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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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평점 4.50
아름다운 줄리엣을 위하여
4.33 (3)

에녹 레트라키는 그의 아내 줄리엣을 사랑한다. 비록 아내는 그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줄리엣은 그에게 얼굴도 보여 주기 싫어했다. 그녀에게 에녹은 그저 억지로 맺어진 이방인일 뿐이었다. *** 그래, 분명 그랬는데. 에녹은 제 허리를 끌어안고 흐느끼는 여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 결 좋은 검은 머리칼이나 희고 우아한 목덜미는 전부 줄리엣의 것인데. 안간힘을 쓰고 끌어안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연약한 팔이나, 건드리면 바스라질 것처럼 얇은 잠옷도 전부 그녀의 것인데. “바보, 머저리, 어떻게 그런 짓을…….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알겠어요?” ……그녀가 어째서 새벽부터 그를 찾아와 이런 말들을 퍼붓는단 말인가.

단 한 번만 사랑해 줘

아름답고 차가운 아내를 사랑한 끝에, 이드렌에게 남은 것은 그녀의 죽은 몸이었다. “나도 이제는 당신이 싫습니다.” 삼 년의 결혼 생활은 그에게 짝사랑보다 더한 나락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나락의 끝에 시간이 되돌아갔다. 돌아온 과거에서 오필리아를 마주하고 이드렌은 깨달았다. 몇 번을 심해에 처박힌다 해도, 그녀에게 되돌아가는 게 제 운명이라는 것을. *** 조용한 남편이었다. 선을 지킬 줄 알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언제든 등을 돌려도 미안하지 않을 남자. 오필리아에게 이드렌은 딱 그 정도였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 그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그녀도 알지 못했다.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상대의 뺨에 입 맞추고, 오필리아는 생각했다. 당신도 이렇게 애가 타고 마음이 아팠을까. “당신을 사랑해요. 조금 더 일찍 말할 걸 그랬어요.” 기어코 식은 바다에 불씨를 던진 남자에게, 부디 이 모든 게 늦은 말이 아니기를.

이 생에서는 사랑 따위 하지 말 걸 그랬어

〈미안해, 벨라.〉 세상을 구할 영웅이던 언니가 그 말만 남기고 죽었다. 저 대신 제물이 되어서. 이후, 벨레디 시란사는 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7년을 노력했다. “저 눈깔 좀 봐! 너 지금 감히 눈을 치켜뜨니? 내 딸만으로 모자라서 나까지 죽이려고?” “벽으로 가서 죽은 이스테티아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집중하렴.” “이스테티아의 반만큼이라도 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었지만. 결국 벨레디는 차디찬 전장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잘 잤어, 벨라?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언니가 살아 있다……? * * * 돌아온 과거에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언니를 대신해 죽는 것. 다행히 그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순간. 한 가지 변수가 생겼다. 그녀를 한심하게 보던 약혼자가 미쳤다. “행복하지 않아서 죽고 싶으신 거라면, 제가 시란사 양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복을 가져다드릴 테니, 시란사 양께서는 그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미치지 않고서야, 그가 어째서 그녀를 살리려 든단 말인가. 〈이스테티아가 괜한 희생을 했군요.〉 ……과거, 그런 말까지 했던 남자가.

우리가 헤어지길 바란다고 했잖아요
5.0 (1)

“제발, 한 번만이라도 나를 믿어 주면 안 돼요?” 내가 애원했을 때, 남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를 이해했다. 나는 원수 가문의 딸이니까. 우리의 결혼은 그에게 재앙이었을 테니까. 그의 소꿉친구 대신 적진에 넘겨진 순간까지도, 나는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사랑을 끝내면, 그를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채찍의 흉터를 남기고 첫사랑은 끝났다. 기대도 끝났다. 멍청할 만큼 혼자 상처받고 애태우던 시간도 끝났다. 남편이 냉대도 함께 끝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엘라. 이런 말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압니다.” 남편이 내 앞에 무릎 꿇은 순간, 나는 그가 그토록 차가울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부디,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이 아무리 비참해져도 상관없구나. * * * 사랑이 불씨조차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이엘라, 집으로 돌아가자.” 나를 원수처럼 대하던 형제가 찾아왔다. “형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남보다 못한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미 나는 너무 지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