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에게 처단당하는 악역 마탑주의 여동생으로 빙의했다. 오빠가 계속 나쁜 짓을 일삼았다간 오빠도, 나도 남주에게 죽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악역 오빠를 갱생시키려 애쓰며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남주가 우리 별장 앞에 쓰러져 있네? 그대로 죽게 놔둘 수 없어 일단 주워왔는데…… 남주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키스해 줘요, 로즈. 당신이 아니면 나 죽어요.” 잠시만…… 설마 벌써 시작된 거야? 남주의 마력 폭주가? 남주의 몸 안에서 폭주하는 막대한 마력을 진정시킬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신체 접촉……. ‘근데 그건 여주가 할 일이잖아!’ 난 악당의 여동생인데? 왜 나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로즈…… 제발, 당신이 필요해요. 날 구해줘요…….” 미치겠다……. 다 죽어가는 남주를 외면할 수도 없을 노릇이고, 당장 여주를 찾으려 해도 시간이 촉박하고!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남주부터 살리자! 내가 그를 도와주다가, 여주를 찾아내면 그때 헤어지지, 뭐! 나는 그에게 살그머니 다가가 입을 맞췄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듯,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좀 더 깊은 관계가 되어봐요, 우리.” “깊은…… 관계요?” “키스도 하고, 다른 것도…….” 그가 애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대단한 미인이 처연하게 날 바라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난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여버리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가 날 끌어당겨 품에 가뒀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난 당신이 처음이에요, 로즈.” 아니, 제가 처음이시면 안 되는데요!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던 남편은 나를 증오했다. 나는 언젠가 이혼할 날만 기다리며 죽은 듯이 살고 있었는데…. “공작님께서… 기억을 잃으신 듯합니다.” “예…?”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기억을 잃어 버렸다? 그것도 나에 대한 기억만 홀랑. 설상가상으로, 기억 잃은 남편은 어째선지 나에게 반한 듯한데…. “부인… 당신이 제 부인이라니, 너무 행복합니다.” 누군데, 이 강아지는…? 나만 보면 물어뜯으려 하던 그 남자 맞아? “기억이 돌아오면 당신 후회할 거예요. 나에게 이렇게 잘해준 거….” “아니요,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하아, 정말….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쌓는 주제에 말은 잘하지. 기억을 되찾고 나면 남편이 드디어 이혼을 강행할 것 같으니, 이혼 준비나 미리 해둬야겠다.
피폐한 역하렘 소설 속, 토끼 수인 여주의 계모가 되었다. 여주를 학대하다가 남주 후보들에게 처단당하는 멍청한 악역인데…… 원작의 전개를 바꾸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토끼 여주가 너무,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여워! 내 딸이 최고야!” “고, 공작 부인?” “공작 부인이라니? 엄마라고 부르렴!” 게다가 다정하고 매력 넘치는 늑대 남편까지 있다? 이건 빙의가 아니라 완전 로또였다. “부, 부인…….” “어허, 또 거절하시려고요?” “하지만, 부인의 몸은 너무 가냘프고 약해서…….” 고개를 푹 숙인 남편이 뺨을 붉히며 우물거리듯 말했다. “……제가 만지면, 부서질 것만 같습니다.” “…….” 난 그를 확 눕히며 말했다. “그럼 시험해볼까요? 부서지는지, 안 부서지는지.”
태어나 한 번도 사랑받아 본 적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사랑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전하, 1년만 저를 사랑해 주세요.” 단 1년만, 나를 사랑하게 되는 마법에 걸려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대신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의 미래를 바꿀 정보들. “저는 예지로 미래를 볼 수 있어요.” 그 대가는 나 자신의 수명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살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그 제안, 받아들이지.” 그렇게 그와 결혼했고, 11개월이 지났다. 채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였다. 나의 수명도, 그의 사랑도. “이제 곧 있으면 계약이 끝나네요.” “……그렇군.” “염려하지 마세요. 마법은 확실히 풀릴 테니.” “그걸 염려하는 게 아니야.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그러세요.” 하지만 그 나중은 결국 오지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마법이 일찍 풀려 버렸고, 나는 떠날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편지를 남기고 그의 곁을 떠난 것으로 모든 게 정리될 줄로 알았다. 억지로 사랑하게 된 여자의 얼굴 따위, 마지막이라 해도 보고 싶지 않을 테니. 그런데 일주일 후, 내 귀에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가 나를 찾고 있다는.
나는 약탈당했다. 내 남편을 죽인 남자에게. 나를 학대하던 남편이 황제가 보낸 처형인의 손에 죽던 날 밤. 바로 그 처형인, 드레이크 공작이 나를 납치했다. “나와 혼인해, 테레브론의 왕비. 아니, 바네사 로엔그린.” 자신의 성에 날 가둔 그가 요구해 온 것은, 다름 아닌 그와의 혼인. 망국의 왕비인 나와 결혼하겠다니, 제정신으로는 안 보였다. 그래도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 승낙하는 척하고, 그가 방심한 사이에 도망치려 했는데… “또 나를 배신하려고? 어림도 없어. 넌 절대 내게서 못 벗어나. 두 번 다시는.” 그는 세상 끝까지 쫓아올 기세로 나를 옭아맸다. 지독히 굶주린 눈으로 응시하며,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듯이 이야기하며. “공작,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 “잘 생각해 봐. 네가 기억해 내도 달라질 건 없지만.” 이따금 애증 어린 눈을 하는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나를 구원하고 망가뜨리려 하는, 나의 약탈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