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빙의했다. 하필이면 고구마 가득한 책의 여주인공으로. 왕의 서녀로 태어나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죽어 가는 그 고구마 팔자, 내 손으로 스프라이트 샤워를 시켜 주기로 했다. 열한 살의 오필리아가 된 밤, 나는 국왕 앞에서 첫 예언을 내렸다. “나는, 여왕이다.” 미래를 점치는 신녀의 핏줄을 타고난 내 말과 동시에 왕실이 발칵 뒤집혔다. 과거가 변하고 현실이 흔들리자 미래도 바뀐다. 원작의 철천지 원수 전남편이 나의 기사가 되고, 그 동생은 내 친구가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생기는가 하면, 새로운 숙적이 나타나 칼을 들이민다. 무엇보다 나는 진짜 여왕이 됐다! 과연, 피폐물이었던 원작을 극복하고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아, 참. 근데 이거…… 엔딩이 뭐였더라?
“저 에블린 펠리스는 황후를 그만두겠습니다. 기꺼이.” 제국의 황후 에블린. 규율에 얽매인 황실과 완벽하지만 차가운 남편, 파비안. 모두에게 잊힌 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죽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스무 살로 돌아와 있었다. 에블린은 황제를 향한 마음을 묻고, 자유를 택했다. 그녀의 배 속에 자라고 있는 선물을 깨닫지 못한 채. “내 허락도 없이 불행을 자처하고, 또 멋대로 행복해지는군.” 그런데 1년 후, 우연처럼 파비안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우리 인연은 다했으니…… 그만 잊어 주세요.”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줄 사람으로 보였던 건가.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다.” 깨끗하게 정리한 줄 알았던 인연이 다시 얽히기 시작했다. 무심하던 파비안의 두 눈이 에블린을 향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황제 남편과 여사친 사이에서 말라 죽어 가는 황후, 디아나에 빙의했다. 어차피 죽을 거, 예정보다 빠르게 목숨을 끊은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이 책이 회귀물이란 것이었다. “다시 황태자비가 되느니 죽는 것을 택하겠어.”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원작의 디아나가 회귀하는 순간 책을 덮어 버렸다는 것. 앞날도 모른 채, 절대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하는 디아나의 앞에 황태자에 대적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처음 본 순간부터 뜨거운 진심을 감추지 못하는 대공 에드윈이. “내가 하찮은 사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지. 그대가 기회만 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하, 우린 아직…….” “지금도, 앞으로도, 그대의 꽃잎을 들추고 은밀한 곳을 볼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검은 눈동자는 다정함 속에 짐승의 욕망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의 저돌적인 사랑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역시…… 그 책을 끝까지 읽었어야 했다.
“그대와 혼약이 되어 있는 발레리안 공이 올해로 불혹이던가.” 천년제국을 무너뜨린 찬탈자, 북부 대공 카이든. 고요한 가운데 그의 차가운 흑안이 어린 제국의 황녀 코델리아에게로 향했다. “차라리 내 황후가 되어라. 불행하게 하지는 않겠다.” 제국을 배신한 섭정과 물러터진 선황 간의 혼약. 황가의 피를 참혹하게 짓밟고 올라선 자의 청혼. 그녀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자의 우스운 제안은 꺾였던 절개를 되살렸다. “그냥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말에 강인하고 거대한 육체가 몸을 일으켰다. 짐승 같은 찬탈자의 흑안이 빛나는 순간,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불허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빌었다. 부디 당신을 닮은 건강한 후계자를 갖게 해달라고. 그런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건 차마 믿기 힘든 사실과 끔찍한 배신뿐이었다. “제게 무슨 짓을 하신 거죠? 저는……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다 알면서!” 황제, 패트릭이 손을 내저었다. 관대한 표정과 함께.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짐의 선택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야.” 절망의 늪에서 아리스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결하는데…. 죽었다고 생각한 그때, 다시금 눈을 뜬 그녀의 시간은 19살로 돌아와 있었다. “더 이상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무력하게 키워져 비참하게 시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렇기 위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어떻게 해서든 황후가 되지 않는 것. 그런 결심을 한 아리스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 “그대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광활한 북부의 패자, 검은 야수라 불리는 ‘리카르 알베르투스 대공.’ “제가 원하는 것은 자유. 그것뿐이에요.” 저주받았다 소문난 이 사내는, 자신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 무엇이든 다 내어 놓을 수도, 다 해줄 수도 있노라고. “내 몸에 내린 저주와 아무런 상관없이, 첫눈에 그대에게 반했으니.”
“넌 내게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죽음보다 차가운 보랏빛 눈동자가 내린 형벌. 황제 록퍼트가 찾지 않는 황후 엘리아의 침전은 늘 고요했다. “나는…… 폐하의 영원한 두 번째 황후.” 아니, 사실은 죄인이었다. 황후가 된 그 순간부터.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진실과 마주한 엘리아는 순진무구했던 열여덟의 어느 날로 다시 돌아온다. 같은 삶이 반복되기 전에, 꼭 진실을 전해야 했다. “폐하. 청하건대, 저를 극형에 처해주십시오.” 자신을 그토록 경멸했던 황제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이제는 엘리아는 미련도 원망도 없었는데. “도대체 너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불현듯 황제가 그녀를 욕심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열렬한 눈빛으로.
