을 맞댄 채 가만히 숨을 멈추자, 남자가 쿡쿡 웃었다. “숨 쉬어.” 작은 속삭임에 입술이 간질간질했다. 커다란 손이 뒷머리를 단단히 붙잡는 게 느껴졌다. “읏…….” 축축하고 물컹한 것이 지윤의 입술을 천천히 더듬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어 버리자, 카오스가 입술 위에 속삭였다. “입 벌려.” 각종 무술과 단련된 몸을 살려 취업을 하고자 하던 현지윤은 번번히 낙방하다가 우연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이건 히어로 표준 계약서입니다. 한번 읽어 보십시오.” 억 대 연봉의 히어로, 마법청년의 '어스'를. 하지만 5원소의 마법청년 중에 가장 존재감도 인기도 낮은 어스였다. -얹혀 가는 어스. -월급 도둑. -이럴 거면 마법청년 4원소 해라. ‘아, 진짜 퇴사하고 싶다.’ 하지만 매력적이고 기묘한 빌런 '카오스'를 만나게 되면서 지윤의 히어로 라이프의 변곡점이 찾아온다...!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3.5 (1)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집안과 약혼자,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희연은생사의 기로에서 그를 살린 낯선 남자에게 붙잡히고 만다.“왜 하필 내 눈에 띄어가지고. 뒤지려면 혼자 조용히 뒤지든가!”“누가 구해 달랬어?”“너 진짜 뒤지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그렇게 희연은 저를 구한 이규를 쫓아가 그의 삶 속에 몸을 던진다.곰팡이 슨 반지하 방, 조폭의 유흥거리로 링 위에서 싸움질을 하며 살아온 밑바닥 인생.순진한 이규는 거칠게 희연을 밀어내면서도 차마 내치지는 못한다.“뒤지려고 할 때 그냥 놔뒀어야 하는데.”“이미 구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네가 나 새까만 바다에서 구해 준 것처럼 나도 너 끌어내 줄게.”죽고 싶은 여자와 살고 싶은 남자.티격태격하며 내디딘 두 사람의 동거가 서로를 구하기 시작하는데….*“이규야. 죽지 마.”싸우지 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당장 그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었고, 그걸로 평생을 살았고…. 희연은 아직 그에게 평범하게 사는 걸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으니까. 그의 까만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이건 무슨 장난인데. 왜 떠나는 것처럼 말하는데.”이규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그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내가 선택한 거니까 안 놓겠다며.”변명할 말 따윈 없었다. 그렇게 말한 것도, 약속한 것도 전부 그녀였으니까.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떠나겠다고 멋대로 말하다니.“내가 너 구해 줬잖아!”이규가 악을 쓰듯 외쳤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희연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의 어깨를 세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외전2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집안과 약혼자,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희연은 생사의 기로에서 그를 살린 낯선 남자에게 붙잡히고 만다. “왜 하필 내 눈에 띄어가지고. 뒤지려면 혼자 조용히 뒤지든가!” “누가 구해 달랬어?” “너 진짜 뒤지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렇게 희연은 저를 구한 이규를 쫓아가 그의 삶 속에 몸을 던진다. 곰팡이 슨 반지하 방, 조폭의 유흥거리로 링 위에서 싸움질을 하며 살아온 밑바닥 인생. 순진한 이규는 거칠게 희연을 밀어내면서도 차마 내치지는 못한다. “뒤지려고 할 때 그냥 놔뒀어야 하는데.” “이미 구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 네가 나 새까만 바다에서 구해 준 것처럼 나도 너 끌어내 줄게.” 죽고 싶은 여자와 살고 싶은 남자. 티격태격하며 내디딘 두 사람의 동거가 서로를 구하기 시작하는데…. * “이규야. 죽지 마.” 싸우지 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당장 그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었고, 그걸로 평생을 살았고…. 희연은 아직 그에게 평범하게 사는 걸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으니까. 그의 까만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건 무슨 장난인데. 왜 떠나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규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그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 “내가 선택한 거니까 안 놓겠다며.” 변명할 말 따윈 없었다. 그렇게 말한 것도, 약속한 것도 전부 그녀였으니까.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떠나겠다고 멋대로 말하다니. “내가 너 구해 줬잖아!” 이규가 악을 쓰듯 외쳤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희연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의 어깨를 세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낙엽이 지지 않는 계절

