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가 된 남주를 학대한 악역 가문의 장녀로 빙의했다. 하필 남주의 폭주와 동시에 죽게 될 운명이라니! 가문으로부터 남주를 어떻게든 탈출시키는 것만이 살길. 그러려면 기력 회복부터 시켜야 하는데……. 남주를 돕는다면 가문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이 빵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군. 누군가 독을 탔을 수도 있으니 먼저 먹어 보도록.” “멍이 보기 흉하니, 얼른 이걸로 치료해!” 겉으로는 냉랭한 ‘척’하면서, 몰래 챙겨 주는 수밖에. 그런데 이 녀석……, 요즘 날 보면서 얼굴을 붉히는 거 같다? * 에이든은 말없이 라일렌느를 쳐다봤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제가 도망가기 싫다면요.” 라일렌느가 날 선 목소리를 뱉었다. “설령 네가 죽는다 해도?” 에이든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상관없습니다.”
『난 당신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결혼식 전에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 디프린은 몸을 돌려 이벨린을 응시했다. “난 당신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 “당신에게 손끝 하나 댈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아둬. 물론 방도 따로 쓸 거고.” 디프린은 고용인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것처럼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읊었다. 그런 디프린을 보며 이벨린은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2년 뒤 그와 이혼하겠다고. 기왕이면 위자료까지 왕창 챙겨서. 그러나 이런 이벨린의 결심과 달리, 그와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갔다. * * * “이혼 서류를 작성해놨어요. 오늘 건네줄 테니까, 한 달 내로 동의하는 인장을 찍어서 돌려주세요.” “어디 한번 보내봐. 내가 거기에 서명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이벨린이 디프린을 노려봤다. “소송을 걸 거예요.” “날 이기려면 보통 변호인단으론 안 될 거야.” “……정말 최악이군요.” “이미 난 당신에게 최악인 남자가 아닌가? 별스럽지도 않군.” 디프린이 그렇게 말하며 이벨린의 손목을 놔주었다. “나한테 이혼이라는 선택지는 없어. 그러니까 당신이 생각을 바꿔.”
「다 내 손으로 할 거야. 당신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 전부, 하나하나.」 이혼 통보와 동시에 남편의 재혼 소식을 듣게 됐다. 남편의 재혼 상대는 틸다의 계모였던 여자였다. “있잖아, 틸다. 나 윈저 녹킬라와 재혼해.” 아클레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윈저는 너처럼 뻣뻣한 여자보다, 내가 훨씬 좋대. 진작 이혼하고 싶다는 걸 겨우 말렸어.” 틸다는 그날 깨달았다. 아클레어가 자신에게서 남편뿐 아니라, 가문, 명예,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그에 틸다는 여신을 위해 기도하던 손을 더럽히기로 결심한다. “다 내 손으로 할 거야. 당신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 전부, 하나하나.” * * * 음험한 복수에 조력자 한 명이 나타났다. 칼레스 모인. 제국의 존경 받는 훌륭하고 신실한 사제이면서도, 자신을 볼 때면 음탕한 눈빛을 하던 속을 알 수 없는 사내. “시리도록 차가운 눈동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당신과 함께라면 저 밑까지 추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읊조리듯 말하는 그에게선 언뜻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칼레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내가 미친놈 같나?”
가시밭길만 걸을 예정인 비련의 여자 주인공 실비아에게 빙의했다. 이대로면 답이 없을 것 같아 서둘러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뭐 먹고 산담.’ 먹고 살길을 고민하던 실비아는 우연히 제국의 주간지를 보게 되었다.<멈블본 아카데미, 올해도 입시 경쟁률 최고 기록!>계급사회에서도 입시 경쟁은 별수 없군. 혀를 차기도 잠시, 실비아는 전생의 일타강사였던 경험을 살려 제국 최고 아카데미인 멈블본 앞에 교습소를 차렸다.<린드세이 제국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 ★멈블본 집중 공략반 개설★ 첫 달 무료, $불만족 시 100퍼센트 환급 보장$> 결과는 대박. 학생들이 물밀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 * *그런데 교습소를 너무 잘 운영해버린 나머지, 생각지도 않던 사람들이 교습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그대에게선 좋은 향이 나는군.”“교사가 싫다면 내 시녀는 어때?”“파트너는 저로 해요, 더네스 남작님.”2황자 3황자, 그리고 막내 황녀까지.거기다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황태자마저 자꾸만 내 연구실에 찾아온다!“문은 왜 잠가요?”“곧 방해꾼들이 들이닥칠 게 뻔하지 않습니까.”이상하다.난 교습소를 운영했을 뿐인데 황자들과 황녀가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일타강사 영애는 놀고먹고 싶어 #실비아의 평온하고 안락한 노후 프로젝트(거기에 비혼을 곁들인)#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가만 안 냅둠 #교습소장에게 집착하는 황자&황녀 #황태자 너마저
