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청혼하러 왔어요! 남주가 부상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흑막으로 타락하는 피폐물 비극 로판에 환생했다! ‘세상에, 내 최애를 이대로 둘 순 없어!’ 최애인 남주에게 꽃길을 선물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시작하는데, 벌써 다리를 다친 로엘의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제가 여기까지 온 건 로엘 님에게 청혼하기 위해서예요!” “저희가 초면인 건 아시는 겁니까?” 남들 다 하는 계약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니……. 물론 우린 초면이지만. 나의 일방적인 청혼이긴 하지만…… 이게 다 널 흑막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계획이란 말야! 어쨌든, 백번 찍어 안 넘어오는 나무 없다고 눈물이 나는 노력 끝에 청혼을 성공하긴 했는데. “납치혼 아닙니까?” “로엘 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다들 나보다 남주를 더 아까워하고 과보호한다. 저기, 남주는 내가 아껴 주고 지켜 줄 건데…….
“한 번만, 엄마라고 불러도 되나요?” 어처구니없지만 마차에서 내리다 넘어지는 순간, 이곳이 책 속 세계임을 자각했다. 소설의 전개에 따라서 우리 가문은 몇 년 후, 페오반 왕국의 침략으로 인해 몰살을 당할 예정이었다. 약에 찌든 황제를 설득해 군사력을 키우는 건 불가능! 그렇다면……. ‘볼모로 잡혀 있는 남주의 조카, 셀리안을 빼돌리자!’ 남주가 조카를 구해 준 은혜를 안다면 우리 가문은 살려 주겠지? 내가 자기 조카를 예쁘게 키워 줄 거니까! 그렇게 셀리안을 키우던 중, 원작처럼 수도가 포위됐다. 나는 예정대로 셀리안을 돌려줬다. 아니, 돌려주려 했다. 셀리안이 이렇게 말하기 전까진. “전 엄마 아들이에요! 엄마랑 계속 여기서 지낼 거예요!” “……?” ……나는 유모나 시녀로 살아남아도 괜찮았는데?
“카린 보육원에서 온 엘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왕 빙의시킬 거면, 주연이나 이름값 있는 조연으로 주지. 심지어 아무 존재감도 없는 고작 엑스트라였다. 온종일 종이꽃을 팔며 구걸하는 신세로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이곳을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보육원에 새로운 신입이 도착한다. “다른 게 아니라, 신입 원생 이름이 궁금해서요.” “리샤.” 여주가…… 여주가 내가 있는 보육원에 오다니! 원작이 크게 꼬이지 않는다면, 여주는 금방 보육원을 떠나 공녀가 되겠지. 반대로 나는 언제나 그랬듯 길가에서 구걸이나 할 테고. 아니 잠깐, 이건 어떻게 보면 나한테 큰 기회 아닌가? 나는 이 대목에서 로판의 클리셰를 떠올렸다. 여주에게 호의를 베푼 엑스트라가, 미래에 크게 보답받는단 것을 리샤한테 잘 보이면 나한테도 콩고물이 떨어질 수 있는 거 아냐? *** 공작가 하녀의 삶에 익숙해지며 굵고 길게 살아 볼 생각에 빠져 있는데 “지금 내가 준 건, 소원권이야.” 원작에서 여주에게 집착해야 할 황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 여주와 이어져야 할 남주인공까지 곁을 맴돌기 시작하는데.