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 그럼 애원해 봐.” 피폐물 여주를 괴롭히다 남주에게 독살당하는 악녀에게 빙의했다. 이름하여 세간의 악인이라 불리는 아나스타샤! 도망치고 싶지만 남주, 파비앙과 약혼을 마친 후였다. 이왕 빙의된 거 원작을 비틀기로 하는데……. 파비앙은 살을 붙여 오지 않나, 여주는 야릇한 눈빛을 보내지 않나, 하드코어 한 시련들이 닥쳐온다. “너는 내 장난감 같은 거야.” “장난감이요?” “필요 없어도 손타지 않았으면 하는 장난감. 딱 어울리군.” 잠깐, 원작에도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흔한 악역인 줄 알았는데 몰랐던 비밀이 드러난다. “이게 무슨 원작 파괴 스토리람!”
“저와 소꿉장난 한번 하시죠.” 몰락한 황실의 황녀이자 의회에 팔려간 역적, 이자벨.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황실을 무너트린 젊은 의회장, 에드워드. 언젠가 악마의 재림이라 생각했던 그가, “조건이라고.” “정통성을 계승한 아내와 대중의 지지를 받는 남편, 슬하엔 일찍 철이 든 아들과 딸. 그 정도는 되어야 그림이 완성되겠군요.” 구원의 손길을 건넨다. 여전히 그녀를 내려다보는, 날이 선 눈을 보고 이자벨은 이렇게 되뇐다. 그녀를 무너뜨린 그가 이제는 구원자가 되었다고. 지독한 인연이었다. * * * “나를 이 늪에서 구해주진 못하더라도 숨을 쉬겐 해줘야지!” 그의 눈은 여전했다. 차갑고 첨예했으며, 출처 모를 염증을 달고 있었다. “경은 날 도와야 해. 나를 지옥으로 끌어내렸잖아.” 그런데도 저곳에서 다른 빛을 본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품고 아름답다 속삭이는 여느 애처가 같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그렇게 보지 마. 내게 또 새로운 얼굴을 보이지 마.” 그것이 싫었다. 싫고 진저리가 났다. 잔혹한 진실을 맞이하기엔, 이미 닳을 대로 닳아 너덜거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