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인연, 현재의 악연, 그리고 미래의 운명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 만큼 한껏 달아오른 취기에도 유주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제 눈에서 무언가를 보았음을. 그리하여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 침잠되어 가고 있음을. “너 누구야.” 제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도진의 붉은 입에서 혼란을 고스란히 간직한 외마디 물음이 흘러나왔다.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유주는 그저 그의 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읽어내려 애썼다. 그가 느리게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떴다. 유주는 그제야 깊은 눈동자 속에 언뜻 비친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제 눈을 어지러이 유영하는 눈빛에서 찾아낸 감정은 분명,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