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에는 서재에서 남편의 첫사랑이 보낸 편지를 찾았다. [나는 네 짝이 클로에였으면 좋겠어. 네가 클로에의 옆에 있어 준다면 난 너무 안심이 될 거야. 추신. 그 아이가 널 좋아한다는 건 너도 눈치챘지?] 다정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후작 부인 클로에. 서재에서 남편의 첫사랑, 레일라가 보낸 옛 편지를 발견하던 날. 그녀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알고 보니 레일라가 남편, 제라드에게 클로에와의 결혼을 종용했던 것. 남편을 깊이 사랑하는 클로에는 8년 만에 알아 버린 진실에 절망한다. 결국 사건의 전말을 알고자 그녀는 레일라가 살고 있는 북부로 향하는데……. * “부인,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고고한 후작 제라드 블란쳇이 제 아내에게 무릎을 꿇은 채로 빌었다. 슬픔의 끝까지 내몰린 경험으로 이미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아내에게 매달려 용서를 구할 뿐. “그러니까…… 버리지 마세요, 예? 클로에, 제발…….” 애달프게 울며 매달리는 이 남자. 도대체 그의 진심은 무엇일까.
“황제께 알려라, 내가 왔다고.” 황녀는 죽으라고 보낸 전쟁터에서 전쟁영웅이 돼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건 유배지 같은 작위였다. 예상했던지라 실망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갈 땐 가더라도. “망국의 왕자를 제게 주십시오.”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것을 챙겨가야 했다. “혹 압니까? 그가 폐하께서 7년 동안 바라왔던 제 죽음을 가져다줄지.” * * * 주인과 전리품. 또는 대공과 그의 정부. “춥고 아무것도 없는 북부에서 나를 즐겁게 해 주는 게 네 역할이지. 낮에도 시중들고, 밤에도 시중들고. 뭐 그리 어려울 건 없는 일이야.” 분명 로잘린과 시온느의 관계는 그렇게 정립되어 있었다. 한순간에 그녀가 28살에서 21살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나를 이리 쉽게 내칩니까, 로잘린.” 그가 가증스러운 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표지 : 르타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 분명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2년 전 헤어졌던 연인이 찾아오길 바란 건 아니었다. “의사가 한 2년 정도의 기억을 잃은 것 같대.” 그것도 기억 상실증에 걸린 채로.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면 어떡할까. 펑펑 우는 엄마 보면서도 네 얼굴만 떠오르는데.” “……됐고, 다시는 이렇게 찾아오지 마.” 은조는 그렇게 서주를 지나치려고 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 버렸는데. 그것만 말하고 가.” 그 한마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찾을 수도 없게 번호를 바꾸고, 회사까지 그만뒀으면서. “은조야, 거짓말도 정도껏 해. 내가 너한테 그랬을 리가 없잖아.” 그는 이제 이별의 책임마저 그녀에게 떠밀었다. “그래서 그런 거 다 겪고 나니까, 이제 정말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 기억 상실증이라는 면죄부를 쥔 서주는 은조를 놓아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근데 감정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는 조건이 됐을 텐데?” “착각하지 마. 나는 네가 회장님 손자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만났을 거야.” “왜. 신입사원 이서주는 꼬시기 쉽고, 전무 이서주는 꼬시기 어려워?” “뭐……?” “그게 아니면 꼬셔 봐, 한 번. 내가 넘어가 줄지도 모르잖아.” 2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이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