“발레리나 씨. 또 만나네요. 오늘도 춤추려고요?” 발목 부상으로 좌절하고 있던 유연은 홀로 춤을 추다 자신을 권투 선수라 소개하는 남자, 채율을 만난다. “저는 져도 상관없어요. 링에 올라가는 게 너무 좋거든요. 시합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권투를 계속 하는 거니까.” 유연을 향해 언제나 배시시 웃어주는 그는, 권투가 삶의 전부라고 하는 그는, 펀치 드렁크 증상으로 더 이상 링 위에 서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발레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채율 씨 덕분이에요.” “유연 씨는 어떻게든 발레를 다시 했을 것 같은데요. 춤추는 게 너무 즐거워 보여서요.” 그렇게 두 사람의 공감과 연대는 점차 애정으로 물들어가지만, 시합이 다가올수록 채율의 상태는 아슬아슬해지기만 하는데…. “채율 씨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권투가 없어도, 다른 것으로 가슴을 채울 수 있잖아요.” 그게 자신이 될 수는 없는지, 조금도 채워지지 않았는지  유연은 묻지 못한다. 그가 자신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가슴 속에 쌓이기만 했다. * “보기 흉하죠. 좀 나은 다음에 보자고 할걸 그랬나 봐요.” 유연은 입술을 달싹였다. 보기 흉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가 필사적으로 싸워서 이긴 증거 아닌가. 남자의 등 뒤에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불쑥 든 생각을 내뱉었다. “단풍 같아요.” 그 말에 채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었다. “그런 표현은 처음 듣네요. 단풍 같다니.” “제일 예쁠 때잖아요.” “하하.” “가장 화려할 때는 단풍이 들었을 때잖아요. 오늘 채율 씨가 이겼으니까. 맞죠. 단풍.” “좋네요. 단풍이라….” “그러니까 흉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가 작게 고마워요, 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중고거래, 중고동창, 중고인연

중고 거래를 위해서 낯선 남자를 만난 재희. 매끄럽게 거래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재희를, 남자가 불러 세운다. 그러면서 남자는 자신을 모르겠냐고 묻고, 재희는 그가 동네 친구였던 지운임을 알아본다. 첫사랑이기도 했지만, 엇갈리는 감정 때문에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떠나 보냈던 지운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중고 거래 때문에 만난 남자는, 한때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꿉친구. 지난번에 실패한 인연이 이번에는 가능할까?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재미는 높여서 스낵처럼 즐기는 로맨스 - 한뼘 로맨스 컬렉션.

창문을 닫아 두세요
5.0 (1)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돌아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고향이라는 곳이 마음의 안식처도 아니었고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도 연락이 끊기거나 타지로 간 지 오래라 특별한 의미가 남아 있지도 않았으니까.이사 당일, 혜리는 어쩐지 낯이 익은 남자를 마주친다. 누구였지.남자의 얼굴이 정말 익숙했다. 아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남승현….”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나자, 승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시간이라는 게 무섭긴 무서웠다.절대 잊을 수 없는 친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잊은 것을 보면 말이다.“너… 승현이 맞지?”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멀거니 쳐다보는 눈에 망설임이 가득했다.“나 혜리야. 기억 안 나?”그 말에 남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쓰게 웃었다.“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Copyrightⓒ2023 님도르신 & 바니앤드래곤Cover Design Copyrightⓒ2023 PIZZAAll rights reserved.

성염색체가 고정되지 않음 1 - 만남

소꿉친구인 진아와 우혁. 서로에게 약간의 감정은 느끼고 있지만, 소꿉친구라는 관계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두 사람은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같이 보는, 연인 같은 사이다. 그런데 진아가 가끔 짜증을 부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건 우혁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가끔씩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침에야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서 약속을 취소하려는 우혁. 그에 화가 난 진아는 우혁의 집으로 달려가고, 그것에서 낯선 광경을 마주친다. 성염색체가 고정되지 않는 남자. 그리고 그의 소꿉친구인 여자. 남자의 진실을 알게된 여자에게 주어진 선택지. 기발한 설정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체가 흥미로운 단편 로맨스.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재미는 높여서 스낵처럼 즐기는 로맨스 - 한뼘 로맨스 컬렉션.

분(分), 리(離)

세하는 BIID(Body Integrity Identity Disorder)라는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정신병동에서. 자신이 ‘로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를 만난다. 미쳐 버린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 진실이 있을 수도 있는 걸까.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세하 역시 미쳐 가는 걸지도 몰랐다. 혹은, 이미 미쳤거나. 표지 디자인: 라이네