“올해 들어 최악의 날이군.” “오늘 처음으로 전하와 같은 의견입니다.” 엉망이었던 약혼식을 마치고, 드디어 황태자에게서 해방이다! 남들에게 휘둘리기만 했던 지난 삶에는 안녕을 고하고 가슴 뛰는 일들을 맞이한 세레나. 못된 말만 하던 열네 살 꼬맹이가 전쟁터에 나간 사이 느낀 자유는 엄청나게 달콤했다. 결혼이라는 족쇄에 묶여 궁에서 시들어 가며 죽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약혼 파기만을 호시탐탐 노리던 그녀의 앞에 다시 나타난 황태자가 조금 이상하다. “나는 단 하루도 그대를 잊은 적 없어.” 6년 만에 돌아온 황태자는 어린 티를 전부 벗은, 완연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저는 순종적인 황태자비도, 우아한 황후도 될 수 없어요.” “내게 그렇게 난폭하게 말하는 여인은 그대밖에 없을걸.” 눈높이를 훌쩍 넘은 키, 내려다보던 정수리는 까마득하고. “내 무심함을 원망하는가?” 다가온 황태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에 머리가 아찔했다. “세레나 아스텔, 난 약혼의 맹세를 돌려받으러 왔다.”
새카맣고 서늘한 눈동자엔 한 톨의 감정도 없었다.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 낯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황제의 외면을 받는 황후 알리시아가 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기까지 10년. 그러나 죽음에서 눈을 떴을 땐, 다시 스물이 되었다. "황후는 특이한 사람이군." 지난 생의 바람을 전부 접고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하자 황제, 카이엔이 그녀를 보기 시작했다. 황궁과 알리시아를 버려둔 채, 척박하고 메마른 땅 루베오에서 평생 전투만 벌이던 고독한 사내 카이엔. 어쩌면 이 남자를 적당히 길들여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황후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그런데 이 남자, 알리시아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점점 계획과 틀어지는 둘의 사이…… 혹시, 너무 과하게 길들인 건 아닐까.
“자매가 각각 나를 위해 준다니, 라테스 공작가는 참으로 충심이 깊군.” 황태자비로서 모범을 보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대가는 이복동생과 붙어먹은 남편의 배신과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너와의 사이에 아이 따윈 필요 없어, 아나벨라.”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까지 잃게 만든 건 용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겠다. 기적처럼 회귀한 후, 그렇게 다짐하고 운명을 바꾸려 했는데……. “내 손을 잡아. 그럼 내가 당신 몫까지 복수해 주지.” 저 남잔 대체 정체가 뭘까. 내 마음을 이렇게 엉망으로 뒤흔드는 저 오만한 자는. “아, 혹시 도망가고 싶은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위험한 냄새가 나는 사내. “소용없어. 난 제국도 당신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을 생각이거든.” 위험을 감지하고 벗어나려 했을 땐, 이미 그에게 함락당한 뒤였다.
“부디… 너무 미움받지 않고 평온히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었다. 그런데 하필 읽고 있던 소설의 여주인공 알렉사로 빙의했다. 황실의 외척인 공작가에서 황후를 만들기 위해 입양한 여식 알렉사. 젊은 황제 에녹은 외척 세력을 증오했고, 그랬기에 외척 세력을 위해 만들어진 황후 알렉사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싱그러운 스물의 알렉사는 원작처럼 에녹에게 미움받지 않고 그저 무난히 살아가기만을 바란다. *** “누구냐.” 섬뜩하리만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감히 누가 짐의 비원에 숨어들었지?” 망토 사이로 흘러내린 백금발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하얀 눈밭에서 붉은 매화를 한 아름 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눈꺼풀에 새겨진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황후가 되기 위해 입궁한… 알렉사 타이라입니다.” 그리 말하는 알렉사의 입술이 무척 청초했다. 확실히 함박눈이 내리는 밤에 붉은 매화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알렉사는 여태 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순간, 에녹은 그렇게 느끼는 자신에게 분노를 느꼈다. “다신 경계를 넘지 말도록.” 에녹은 그리 말하고 휙, 돌아섰다. 알렉사는 그나마 이 정도로 넘어간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대는 나와 성혼을 이루는 것이 싫은가?” “아, 아닙니다….” “왜, 아직 성혼을 이루지 않아서 남편이라는 말이 어색한가?” 원작과는 달리 에녹은 성큼성큼 마음을 두드리며 다가오고, 알렉사는 혼란스러운 한편 기쁨 또한 느낀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이 바뀌며, 원작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계속해서 죽음의 마수를 뻗쳐 온다. 알렉사는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살기를 바랐던 소망을 넘어 제국의 황후로서 에녹과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
”너처럼 드세고 불길한 여인은 필요 없어.” 야비하고 잔혹한 황태자에게 버려진 엘레노아는 아무도 찾지 않는 황태자비 전각에서 외로이 죽어 간다. 비참한 삶이 가여워 신이 기회를 준 것인지, 엘레노아는 황태자비가 되기 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두 번 다시는 그 저열한 인간에게 짓밟히지 않겠어.”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운명의 장난처럼 엘레노아는 다시 황태자비가 되고 마는데……. 전생처럼 시들어 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저주받은 북부대공 에릭에게 자신을 납치해 달라고 청한다. “벌써 들켰군, 내 특기가 납치라는 걸.” ”…….” 에릭은 속을 알 수 없는 흑안으로 엘레노아를 훑었다, 왜인지 짙은 열망이 느껴지는 시선에 엘레노아는 잠시간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