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그렇지만 너무나 소중해 가슴속에 늘 머물러 기웃거리던 조용한 그림자.“나 다 기억이 났어.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왜 헤어졌는지.”울먹이는 서우를 향해 도진이 다가와 지그시 뺨을 감쌌다.그토록 원했던 말, 꿈에도 그리던 간절한 순간을 마주하자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사랑스러운 그녀가 자신 앞에 5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았다.서우의 눈동자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삼킬 듯 다가가자 그녀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그런데 오빠, 우리 아이는 어디에 있어?”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열정이 가득했던 그들의 밤이 남긴 건 추억뿐만이 아니었던 것일까?기억을 되찾은 그녀의 말에 그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소용돌이를 느꼈다.
“집이 생겼어. 우리 집.”“뭐라고? 우리……집?”수아는 느닷없이 찾아와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 지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장난기라곤 볼 수 없는 진중하고 단정한 지헌의 얼굴에 수아는 더욱 혼란스러웠다.“신혼부부 특공에 당첨됐어. 너랑 나. 그래서 우리 혼인 신고 해야 해.”“뭐??”수아는 마시려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일일 거라곤.이건 6년 만에 만난 전남친과 할 법한 대화가 전혀…… 아니었다.***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그녀의 육체가 놓였다.곧이어 그의 채취가 그녀의 온몸을 짓누르듯 다가왔다.자는 척하는 눈 속에서 동공이 요란하게 떨리고 있었다.쪽.그의 입술이었다.잊은 줄 알았지만 감각은 기억하고 있었다.이 일을 어쩌지.저 녀석이랑 과연 아무 일 없이 계약상의 부부가 될 수 있을까?
“박하린이 남자를 모르는 데에는 내 책임도 있으니까.” 전남편이 돌아왔다. 그녀가 속한 드라마 제작사의 대표로. 드라마 작가인 하린은 회사의 방침대로 찐한 멜로물을 써 내야만 했다. 스릴러 장르물만 써 왔던 그녀에게 갑작스레 들이닥친 제안이었다. 이혼의 경험까지 있는 그녀가 남자를 잘 몰라서 멜로물을 쓸 수 없다는 것을, 하린은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남자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전남편인 차강현, 오직 그뿐이었다. “외조라고 생각해.” 이번 작품의 성공을 위해서라며 그가 속삭였다. 그의 키스는 넋을 잃을 만큼 뜨겁고 황홀했고 손길은 다정하면서도 거침없었다. 몸을 바쳐 외조하는 이가 전남편이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왠지 더 불온한 쾌락으로 느껴졌다. 부부였던 시절, 외조는 그때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 생각하면서도 하린은 그의 목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시원스럽게 뻗은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에메랄드빛 바다와 맑은 하늘이 드넓게 펼쳐진 세상은 온통 푸르렀다.작은 어선 위 네댓 명의 해녀가 각자 해녀복을 매만지고 물안경을 머리에 얹으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오늘 서울서 손님이 온다 안 캤나.”서울에서 온 손님이라….이 외딴섬에 도시 사람이 내려와 하숙하는 일은 처음이었다.어떤 사람일까? 뭐 하는 사람일까? 왜 이곳에 내려오는 것일까?선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바빠졌다.일 년 365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섬 생활에서 이런 작은 변화는 그녀를 흥분시켰다.“서울 손님?”태검은 코를 막은 채 가느다란 눈매를 치켜떴다.이제껏 수많은 여자들을 보아 왔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에게 대시를 받아 봤지만 이런 여자는 처음이었다. 제 앞으로 어떤 부끄러움 없이 성큼 다가와 활짝 웃어 보이는 이런 해맑은 여자는.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해맑기만 한 그녀를 뒤쫓아 성큼성큼 걸어간 태검은 그녀 옆에서 함께 발을 맞췄다.그녀가 옆에 다가온 그를 향해 생긋 웃었다.언제 봤다고 그렇게 웃어. 태검은 저도 모르게 눈가를 찡그렸다.* * *“안… 돼요!”태검은 왜 그러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작가님.”그녀의 목소리가 젖은 채 울렸다. 태검이 짙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말하라는 듯 그가 턱을 까딱이자 그녀의 입술에서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마음만 드릴게요.”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그렇지만 너무나 소중해 가슴속에 늘 머물러 기웃거리던 조용한 그림자.“나 다 기억이 났어.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왜 헤어졌는지.”울먹이는 서우를 향해 도진이 다가와 지그시 뺨을 감쌌다.그토록 원했던 말, 꿈에도 그리던 간절한 순간을 마주하자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사랑스러운 그녀가 자신 앞에 5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았다.서우의 눈동자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삼킬 듯 다가가자 그녀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그런데 오빠, 우리 아이는 어디에 있어?”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열정이 가득했던 그들의 밤이 남긴 건 추억뿐만이 아니었던 것일까?기억을 되찾은 그녀의 말에 그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소용돌이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