낙엽이 지지 않는 계절 외전

“발레리나 씨. 또 만나네요. 오늘도 춤추려고요?” 발목 부상으로 좌절하고 있던 유연은 홀로 춤을 추다 자신을 권투 선수라 소개하는 남자, 채율을 만난다. “저는 져도 상관없어요. 링에 올라가는 게 너무 좋거든요. 시합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권투를 계속 하는 거니까.” 유연을 향해 언제나 배시시 웃어주는 그는, 권투가 삶의 전부라고 하는 그는, 펀치 드렁크 증상으로 더 이상 링 위에 서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발레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채율 씨 덕분이에요.” “유연 씨는 어떻게든 발레를 다시 했을 것 같은데요. 춤추는 게 너무 즐거워 보여서요.” 그렇게 두 사람의 공감과 연대는 점차 애정으로 물들어가지만, 시합이 다가올수록 채율의 상태는 아슬아슬해지기만 하는데…. “채율 씨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권투가 없어도, 다른 것으로 가슴을 채울 수 있잖아요.” 그게 자신이 될 수는 없는지, 조금도 채워지지 않았는지  유연은 묻지 못한다. 그가 자신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가슴 속에 쌓이기만 했다. * “보기 흉하죠. 좀 나은 다음에 보자고 할걸 그랬나 봐요.” 유연은 입술을 달싹였다. 보기 흉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가 필사적으로 싸워서 이긴 증거 아닌가. 남자의 등 뒤에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불쑥 든 생각을 내뱉었다. “단풍 같아요.” 그 말에 채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었다. “그런 표현은 처음 듣네요. 단풍 같다니.” “제일 예쁠 때잖아요.” “하하.” “가장 화려할 때는 단풍이 들었을 때잖아요. 오늘 채율 씨가 이겼으니까. 맞죠. 단풍.” “좋네요. 단풍이라….” “그러니까 흉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가 작게 고마워요, 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유리 칼날

“첫눈에 반했습니다. 아가씨.”그게 그 남자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유리는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도현에게 금세 빠져든다.하지만, 그는 큰 비밀을 품고 있었다.“우리 이혼해요.”도현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유리는 이혼을 제안하는데….<[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

불온한 의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내 남편, 만나 볼 생각 있어요?” 오래전 잊었다 생각한 첫사랑의 얘기를 꺼낸 건, 그의 아내였다. “그 남자, 당신이면 만날 것 같은데. 어때요. 만나 볼래요?” 도박 중독자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모아 둔 돈도, 가족과 관계도 모두 엉망이 되었기에 터무니없는 제안이란 걸 알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소민은 십여 년 전 헤어졌던 재성에 ‘우연’을 가장해 다시 마주한다. “윤소민…… 맞지?”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너는 내가 망가지길 바라잖아.” “놔, 줘…….” “네가 제일 끔찍해. 소민아, 네가 제일 지옥 같다고.” 결국 두 사람은 알면서도 진창에 뛰어드는데…….

아는 동생

“진짜 내가 업어 키웠는데.” 보들보들한 까만 머리카락, 뽀얀 얼굴에 통통한 뺨, 인형처럼 동그란 눈. ‘귀엽다.’ 둘이 크면 결혼시키면 되겠다고 아빠들끼리 농담하긴 했지만. 아빠 친구 아들, 다섯 살 어린 성민은 채은이 바랐던 완벽한 동생의 모습이었다. “누나, 나 넘어졌어. 아파. 허엉.” “보건실 가자.” “다리 아파. 누나.” 채은은 그 작은 몸을 업고, 성민의 가방을 손에 들었다. 등에 느껴지는 아이의 체온이 따끈따끈해서, 조금 더웠다. 성민을 챙기는 채은을 보고 친구가 물었다. “채은아, 걔 사촌 동생이야?” “아니. 그냥….” 아무리 생각해도 성민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아는 동생.” 채은에게 성민은 그렇게 업어 키운, 아는 동생이었는데…. “누나, 우리 언제 결혼해?” “누나, 해도 돼?” “누나, 좋아?”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지만. “누나 그런 사람이었어? 이렇게 막 버리는?" 되돌아가기에 너무 늦은 건 확실했다. ※ 본 작품에는 외전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 시 참고 바랍니다.

별도 굶어 죽나요?

“누나 집에서 살래요.” 어느 하루, 친구의 손에 이끌려 아무도 모르는 아이돌 ‘레이스’의 팬미팅에 가게 된 다연. 인기 없는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인기 없는 멤버 ‘유야’. 이렇게나 잘생겼는데 이렇게나 끼가 없다니. 다연은 안타까운 마음에 유야를 챙기기 시작하고, 어느덧 유야에게도 1호 팬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레이스는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해체되고, 얼마 없던 팬들도 산산이 흩어진다. 흐르는 일상 속에서 유야를 잊기로 마음먹고 하나하나 흔적을 지우려던 중. [누나, 저 유야예요.]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SNS에는 그의 쪽지가 쌓여 있었다. [힘들 때마다 누나 생각을 해요. 그리고…….] [누나, 한번 만날 수 있어요?] 망설이던 다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한번 만나요.] 레이스 해체 후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던 그. “부모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밥은…… 가끔 먹어요.” 유야의 상황을 대충 이해하고 나니, 이대로 헤어지면 눈에 밟힐 게 뻔했다. 다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것 같은 제안이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지낼래요?”