메르디는 클리프턴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이 상처만 남을 혼약을 끝내려 했다. 그러나 파혼을 요구한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만약 여기에 다른 게 닿으면, 그게 누구든 죽을 거야.” 클리프턴은 메르디가 달아나려 할수록 더 깊게 옭아맸다. 그때마다 메르디의 눈물은 점차 말라갔고, 클리프턴은 비딱하게 웃음 지었다. “너도 즐겨, 메르디. 이제 매일 이 짓을 겪어야 할 텐데, 조금이라도 즐겨야 덜 억울하지.” 그래서 메르디는 그를 떠나기로 했다. 끝에는 갈기갈기 찢어발겨져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더라도. 표지 일러스트: 마끼 타이틀 디자인: 예낭
남편이 기억을 잃었다. 5년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남편 휴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산 분할 합의서.” 휴고가 이혼을 요구하며 정돈된 서류를 아멜리아의 앞으로 내밀었다. “적지 않은 돈이니까, 어디 가서 혼자 살 수 있겠지. 데리고 살 만한 남자가 있다면 재혼해도 좋고.” 하지만 갑자기 생각을 바꾼 휴고는 아멜리아가 당분간 곁에 머물며 자신의 기억을 찾는 데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 그와 함께 두 사람의 관계는 피할 수 없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시작하는데……. “난 이혼 안 해. 당신을 내 곁에 두고 참담한 꼴을 평생 지켜보기로 마음을 바꿨거든.” “……제가 왜 당신의 뜻대로 해야 하죠? 저는 얼마든지 이 저택을 떠날 수 있어요.” “아니, 나한테서 도망치지 못할걸.” 분노로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에 즐겁다는 듯 미소 지은 휴고가 비쳤다. “당신이 내 아이를 갖게 될 테니까.” 일그러진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파국을 향해 가던 어느 날, 휴고의 기억이 전부 돌아왔다. * * * “아멜리아……?”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휴고가 뒤늦게 아멜리아를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빈자리의 공허한 울림뿐이었다.
프레이야는 어느 날 황제에게 악신이라 불리는 니플헤임 변경백과 혼인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상대는 사람을 홀리는 괴물, 지독한 추남, 살육의 축제를 벌이는 미치광이와 같은 무수한 소문과 함께 베일에 싸여있는 남자. 실제로 마주한 그는 지독히 권태로운 악마 같기도 했고, 높다란 성벽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에는 차갑게 얼어붙은 증오가 튀고 있었다. “내가 두렵나?” 남자는 그런 눈을 하고도 차분히 시선을 내려 프레이야를 향해 속삭였다. “나는 내 새끼를 밸 여자를 함부로 하지 않아.” 아이러니하게도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그 말은, 필요를 다하면 반드시 죽이겠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 펜리르가 체스 말을 정렬하며 오늘 할 일을 알렸다. “체스를 둘 거야.” “잘 못 둔다면요?” “노력해야겠지. 이기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줄 테니까.” 수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눈알이 빠지게 체스 판을 노려보며 신중히 말을 옮기던 중, 기이한 감각이 일었다. 어? 프레이야가 무심코 소리를 낼 때쯤, 아랫배에 슬슬 열이 몰리기 시작했다. “하, 읏!” 그제야 프레이야는 변경백이 제게 체스를 하자고 한 이유를 눈치챘다. 체스 게임은 얼어 죽을, 이건 제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어 먼저 안아 달라고 언제 애원할지를 지켜보는 변경백만 즐거운 변태 같은 게임이었으니까. 그래서 프레이야는 깊은 고민 끝에 해결책을 찾는다. ‘…만약 내가 먼저 그를 덮쳐 보면 어떨까?’ 일러스트: raii
제국의 잘 나가는 사업가 테론 콕스. 원하는 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던 테론은 어느 날 돈 문제로 공작가의 아가씨 셀레네를 꼬셔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테론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여겼다. 셀레네를 꼬시는 건 새로운 돈 구덩이를 발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애초에 그에게 여자 하나 꼬시는 건 일도 아니었고.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마주한 상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칵스 씨.” “‘콕스.’ 제 이름은 테론 콕스입니다.” 셀레네는 누구나 돌아볼 법한 외모의 소유자인 테론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쯤 테론은 눈치챘다. 피아노밖에 모르는 저 여자가 자신을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하루는 셀레네가 테론에게 믿을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키스해 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셀레네 양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는데.” “키스해 보고 싶다고 했어요, 콕스 씨와.” 테론은 순간 생각했다. ‘미친 거지.’ 그 말에 곧바로 붉은 입술을 빨려고 달려들 뻔했던 자신이나, 고작 영감을 얻기 위해서 그런 제안을 하는 저 여자나. 아니, 엄밀히 더 미친 사람은 아무 감정 없는 셀레네 애쉬컴의 말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뛰던 자신일까. 표지 일러스트: Raii 타이틀 디자인: 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