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하자, 강 비서. 돈 줄게.” 백현은 후계자 자리를 확정 짓기 위해 아내가 필요했고, 가영은 돈이 필요했다. 이해관계는 맞았다. “드라마 같은 데선 이런 계약을 하는 남녀가 꼭 진짜로 사랑에 빠지던데.” “그럼 그땐 계약 파기하고 사랑이나 하지 뭐.” 다만, 공과 사가 얽혔을 때 백현은 사를 먼저 챙기는 남자였고. “싫습니다. 계약대로 이혼하고 위자료나 챙겨 주세요.” 가영은 공이 먼저인 여자였다. “사랑에 빠졌는데 그냥 이혼을 하겠다고?” “원래 인생에 여유가 있어야 사랑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공과 사란 본디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슴 아프네. 돈 때문에 버림받는 처지라니.” “누가 버린답니까? 거액의 위자료로 팔자부터 고친 후에 다시 유혹할 겁니다.” 하나로 합쳐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양의 이치처럼. “팔자 핀 강 비서의 유혹이 궁금해서라도 해봐야겠네. 그 사랑이란 거.” 이미 공(公)을 대표하는 ‘계약’과 지극히 사사(私私)로운 ‘결혼’이 섞인 순간, 공과 사를 나누는 건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