시간의 가격

은준과 규리는 이미 오래전에 멀어졌어야 하는 관계였다. 학교에 건물 하나쯤 세워주고 들어온 거 아니냐는 얘기가 따라붙던 은준과 달리, 규리는 졸업하자마자 학자금대출부터 갚아야 했다. 졸업장이 생기자마자 가족회사에 입사해 엄청난 속도로 진급해 계열사 사장 자리까지 오른 은준과 달리, 규리는 취업하는 순간까지 몇 번이고 면접을 보고 서른 중반이 가까워져서야 과장을 달았다. 두 사람의 인생에 접점이라곤 오직 대학뿐이었다. 그녀는 은준의 마음을 모른 척한다. 그는 규리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을 사이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왔던 ‘친구’라는 관계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다. 재벌 3세임에도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버티던 은준은 규리에게 마지막 고백을 한다. “이번에도 거절하면, 진짜 끝이야. 이제 더 이상 못 만나. 친구로도 못 있어.” ‘이대로 끝이구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감정을 느끼며 이별을 고하려는 규리에게, 은준이 마지막 제안을 한다. “내가 네 시간을 살게. …… 조금만 내가 살게.” 은준의 요구는 단 하나, 사귀는 사이처럼 지내달라는 것. 그러나 손가락 하나 대지 않겠다고. 그렇게 2주간 은준의 시골 별장에서 마지막 평범한 나날이 시작된다.

선생님 말고 누나!

“선생님, 아니, 누나, 우리 이제 사귀죠.” “……응?” 갑자기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이제 사귀죠’라니?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내가 고등학생이라서 안 된다고. 이제 고등학생도 아니니까 우리 사귀어도 되는 거잖아요?” * * * 주하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졸업식장을 둘러봤다.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벌써 1년이 흘렀다. 처음이라 서투르지만 열정이 넘쳤던 신입 교사였던 만큼 학생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는데. 벌써 그 아이들을 떠나보낼 날이 다가왔다. ‘어쩐지 좀 쓸쓸하네.’ 주하는 살짝 미소 지었다. 주하의 첫 학교, 첫 제자, 그리고 첫 졸업. 그중에서도 새윤은 특별한 제자였다. 가장 첫 번째 수업에서, 가장 첫 번째로 이름을 알려준 학생이었으니까. 반장이었고, 재단 이사장의 손자였으며, 여러모로 뒤에서 도와줬고. 문제는 주하를 아주, 아주, 좋아했다. “졸업식 날 선생님께 할 말이 있어요.” “졸업식 날? 뭔데?” “선생님, 아니, 누나, 우리 이제 사귀죠.” “네가 나이로는 성인이 된 게 맞는데, 10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너는 내 제자야.”

깡, 단

“저 그냥 치료 안 하려고요.” 췌장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진. 가족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그녀는 남은 마지막 시간을 과거의 짧은 첫사랑과 보내고자 한다. 끝이 예견된 두 사람의 동거는 행복하게 끝날 수 있을까?

창문을 닫아 두세요 외전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돌아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고향이라는 곳이 마음의 안식처도 아니었고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도 연락이 끊기거나 타지로 간 지 오래라 특별한 의미가 남아 있지도 않았으니까.이사 당일, 혜리는 어쩐지 낯이 익은 남자를 마주친다.누구였지. 남자의 얼굴이 정말 익숙했다. 아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남승현….”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나자, 승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시간이라는 게 무섭긴 무서웠다.절대 잊을 수 없는 친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잊은 것을 보면 말이다.“너… 승현이 맞지?”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멀거니 쳐다보는 눈에 망설임이 가득했다.“나 혜리야. 기억 안 나?”그 말에 남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쓰게 웃었다.“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Copyrightⓒ2023 님도르신 & 바니앤드래곤Cover Design Copyrightⓒ2023 PIZZAAll rights reserved.

제비 날자 배 떨어진다

재완은 제비였다. 누군가가 그랬다, 제비가 날자 배가 떨어진다고. 제비라는 놈들은 그렇게 날갯짓 한 번으로 배까지 먹는다는데, 그는 아직 제대로 된 제비가 아닌 모양이었다. 제비로 산다는 것이 퍽 녹록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배가 떨어지겠거니 생각하며 그렇게 그냥 하던 대로, 흐르는 대로 살았다. 돈 많은 걸로 유명한 재벌가 차서연을 만나기 전까진. 젊은 나이임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재벌, 무엇보다 사연 있어 보이는 여자. 아직 제대로 된 제비가 아니라지만 이 정도면 꼬시기 쉽겠지? 작게 심호흡을 한 재완은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넘기곤 여자의 옆으로 다가갔다. “누나.” 그는 싱긋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